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영상에서 '이유 있는 영상'으로
AI한테 '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팥 없는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멋진 영상을 만들면 주변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와, 진짜 잘 만든다." 나도 뿌듯했다. 화려한 구도, 세련된 색감. 요즘 AI는 이 정도까지 뽑아준다며 만족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칭찬을 받고 돌아오면 그 영상을 다시 틀어보지 않았다. 한 번도. 감동이 없으니까 다시 볼 이유도 없었다.
2편에서 "이쁜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라고 떠들었다. 돌아보니, 나도 만들고 있었다. 이번 글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AI로 영상을 만들 때 이렇게 생각한다. "멋지게 만들면 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멋진 영상과 좋은 영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하나 있다. '왜'라는 질문이다.
"잘하기만 하네"
슈퍼스타K에서 심사위원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래를 잘하기만 하네."
처음엔 뭔 소린지 몰랐다. 노래를 잘하면 됐지, 뭘 더 어쩌라는 건가.
AI 영상을 만들면서 그 말이 비로소 이해됐다. 나한테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영상을 잘 만들기만 하네."
기술이 좋다는 칭찬에는 '하지만'이 숨어 있다. 잘 만든다,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예쁘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때는 그 '하지만'이 보이지 않았다.
"알맹이가 없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한 분 계셨다. 그분에게 '연정'이라는 사극을 보여줬다. 나름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작품이었다.
피드백은 정확했다.
촌스러운 줄 알면서도 넣었던 VFX. 역효과였다. 잘 만든 컷까지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화려한 액션을 잘 뽑아주는 AI 모델이 나와서 자랑하듯 롱테이크로 뽑았는데, 필드에서도 롱테이크는 리스크 때문에 잘 안 쓴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기술은 좋은데,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에요."
뽐내기식이라는 거였다. 이쁘기만 해서 넣은 컷, 내 실력을 자랑하려는 컷, 'AI가 이 정도까지 된다!'를 보여주려는 컷.
그 말을 듣고 한참을 화면만 바라봤다.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그날 밤,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타이밍에, 이 씬은 왜 필요한 걸까?
"9개를 버리며"
그때부터 원칙 하나를 세웠다.
'이유 없는 컷은 없다.' 그럴듯해서 끼워 넣으면 전체 맥락이 무너진다. 스토리의 힘이 약해진다.
바로 시험대에 올랐다.
액션에 특화된 AI 모델이 나왔다는 소식에 흥분해서 마음껏 뽑았다. 황비홍 같은 무협 액션. 공중에서 회전하며 발차기를 날리는 컷, 창을 휘두르며 적진을 뚫는 컷.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10개 중 1개만 남기고, 9개를 삭제했다.
다시 재생하지 않았다. 그냥 다 버렸다.
길게 보여주는 건 뽐내기에 불과하다. 비트 단위로 쪼개서 보여주는 게 더 고급스러운 연출이다. 이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직접 9개를 지우기 전까지는 몸이 따라오지 않았다.
결과는 달랐다. 롱테이크로 길게 보여줬을 때는 반응이 시원찮았다. 담백하게 잘라내고 구도와 거리감에 변화를 주니까, 돌아온 말은 이거였다.
"실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왜 그런 반응이 나왔을까. 화려한 컷이 줄어서가 아니다. 남은 한 컷에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끝을 먼저 정하다
컷을 덜어내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뭘 남기고 뭘 버릴지, 그 기준은 어디서 오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결말이었다.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위해 죽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왜 죽게 됐는지. 그 죽음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왜 그 선택밖에 없었는지.
결말이 먼저 정해지니까, 모든 씬에 이유가 생겼다. "이 장면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덜어내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였다. 버리는 기준이 아니라, 만드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팥부터 고른다
AI는 무엇이든 만들어준다. 구도, 액션, 색감. 기술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는 AI가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건 내 몫이다.
예전의 나는 붕어빵 틀에만 집착했다. 모양이 예쁘면 됐다. 이제는 팥부터 고른다. 다음에 프롬프트를 쓸 때, 이렇게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 장면은 ___을 위해 존재한다."
그 빈칸을 채우는 순간, 붕어빵에 팥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