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만드는가

허락 없이 꿈꾸기 시작한 날

by R Son


친구가 대뜸 물었다. "넌 갑자기 왜 영상을 만드는 거야?"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는데,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게.. 왜?' 그런 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초보 때는 트랜지션에 눈이 갔다. 갑자기 대형 버스가 지나가면서 과거 회상으로 전환되는 장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던 여자친구가 사라지는 애절한 화면전환. 동그란 건 동그란 것끼리, 네모난 건 네모난 것끼리 묶어서 자연스럽게 넘기는 기법. 그런 극적인 변화가 있을 때마다 넋을 놓고 봤다.


지금은 다르다. 미장센. 화면 속에 놓인 것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나도 모르게 눈이 바뀌어 있었다.




새벽 3시. 사운드 이펙트를 수정하고 있었다. 요즘은 AI가 효과음까지 자동으로 넣어준다. 그냥 그대로 내보내도 된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치고 또 고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너무 미련한가?


구독료만 내면 방구석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시대다. 머릿속에 가둬뒀던 것들을 마음껏 꺼낼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새벽까지 앉아서 사운드 하나에 매달리고 있는 건가.


모니터를 끄려다가, 한 번만 더 돌려본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고, 그 속 동작들을 상상하며 영상으로 뽑는다. 레퍼런스를 보면서 머릿속에 그려둔 장면을 하나씩 꺼낸다. 어떤 날은 상상한 대로 나온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데,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그 순간을 위해 새벽을 보낸다.


생각처럼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결국 해낸다.


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니까.




사실 어릴 때부터 감독이 되어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장르는 그랬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배워왔으니까. "어머니, 미술을 배우고 싶어요." "아버지, 영상 제작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요." 그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땐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넌 왜 만드는 거야?'


나는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 이미지든, 영상이든, 글 그 자체든 이제 상관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어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그게 다다.


오늘의 내가 가장 젊다. 그러기에 행복한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삶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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