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다고 해줘

by 한유영

로스쿨 1학년 1학기가 어제 시험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한 학기 내내 시험공부만 했는데 벌써 한 학기가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학부에서 보냈던 그 어느 학기보다도 시간이 빨리, 더 정확히는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다.


일단은 수고한 나에게 토닥토닥.

한 학기 동안 아무런 큰 사고나 문제없이 무사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생해서 완주는 했으니 그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원래 같았으면 시험에서 저지른 실수들과 후회되는 점들을 계속 곱씹었겠지만 지금 그것들을 생각하기에는 이미 많이 나를 채찍질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기말고사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분명 학부 때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로스쿨에 와서 나의 최선을 갱신했다. 학부 때는 미리미리 공부하면 시험기간에도 잠을 충분히 잘 수 있었고 커피를 마실 필요도 크게 못 느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열심히 하고 시험을 보면 느낌이 왔다. 이 과목은 A 이상이겠다 하고. 같은 과목을 듣는 다른 학생들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로스쿨 기말고사 기간에는 거의 하루하루를 커피로 연명했다. 잠을 줄이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많은 양의 시험 범위를 다 외우다 보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체력적으로도 지쳤지만 가장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경쟁 심리와 그로 인한 불안이었다. 열람실 옆자리 친구보다 일찍 집에 가는 게 괜히 불안했고 밤을 새우겠다는 동기들의 말을 들으면 잠을 자러 와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칼 같은 상대평가라서 더 그랬다. 민법총칙 중간고사 피드백 시간에, 틀린 답이 아니고 못 쓴 답안지도 아닌데 이보다 더 디테일한 부분을 잘 쓴 사람들이 몇 있어서 내 답안을 감점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걸 듣고 로스쿨이 정말 쉽지 않은 곳이라는 걸 느꼈다. 그러기 싫어도 자꾸만 내 옆의 동기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힘들었다. 시험기간에 너무 졸려서 잠시 수면실에 가려다가 복도에 서서 공부하고 있는 동기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져서 다시 열람실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내 페이스와 그들의 페이스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하는 그들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을 보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외운 걸 다 쓰고 나왔음에도 학부 때와 달리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디에서 어떤 기준으로 감점을 당할지 모르고 다른 동기들이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니까. 아주 간발의 차로 그레이드가 달라지니까.


기말고사 기간 심신 미약 상태일 때는 정말 내가 어쩌자고 여기를 왔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너무 못하는 것 같고 밤도 못 새우고 말 그대로 간신히 버티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건강한 마음 상태였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었고 결국 그런 생각에 적잖이 영향을 받아 마지막 과목 시험을 좀 후회스럽게 쳤다.


최근 들어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잘하고 있다는 말이다. 잘 가고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한 거 헛되지 않다고. 물론 성적으로 증명되면 최고겠지만 일단 이번 학기 목표는 중간이라도 가는 거였기 때문에 그것만 해도 감사할 것 같다.

이제 1학년 1학기이고 모든 게 처음이니 더 욕심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내려놓고 지혜롭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토록 바라던 종강이 와서 지금은 행복하다. 일주일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다시 달릴 에너지를 충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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