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준비하며
리트가 끝났다.
대입을 위해 예외 없이 치러야 했던 수능과 달리 리트는 온전한 내 선택으로 진입을 결정하고 준비한 시험이었다. 그래서 리트를 준비하는 기간은 내 선택에 대한 의심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이 시험을 위해 쏟아붓는 약 7개월의 시간과 돈,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응원조차 부담으로 다가왔다. 불안감은 나를 쉬이 잠들지 못하게 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어김없이 고시실로 향하게 했다.
점점 입맛을 잃고 체중도 감소했다. 고시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차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불안장애 완화를 위한 약을 권하셨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로스쿨 입학이라는 목표가 지금의 모든 불행을 견뎌낼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인가? 그 목표를 이루면 행복할까?
좋은 결과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로스쿨 입학은 또다시 변호사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3년간 쉼 없이 달려야만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성취로 인한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을 좇기보다는 두려움에 쫓기고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신 적이 있다. 무엇이 제일 두렵냐고, 만약 시험을 망치게 되면 나의 상태는 어떨 것 같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얻더라도 내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잠깐의 충격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회복할 것이고, 금방 다른 길을 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음을 쏟아 하나의 시험을 위해 달려간 그 시간이 의미 없어지는 것. 그게 가장 무서웠다.
어떤 목사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무슨 일을 하든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라고.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든 간에, 그 목표를 위해 달려 보기로 결정한 자신의 선택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존중해야 한다고.
당시에는 당장 해야 할 일에 마음이 바빠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지리라 믿으며 버텼다.
그러나 시험이 가까워 오고 모의고사를 거듭하여 볼수록 나는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고,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님을 고백하게 되었다. 내가 이 과정에서 찾은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간절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힘을 뺄 수 있는 것. 실패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건재하다면 그 결과는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
어이없는 실수나 불의의 사고만 없이 시험을 치르게 해달라고, 그러면 어떤 점수가 나와도 받아들이겠다고 기도했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평안하게 시험을 치렀다. 드디어 간절히 기다리던 휴식의 시간이 왔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시험 전에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시험이 끝나기만을 바랐건만, 막상 시험이 끝나니 어떤 점수가 나올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때가 올까? 지금보다 훨씬 나이를 먹어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하면 피곤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꼭 특별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내 삶에 만족하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꼭 더 좋은 무언가를 갖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돌아보면 감사한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함께 리트를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룸메이트, 종종 안부를 물어봐주던 사람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응원해 주던 모든 사람들, 7개월간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것,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던 것, 안전한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 등...
로스쿨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리트라는 첫 관문을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7개월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경험한 분명한 은혜들이 있기에, 앞으로 남은 길도 그것을 의지하여 갈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 때마다 지나온 길에서 찾은 의미를, 그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신념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