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페이지 앞에 스스로 앉다

이끌려 쓰던 아이가, 이끌려 쓰는 어른이 되기까지

by R Son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작법서를 읽었다.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 문장의 구조, 리듬, 수사법 글이라는 걸 분해하고 싶었다. 잘 쓰는 사람들의 비밀이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읽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읽어도 내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읽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강이 있었다. 그 강을 건너려면 직접 써야 했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책에서 배운 것들을 내뱉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첫 글을 게시하는 순간, 감정이 묘했다.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무작정 썼던 독후감 이후로,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써 내려간 적이 있었던가. 일기 말곤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누구의 손에 이끌린 것도 아닌데, 스스로 빈 페이지 앞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짧고 정확하게 쓰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작법서가 가르쳐준 대로. 영상을 만들면서 서사를 이어가는 연습도 했다. 내 이야기에 구조를 입히고, 흐름을 만들고,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작법서에서 배운 기술들, 두괄식, 짧은 문장, 능동태 그런 것들을 의식하면 할수록 글이 딱딱해졌다. 문장은 반듯했다. 틀린 건 없는데, 내가 읽어도 남의 글 같았다.


어느 날, 쓰다가 작법서를 덮었다. 그리고 그냥 써봤다.


기술을 잊고, 규칙을 내려놓고, 그냥 마음에 있는 것을 꺼냈다. 문장이 길어져도 괜찮았다. 비유가 어색해도 괜찮았다. 다 쓰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상하게도, 그건 내 글이었다.


잘 쓰려고 했을 뿐인데, 규칙을 버린 글이 더 나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발 더 나갔다. 내 안의 것들을 글로만 담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도 담아보기로 했다. 내가 쓴 글이 화면 위에서 움직이고, 목소리가 되고, 하나의 장면이 되는 것. 그건 글쓰기의 연장이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릴 때는 엄마 손에 이끌려 썼다. 지금은 내 마음에 이끌려 쓴다. 달라진 건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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