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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Mar 29. 2024

내일은 10분만 달려볼게요.

[내일은 운동해야지 5화]

핑그르르 어지럽네요.

헉헉헉 숨을 거칠게 내쉬어봅니다.

심박동 수를 체크해 봅니다.

10초에 24회가 뛰는군요.

힘껏 달리고 나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으니 심장은 다시 천천히 두근두근거립니다.


출처-게티이미지 뱅크

두근~두근~두근~


뛸 때는 힘들었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니 기분이 괜찮네요. 설렐 때 느꼈던 그 기분과도 비슷해요. 그러다 최근에 이렇게 기분 좋게 심장이 두근거린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어요.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은 설렘보다는 좋지 않은 일들로 화가 나서 심장이 쿵쾅거린 일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40대를 살아가면서 20대와 30대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실수를 하면서 살테니까요. 차라리 지금이 낫습니다. 그래도 가끔 벚꽃 날리는 봄날이 되면 대학의 캠퍼스 안을 씩씩하게 누비고 다니던 스무 살의 어린 내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그때의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면서도 뭔가 안다고 착각을 아주 많이 하던 어리석음 그 자체였지만 20대의 내가 그리운 건 그때는 매일이 설레었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에는 모르 것들이 많으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움이고 경험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매일이 크고 작은 설렘들의 연속이었고 지루할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도 뭔가 아침에 눈을 뜨면 두근대는 설렘이 늘 있었어요. 큰 사건이나 이벤트가 없더라도 그저 계절의 변화에 옷차림이 달리하는 것도 기분 좋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죠. 날이 화창하면 화창해서 설레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설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봄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건 죄를 짓는 일이라 친구들과 땡땡이를 치고는 먹을 것들을 늘어놓고는 잔디밭에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라~떼만 해도 잔디밭에서 낮술을 하는 낭만이 있었던 때라 선후배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어요. 당연히 게 중에 기타 잘 치는 잘생긴 선배도 있었죠. 그때는 모든 것들이 설렘이었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설렘은 수업이 끝나고 혼자 학교 근처 비디오방에 가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해피투게더><타락천사>를 보고 또 보고 난 후였어요. 영화의 여운을 간직한 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간대 그 순간의 설렘을 가장 좋아했어요. 그냥 젊은 기운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뭐든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요?


지금은 그때의 그런 감정들을 느끼지는 못하네요. 웬만한 것들은 경험해 본 덕일까요? 너무도 센 자극에 길들여져서 그럴까요. 아니면 이것도 나이 탓인가요. 여하튼 요즘 제가 가장 느끼고 싶은, 되살리고 싶은 감정이 '설렘'입니다. 쿵쾅쿵쾅 분노의 심장소리가 아니라 두근 두근하는 생기 있는 심장소리 말이에요.


최근에 달려볼까 마음먹었던 것도 생기 있게 달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설레어서였습니다. 달리는 사람들의 탄탄한 다리 근육의 움직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근육하나 없는 흐물흐물한 내 다리도 저렇게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요 며칠 달리는 중입니다.



야호~!!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더라고요.

비를 좋아하냐고요?

아니요.

오늘 달리지 않을 핑계가 생겼으니까요.


처음에는 10분을 달려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사실 5분밖에는 달리지 못했어요. 5분이 그렇게나 긴 시간인 줄은 몰랐어요. 달릴 때의 시간 체감은 정말 너무도 느리게 가더군요. 백만 년 만에 달리기를 한번 하고 생각했죠. 아~ 이건 내가 할 게 못되구나. 괜히 큰소리만 치고 꼴랑 한 번만 하고 그만두는 게 창피해서 한번 더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어제는 다시 맘먹고 10분을 달려보기로 했죠.  역시나 1분이 1시간 같았어요. 시간은 참 주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1초가 10분 같고, 1분이 1시간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맥박은 평소보다 2배는 빨리 뛰더라고요. 아하 달리기는 이렇게 지루하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사실 힘들다기보단 달리기는 너무도 지루해요. 결국 이번에도 10분을 채우지 못했어요


고민이 되었죠. 두 번 정도 시도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요즘 걷기와 맨손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그 외에 하는 운동은 보너스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고 너그럽게 타협하려고 했습니다. 내 시간의 80%는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살고 있는데 날 위한 운동마저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날 괴롭히는 일 같았거든요.


그러다 이렇게 달리기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게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난 절대 매사 뭔가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여서 문제인 사람인데, 달리기에는 마음의 저항이 큰 건 분명 이유가 있는 거예요. 흠.... 며칠 산책을 하면서 내 감정을 가만히 관찰해 보았어요.  문득 아이들이 처음 도전하는 일을 할 때 엄마에게 투정 부리듯이 내가 그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게도 그런 격려가 필요했던 거란 생각을 했죠. 안 하던 달리기를 처음 하니까 당연히 힘들고, 10분이란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가볍게 달릴 수 있는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나에겐 아니었던 거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역치는 다르니까.
내가 시작할 수 있는 그 시작점부터
하나씩만 늘려가자!


젊다 못해 늙어가는 나이지만 뭐든 수월하게 해낼 수는 없잖아요. 머리로 안다고 행동하는 게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고요. 어른도 처음 하는 건 다 서툴고 머리로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길 때는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좀 너그럽게 봐주자고요.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처음 5분을 달렸으니 매일 1분씩 늘려가기로 했어요. 1분을 늘리기 싫은 날은 전날만큼만 달려보려고요. 전날 5분 달렸는데 1분 더 늘리고 오늘 정 힘들다면 그냥 어제만큼만 달리는 거죠. 그렇게 10분을 달릴 수 있을 때까지만 해보자 했습니다. 다시 운동화를 신고 출발선에 서서 어제처럼만 딱 6분 달려보고 할 수 있으면 1분을 더 연장해 보자고.


그렇게 달려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달릴 때 나는 실제로 힘든 것보다 힘들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요. 내 감정을 알아주니 좀 더 잘 참고 달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달리는 게 즐겁지는 않지만 걸을 때와는 다르게 잡생각이 사라지네요. 걸을 때보다 호흡과 다리의 움직임에 온 마음을 집중하게 돼요. 이 느낌이 나쁘지 않네요.


만약에 비가 그친다면 오늘도 달려볼게요. 아직 10분 달리기를 지속하지 못하거든요. 10분을 꾸준히 달릴 수 있는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날그날 달릴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는 날마다 운동은 안 할 생각인 거냐고요? 일단 오늘은 맨손운동만 하는 걸로 퉁칠게요. 비가 오는 날은 그냥 운동 휴일인 셈이죠. 하지만 만약에 내일도... 내일도 비가 오면...


내일은 스쿼트 100번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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