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알아가는 기분
그림을 잘 그리려면 수많은 작품을 보고 따라 그려봐야 한다. 축구를 잘하고 싶으면 공을 많이 차 봐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강의와 이론 같은 인풋도 중요하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보는 습관이 진짜다. 아웃풋.
나도 써보려고 했다. 근데 무얼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다.
어떤 책이었는지, 강의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한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매일 쓰라고 하면 대부분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예를 들어 버스 창밖으로 급히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 '데이트에 늦었나? 술약속?' 하고 상상해 보는 것.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버스를 기다리나? 혹시 애인을?' 이런 식으로 서사를 혼자 상상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상은 원래 좋아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썼다.
그날 점심때 제육볶음을 먹었다. 친구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잔 했다. 케이크도 먹었던 것 같다. 친구의 직장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내 얘기를 했다. 실없이 웃었다. 별것 아닌 하루였는데, 그걸 글로 옮기고 있었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일기는 그냥 기록이니까.
근데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왔다. 오늘 있었던 일이 뭐였지? 지금 내 감정은 뭐야? 즐거움? 만족감? 아니면 더 놀고 싶은 아쉬움?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감상에 빠졌다. 시간순으로 일을 나열하는 건 쉬웠다. 근데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훨씬 어려웠다. 어려운데 재미있었다. 그때 느꼈다. 나도 이제 글을 쓰고 있구나.
예전에는 시나리오를 쓸 때 상상에 한계가 있었다. 내가 만든 여자 캐릭터가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장을 보곤 특별한 일 없이 집에 돌아온다. 이 정도였다. 플랫 했다.
지금은 다르다. 시장에서 오래전 돈을 떼먹고 도망간 10년 지기 친구를 마주한다. 손발이 떨려서 한 걸음도 떼기 힘들다. 욕이라도 퍼붓고 싶지만 입도 뗄 수 없다.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를 떠나고 싶다. 그런 내가 바보 같지만... 이런 장면들이 떠오른다.
글을 쓰니까 상상력이 달라졌다. 착각일 수도 있다. 근데 이 느낌이 좋다.
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다.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조금씩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나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내 이야기에 흥분하고 즐거워하고 싶다. 그러면 남의 이야기도 더 듣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게 전부다.
오늘도 연습장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