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후 대책 없다>

오늘은 그냥 꼴통이고 싶어. 법 도덕 좆까.

by 조세연



밴드 '파인더스팟'의 송찬근의 퍼포먼스



‘존나게 공부하고 존나게 스펙 쌓고 존나게 취직하고 뒤져.’는 영화를 본 지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가사이다. 영화는 강렬했다. 각본도 없는 진짜 삶을 촬영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저항과 젊음, 분노와 설움이 날 것 그대로 담겨있다. 펑크 그 자체이다. 법이나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이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꼴통스러운 태도가 살아있음과 자유를 느끼게 만든다. 사회와의 균형을 핑계로 타협하고 순수함을 잃어가는 나에게 그들의 분노와 저항은 숭고하다. 숨 쉬고 싶을 때 찾는 영화, <노후 대책 없다>이다.



“펑크가 뭐냐면 무지하게 화가 나서 그걸 발산하는 음악이지”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은 하드코어 펑크씬에 몸을 담았던 성난아제(여창욱)가 나에게 권한 영화이다. 호주에서 만난 그는 펑크를 포함해 일명 진짜배기 것들을 소개해 주길 좋아했다. 나는 그를 스승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것저것 묻곤 했지만, 사실 마음 한 켠에는 펑크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엔 이 난해한 음악은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 적응하며 펑크는 가장 필요한 음악이 되었다. 아니, 음악이라는 청각적인 경험을 넘어 하나의 정신이 되었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펑크가 필요하다. 나를 공기처럼 당연스럽게 감싸고 있는 틀과 압박, 통제가 매 순간 숨통을 조여온다.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내 미천한 지성으로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너무나 오랫동안 썩어버린 것들이 또 다른 것들을 썩게 했고, 이제는 나의 순수함마저 앗아가려 하는데 이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이 펑크이다.



돌아와서, 영화 <노후 대책 없다>는 펑크를 장르가 아닌 정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진짜 삶을 마주하며 느끼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될 것이다. 당신의 가슴속에도 펑크를 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술김에 수족관을 박살내고 사과하러 찾아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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