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는 빨간 조끼

[자립]하다.

by 서하

여느 때와 같이 혁수는 잠들기 전 그의 낡은 면바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구겨진 사진 속의 앳돼 보이는 청년은 깊은 눈매가 꼭 혁수를 닮았다. 청년의 큰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설움이 어려 있다.

쌀쌀한 바람이 드센 늦겨울의 서울역 어느 귀퉁이에서 얇은 솜이불 하나에 몸을 맡기고 있는 혁수의 세상은 오늘도 술에 흠뻑 젖어있다. 혁수의 몽롱한 눈꺼풀 아래로 늦은 저녁 귀가하는 행인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흐릿하게 스치는 행인들의 발걸음 사이로 사진 속 청년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인다. 혁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린다.

"형님..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20년이요…..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마지막 열차가 떠난 후 한산해진 지하철 역 안에서 혁수는 사진을 꼭 쥔 채 이내 잠에 들었다.


혁수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있을 무렵이었다. 혁수는 서둘러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역 근처 공터로 향한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근처 교회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료 식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노숙자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마지막 무료 식사를 받은 혁수는 그때서야 숨을 돌린다. 혁수가 허겁지겁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빨간 조끼를 입은 중년의 남성이 노숙자 무리를 향해 다가왔다. 잡지 두어 권을 양팔에 낀 검은 얼굴의 남성은 굽은 허리가 불편해 보였지만 엷은 미소를 띤 모습이 어딘가 자신 있어 보였다. 빨간 조끼의 그 남성은 수차례 목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여러분, 여- 여기 좀 봐 주십쇼."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남성의 얼굴을 이따금씩 쳐다보더니 이내 식사에 집중했다. 남성은 노숙자들의 무덤덤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을 이어간다.

"넉 달 전만 해도 저- 저도 당신들과 같은 노숙자였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께 조, 좋은 일자리 하나 소개하려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빅이슈라고 아십니까? 빅이슈."

혁수는 식사를 멈추고 남성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의 말은 조잡스럽게 들렸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해 보였다.

"거 우리 같은 노숙자들 재활하라고 만든 잡지사입니다. 사람들한테 그 자, 잡지도 팔고- 팔다 보면 자립도 할 수 있습니다."

남성의 크고 힘찬 외침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마친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를 지나쳐 갔다. 몇몇의 노숙자들은 오히려 남성의 말을 비아냥거렸다.

"자립은 무슨, 잡지 따위로. "

"네가 노숙자였다고? 우리 같은 소리 하네."

혁수 또한 비아냥대는 노숙자들과 같이 남성의 말이 그저 뜬구름 같다고 생각했다. 재활과 자립, 멀게만 느껴지는 두 단어는 혁수에게 날이 새면 흩어질 새벽꿈과 같이 덧없는 것이었다. 혁수는 불현듯 20년 전 형과 헤어지던 그날이 떠올랐다.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 새벽,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갈 곳 없는 형과 혁수는 각자의 살 길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짐이라곤 서로의 사진 한 장뿐이었던 그들은 1년 뒤 청량리에서의 만남을 약속했지만 그 작은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혁수는 유일한 피붙이인 형의 생사도 모른 채 살아가는 자신에게 재활과 자립이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했다. 깊은 가슴 한편에 까맣게 묻어두었던 생각, 하루빨리 재활하는 것이 형에게 조금이나마 더 떳떳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혁수는 지난 5년간의 노숙 생활 동안 재활에 대해 수차례 생각했었지만, 그때마다 이미 최악인 자신의 삶에 재활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부정하곤 했다. 혁수는 그리운 형에게 조금이나마 떳떳해지기 위한 유일의 방법이 재활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재활을 향한 자신의 노력이 결국 헛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 희망을 꾸역꾸역 짓눌러 왔던 것이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구걸하여 벌어들인 몇 천 원이 전부이며 하루 한 끼마저 제대로 먹기 어려운 혁수에게 재활과 자립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이번에도 혁수는 이내 노숙이나 하며 술에 의지하는 자신의 처지에 재활과 자립이 당찮다는 듯 머리를 내젓는다. 바로 그때, 빨간 조끼의 남성이 다가와 혁수에게 명함 하나를 내민다. 노숙자들이 모두 떠난 뒤 그곳에는 오로지 혁수와 남성뿐이었다.


혁수는 빨간 조끼의 남성을 만난 뒤 수일간 자신의 지겹고 무료한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 두렵기도 했다. 남성이 건넨 명함에 쓰여 있던 작은 문구, '누구나 일할 수 있습니다. 빅이슈라면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딘가 자신 있어 보이던 빨간 조끼의 남성의 힘찬 외침이 자꾸만 귓가에 울렸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20년 전 헤어지던 형의 마지막 얼굴이 나타나 혁수의 가슴을 콕콕 찔러대곤 했다. 그는 재활에 대한 희망이 이미 커질 대로 커져 예전처럼 꾸역꾸역 억누르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다. 혁수는 결심이라도 한 듯 남성이 건넨 명함을 손에 쥔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는 이내 남성이 건넨 명함 속의 빅이슈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로 향한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지만 힘차다. 회사 건물에 도착한 혁수는 조금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직원들의 모습에 그는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직원은 어색하게 서 있는 혁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며 자립의 의지가 있고 판매원의 행동수칙을 준수한다면 누구나 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혁수가 조금 머뭇거리자 직원은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행동수칙을 설명해 드리자면, 판매하는 동안에는 술이나 담배는 금지되고요, 하루 수익의 50%는 저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고개를 들고 판매하셔야 해요. 처음에는 매달 창간되는 시가 5000원의 잡지 10부를 무료로 제공받아 판매하고, 이후 모두 팔면 생기는 50000원의 수입을 원금으로 잡지를 권당 2500원에 구매하여 파시면 1 부당 2500원의 수익이 납니다. 2주간 성실히 판매하면 정식 빅이슈 판매원이 되며, 6개월 이상 판매하고 꾸준히 저축을 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직원의 말에 혁수는 자신이 너무 섣불리 재활을 결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판매하는 동안 술이나 담배가 금기되는 것은 노력한다면 지킬 수 있겠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인해 사람들을 상대하며 당당하게 잡지를 파는 행위가 조금 부담스러울뿐더러 하루 수익의 50%를 저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수에게 있어서 빅이슈 판매원으로서 잡지를 판매하는 것, 즉 자신이 홈리스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립을 외치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결단이었다. 또한 지난 5년간의 노숙생활 동안 세상의 무관심을 뼈저리게 느낀 혁수는 잡지를 팔아서 절반을 저축할 만큼의 수익이 생길 지도 의문이 들었다. 직원은 이러한 혁수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 입을 열었다.

"현재 30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13명이 빅이슈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립 의지이니, 신중하게 고민해 보세요."

혁수는 다시 한번 고심해 보았다. 마침내 혁수는 노숙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잡지를 판매하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힘겹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구걸이 아니라 합법적인 잡지 판매로 수익을 얻는 것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 자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혁수는 적은 수익이더라도 절반을 저축하는 것이 오랜 세월 노숙을 해왔기 때문에 어색한 것일 뿐 자립을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직원에게 전한 후, 비로소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로 했다. 혁수는 이것이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혁수가 배정된 잡지 판매처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이었다. 혁수는 12년 전 막일을 하러 왔던 이곳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판매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다. 판매한 지 2주가 지나 정식 판매원이 되었지만, 잡지를 판매하는 일은 혁수의 바람과 달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혁수는 잡지를 파는 것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교류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행인들과 노점상들의 무관심과 싸우는 것,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버티기 힘든 것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저 아저씨 좀 봐, 노숙자인가 봐. 구걸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빅이슈가 뭐야? 그냥 빨리 지나가자."

"웬 잡지? 저 사람 노숙자 같은데.. 저거 불법 아니야?"

혁수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당당하게 잡지를 판매하려고 노력했지만,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마주할 때마다 크게 낙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운 형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립에 대한 희망으로 잡지를 팔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가운 말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그럴 때면 혁수는 자신의 재활 노력이 헛된 것일 까봐 두려워져 좌절감에 시달리곤 했다.

혁수는 고민 끝에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빅이슈 판매원 이미지 변화를 위한 메이크오버 프로젝트에 지원해 보기로 결심한다. 정당하게 잡지를 판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이 자신의 겉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무작정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낡은 옷차림과 꾀죄죄한 용모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고민을 회사에 전했다.


혁수가 회사에 서신을 보낸 지 보름이 되던 날 아침, 혁수는 회사로부터 메이크오버 프로젝트를 제공해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회사를 찾아간 혁수는 헤어, 메이크업, 그리고 깨끗한 옷을 무료로 제공받았다. 혁수는 메이크오버라는 프로젝트가 어색했고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조금 어설퍼 보였지만 자신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벅차기도 했다. 말끔한 차림의 혁수는 회사의 프로젝트 이래 모델이 되어 사진 촬영을 하고, 공중파 뉴스에 방영될 인터뷰 영상도 찍게 되었다. 인터뷰의 끝 무렵에서, 마무리 멘트를 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혁수는 잠시 생각한 후 이내 입을 열었다.

"빅이슈는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자꾸 꿈틀거리는 저를 한발 더 내딛게 했어요.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이런 제 모습을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리운 저희 형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형, 정말 보고 싶다."


혁수의 인터뷰 영상이 전파를 탄 것은 개나리가 망울지기 시작하는 초봄 무렵이었다.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지만, 혁수의 예상대로 메이크오버를 통해 외모가 단정해지자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한층 나아진 듯하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혁수를 알아보는 주민들, 따뜻한 음료를 건네는 시민뿐 아니라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는 단골 독자도 생겼다. 비 온 뒤 말갛게 갠 하늘 아래 혁수는 오늘도 열심히 잡지를 팔고 있다. 혁수는 더 이상 잡지를 판매하는 자신이 어색하지 않다. 그는 더욱 당당한 미소로 행인들에게 빅이슈를 외친다. 여전히 지나가다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고, 노점상이 이따금씩 못 미더운 눈치를 보내기도 하지만, 혁수는 이제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혁수는 지난날 서울역에서, 고민에 빠진 자신에게 명함을 건넸던 남성, 그 빅이슈 형제에게 보답하기 위해 판매 경력 6개월이 되는 날엔 서울역에 가겠다고 다짐한다. 혁수는 과거의 자신과 같은 노숙자들에게 자립의 의지를 심어주고 싶다. 홈리스는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하다는 잘못된 편견을 스스로 없애게 하고 싶다.


한가로운 주말 점심 유유한 초봄 햇살이 혁수의 거친 손을 비출 때쯤 멀리서 밤색 외투를 입은 깊은 눈매의 남성이 다가온다. 혁수는 자기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남성의 떨리는 음성이 햇살이 데워놓은 따듯한 공기를 타고 혁수의 귀에 울린다.

“혁수야, 내 동생 혁수야.”

“형… 형님…”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우연히 뉴스에서 네 인터뷰를 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너를 찾았는데.. 혁수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당당하게 다시 일어나려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고생 많았다, 혁수야.. 내 동생 혁수야..”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 사이에 빨간 조끼가 홀로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