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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황하는 이가 있나요 ep.2

지금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그 진부한 말

by 낫썬 NOTSUN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아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다음으로 미룬 채 카페를 나왔다.


먼 길을 올라왔기에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녀에게

마지막 진부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서 취업을 위해선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한다.

이를 테면, 엑셀을 다룰 줄 아는 것과 문해력을 키울 것.

내 의견을 말할 땐 말끝을 흐리지 않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방법 등


그녀는 헤어짐의 끝자락을 붙잡고 반짝이는 눈으로 물어봤다.

"어떻게 해야돼요?"


"엑셀은 아주 기초만해도 충분하고,

문해력은 독서로, 말하기는 글쓰기로 키우세요"


한숨쉬며 지하철 문에 머리를 박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래, 읽고 쓰기란 참 쉽지 않은거지


특히나 당장 눈에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행위이기에

독서와 글쓰기는 취준생에게 있어서 가장 난감한 것이다.


효율을 극도로 중시하는 나는 어릴때부터 벼락치기를 곧잘했다.

멀티태스킹도 얼마나 뛰어난지

국어공부했다 사회공부하고, 수학공부했다가 과학공부를 자유자재로 스위치하곤 했다.

성인이 된 뒤, 사실 뇌구조상 멀티태스킹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꽤나 큰 충격에 빠졌다.

사실 나는 집중력 장애였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4-5살정도였을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주 어릴때부터 세대별 권장도서를 읽어옴으로써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실천하긴 어려운 것일뿐)


그런데 글쓰기는 달랐다.

작가 지망생이나 글을 쓰는 줄 알았던 내게 글쓰기의 중요성이란 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다 글쓰기의 중요성과 그로인해 내 삶이 변하게 된 것은 불과 2년전, 2023년도였다.


2022년 패션회사 MD로 잠시 근무했었다.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열정을 쏟아부은 나는 너무 빠른 시기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퇴사를 결심하고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되돌아본 나의 인생에 회의감을 느꼈다.

분명 쉬지않고 끊임없이 무언가 생산적인 행위는 해왔는데, 그래서 내게 남은건 뭘까

내가 가는 이 방향이 제대로된 방향인가.

나는 내 인생이란 배의 제대로 된 선장인가.


가장 방황을 하던 때였다. 점점 나이는 20대 후반을 향해 가는데,

내겐 돈도 커리어도 포트폴리오도 무엇하나 남은게 없었다.


2023년이 되던 해,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되찾기로 했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알기 위해서 나를 기록하기 위해

내 머릿속 둥둥떠다니는 망상같은 조각들을 붙잡아두어 제대로 된 문장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처음엔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뭘 써야 하지..?'


내가 아는 글쓰기라곤 작가들이 책에 쓰는 글, 기자가 기고하는 칼럼, 에디터가 작성하는 매거진 내 큐레이션 등.. 전문가들이 쓰는 글 속에서 내 글은 얼마나 초라할까?


누군가 '일단 아무거나 써내려가보세요' 라더라

그래,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걸로 밥벌어먹고 사는게 아닌데 뭔 상관이야

매일 아침 독서 30분, 글쓰기 30분을 실천했다. (매일은 아니고..)

꽤 오래 유지되었다.


처음 글은 그냥 일기같은 것이었다. 지금의 글과 큰 차이가 나진 않지만

아무도 보지않는 글이었기에 두서없이 문맥없이 작성했다.

내 속이야기를 꺼내놓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 지금 나이에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얼마나 늘겠어?
그 시간에 브랜딩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런 의심이 들어 시작할 엄두가 안났다. 혹시나 내가 시간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

그러나 눈 꼭 감고, 한번만 믿어보기로 했다.


1년 뒤, 나는 글을 잘쓴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는 짧고 진정성있는 나의 메세지들을 보고,

사람들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말도안돼...'


매일 짧은 글쓰기가 나에게 전환점을 주었다.


이런 사례는 글쓰기 말고도 또 있다.

'말하기'


아니 도대체 이런게 취준생한테 뭐가 그리 중요한데?

라고 생각한다면, 안타깝지만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길 바란다.


실제로 업무를 하며, 이런저런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글쓰기와 말하기는 기초중에 기초임을 다시한번 느낀다.

업무소통을 논리적으로 글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지속해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종종 급한 성격의 상사를 만나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말을 듣게된다.


나는 말을 잘하고 싶어서 집에서 매일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인터뷰 하듯이,

누가보면 미친사람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나는 영상 속 버벅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말을 절 수록 편집하기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틈만 나면 혼자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이어나가는 연습을 했다.

(그걸 즐기는 편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임원들에게 인정받은 '발표잘하는 애'가 되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처음 그 얘기들을 들을 때 나는 정말 얼떨떨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초등학생 시절에 나는 국어 지문을 읽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얼굴이 시뻘개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읽던 아이였다.

더 크게 읽으라며 압박을 주는 선생님의 말에 울컥하여 눈물이 차오르던 아이였다.


대학교 때는 또 발표 욕심은 있어서 매번 발표자를 맡았지만,

이상하게 마이크를 쥐는 순간 연습했던 모든 페이스가 무너지곤 했다.

목소리는 커졌지만, 그만큼 호흡이 딸려 숨을 쉴 곳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다시금 귀까지 화끈거림을 느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못하던 나의 약점들이 이제는 가늠도 못할만큼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때 만약 내가 글쓰기와 말하기 연습, 독서가 시간낭비라며 무시했더라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이 버거웠을 수 있겠다.


그래서 먼 길돌아 다시 진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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