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중가요 신곡이나 서점 문학코너의 신간들을 만날 때면, 신기하다. 인류가 몇천 몇만 년을 노래하고 이야기해왔건만 아직도 우리를 새로이 매혹시킬 음률, 언어의 조합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나 같은 얼치기까지 합세해 나만의 무언가를 써보이겠다고 펜을 잡았다.
길게 보면 지역도서관 초보글쓰기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은 지 3개월, 짧게 보면 브런치 작가가 된 지 2주. 그러니까 난 2주 작가이다.
어제저녁 새 글을 발행하고는, 알을 낳고 부화를 기다리는 어미마냥 수시로 드나들며 라이킷 수며 조회수를 확인하였다.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 자, 그러니까 작가란 애초에 '난 쓸 뿐이니, 읽을 테면 읽으라지.(브런치 합격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하는 무심함이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60여 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내 글을 읽었다(혹은 눌러보았다). 멀리 베스트셀러까지 가지 않더라도 브런치 인기 작가들의 몇 천, 몇 만에 이르는 조회수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못해 귀여울 지경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60명이라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현실에서 60명의 사람들이 내 말과 정신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귀 기울이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60명의 마음에 나의 언어가 크든 작든 희미하든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인간 세계의 실상은 거대한 언어의 밭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언어의 생태계 속에 산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서 내가 뱉은 언어의 씨앗은 소멸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밭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대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한 번의 사건이라면 싹이 나는가 싶게 쪼그라들 수도 있으나 어떤 강력한 품종은 한 번의 파종으로도 꺾이지 않고 자라난다. 그러나 대체로는 많이 뿌리고 물을 자주 준 씨앗들이 이 언어의 밭에 번성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 밭에 난 언어의 양식들로 살아가는 것이다.
최소한의 양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자, 함부로 난 독초를 먹고 평생 고생하는 자, 양질을 섭취하고 건강하게 사는 자.
내가 내보낸 언어들이 미미할지언정 사라지진 않는다고 생각하면 내 언어의 파종에 좀 더 신중해진다.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대지에 날아가 싹이 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모종의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향기로운 꽃내음을 퍼뜨리고 옹골찬 열매의 씨앗을 떨어뜨리는 선순환을 만들어내지는 못할지언정 생태계를 깨며 음지로 번성하는 외래종 같은 언어는 되지 않아야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