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의 경제

4. 한국보다 앞서가는 일본과 추격하는 중국의 사이에서 우리는?

by 김병훈

5. 한국경제와 세계경제


(4) 일본과 중국의 경제.


① 메이지유신에서 고도성장으로.

1854년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 개항한 이래, 일본은 대외적으로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대내적으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식산흥업(殖産興業, 생산을 늘리고 산업을 일으킨다는 뜻) 정책을 실시하여 청일전쟁 무렵에는 방적업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러일전쟁 무렵에는 제철업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이 발전했습니다.

연이어 터진 1차대전으로 해외시장이 확대되면서, 일본경제는 도약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런 경제발전의 물결을 타고 정치권력과 유착된 기업, 즉 정상(政商)이 등장했고 이들이 재벌로 발전해 갔습니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터지자, 일본의 광공업 생산도 크게 줄었습니다. 문을 닫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실업자의 수가 증가했습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정권과 유착된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고조되어, 재벌 타도를 부르짖는 세력들이 늘어났습니다. 재벌들은 가족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 부분적으로 자체 개혁에 나섰습니다. 이를 ‘재벌의 전향’이라 합니다.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맥아더 사령부를 주둔시키고, 일본의 비군사화(非軍事化)를 추진함과 동시에 재벌해체, 농지개혁, 노동개혁과 같은 경제민주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미소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정책을 바꾸어 소련 세력을 막아내는 극동의 요새로 일본을 키워나가고, 체제를 위협하는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에는 격심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경제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이러한 경제 안정책은 불황을 초래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본경제는 호황으로 전환했습니다. 일본경제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때마침 일어난 베트남전쟁도 일본경제 성장의 촉진제가 돼줬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TV, 냉장고, 세탁기가 소비재 붐을 조성했습니다.


②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고도성장은 대내외적 갈등을 야기했습니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무역마찰이 빚어졌습니다. 고도 상장은 1973년에 터진 석유위기를 계기로 종지부를 찍습니다. 성장률은 3~5%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미국경제의 상대적 쇠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경제의 지위는 크게 상승했습니다. 수출이 경이적으로 증대함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가 대폭 확대되어, 1985년 말에는 세계 최대의 순(純)채권국이 됐습니다.

다급해진 선진국들은 1985년 미국 뉴욕에서 ‘플라자합의’를 체결하여 엔화 가치를 급상승시킴으로써, 불과 몇 년 사이에 엔화는 1달러 260엔 대에서 120엔대로 가치가 상향되었습니다.

이로인해 1980년대 후반 부동산가격과 주가가 폭등하는 거품경제가 형성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이라 일컬어지는 장기 불황에 돌입했습니다.


2002년 하반기부터 일본경제는 회복 양상을 보였습니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살아났고, 그것이 주택투자와 민간소비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이는 그동안의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 시작한 덕분입니다. 또한 중국으로의 부품과 소재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평면TV, 디지털카메라 등의 신규 전자제품이 붐을 조성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③ 좌충우돌해 온 중국경제.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과 더불어, 중국경제를 계획경제 체제로 변경시키면서 경제부흥을 추진했습니다.

우선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국민당 정권과 결탁한 관료자본을 몰수하는 등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했습니다. 1953년부터 소련의 스탈린 모델을 채택해 1차 5개년계획을 세우고,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개혁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중국경제는 대약진운동이나 문화 혁명기의 정책 실패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과 개방’ 노선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④ 개혁과 개방 이후의 급성장.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경제는 연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13억의 인구를 끌어안은 중국의 고도성장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일본과 한국에서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여 가공한 후, 구미에 수출하는 형태로 무역 대국이 되었으며, 점차적으로 부품의 국산화 비중을 높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세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았으며, 고성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석유, 철강 등 에너지와 원재료의 거대소비국으로 떠올라, 이들 원재료의 국제가격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세계의 시장’ 구실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외국인직접투자 유치 금액도 세계 1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은 경제의 각 방면에서 전개된 변화의 합(合)입니다. 먼저 경제이념에서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를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라는 유명한 ‘고양이론’을 제창했습니다.

즉, 경제발전이라는 ‘쥐’를 잡을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좋은 고양이’라는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하는 논쟁을 차단시켜 버린 것입니다. 또한 경제개혁이란 경제발전에 유리한 제도와 조치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서, 일부 사람과 지역이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선부자론(先富者論)’까지 제창했습니다.


⑤ 고도성장의 그림자.

중국의 부상을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낳고 있습니다. 첫째,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연안지역과 내륙지역의 소득격차가 커졌고, 개인별 격차도 날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세시스템과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빈부격차 문제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둘째, 국유기업의 부실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경영자 및 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의 결여관료 및 경영자의 만연한 부패가, 국유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전체 국유기업의 절반가량이 적자 상태입니다. 아울러 국유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실도 심각한 상태입니다. 또한 일부 부실한 국유기업을 파산시킴에 따라 실업문제가 심각해지고 노동쟁의도 빈발하고 있습니다.


셋째, 중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외자기업의 상당수가 적자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외자 유입이 줄어들고, 중국경제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넷째, 고도성장과 더불어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삼림파괴, 초지(초지) 상실, 사막화, 대기오염, 수자원 오염이 그런 예입니다. 이런 환경파괴에 따른 손실액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경제시스템은 천민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고, ‘사회주의’란 말은 공산당의 일당 독재라는 정치형태를 의미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경제시스템과 정치시스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충돌은 이미 한국과 중남미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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