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도 추억이 되는 곳
같은 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걷는 사람들
그냥 부끄러웠다.
군산 철길마을. 옛날 교복을 빌려 입고 가족사진을 찍는 곳. 인기 촬영지에 오면 매번 줄을 서야 한다. 우리 차례가 되면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구경을 하게 되고, 때로는 서로 촬영을 부탁하는 훈훈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동물원 우리 안의 사자가 된 마냥, 구경거리가 된 것 같은 기분. 여러 가지가 의식되는 건 사실이다.
도착하자마자 맞이해 준 건 수많은 가게,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오늘 오길 잘했다.' 철길을 따라 걸으니 비슷한 가게들이 반복되어 나왔다. 그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남들은 뭘 사고 뭘 체험하는지 슬쩍 보는 재미. 그러다가 교복 대여점에 들어가 우리 사이즈에 맞는 교복을 골라 입고, 명찰도 달아보고, 모자도 써봤다. 내가 머리가 커서 그런지 모자가 안 어울린다. 그저 웃을 뿐.
딸의 시간
딸은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손으로 브이를 했다가, 하트를 만들었다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바꿔가며 그 순간을 온몸으로 즐겼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매 순간 까불고, 웃고, 뛰었다. 우리는 지쳐만 갔다.
그래도 딸이 저렇게 행복하니까 잘 왔다 싶었다. 그게 가족인 것 같다.
나의 시간
80년대 문방구 콘셉트의 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폴로, 동그란 딱지, 공기를 넣으면 앞으로 달리는 펌프 말.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이런 것에 무조건 반응하는 것 같다. 몇 가지 장난감을 사주면서 아폴로도 하나 집어 들었다.
딸은 나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몰래 하나 더 집으려다 들켰다. 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맛이 달랐다. 예전 그 달콤함이 아니었다. 아폴로가 변한 게 아니다. 내가 변한 거다.
딸이 아폴로를 몰래 꺼내 먹는 모습을 보는데,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도 저렇게 먹었겠지. 저렇게 달게 느꼈겠지. 나도 언제나 10~20대일 줄 알았는데. 잠시 가게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찰나였다. 딸이 손을 잡아끌어서 다시 걸었다.
어르신의 시간
남녀 어르신들이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잠시 멈춰 서 계셨다. 옛날이야기를 나누시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교복이 좋았던 게 아닐 거다. 그 교복을 입었던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이 좋았던 거겠지.
마치 내가 아폴로의 그 맛을 느끼며 들었던 감정이, 그 어르신들이 교복을 입었을 때의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다.
'군산'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시간을 걷고 있었던 우리.
많은 사람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찰나의 부끄러움도, 옛 생각에 젖은 찰나의 아련함도, 미래의 오늘에는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좋은 추억으로 상기될 것 같다.
"하아… 그땐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