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

3. 미국의 경쟁력과 분배의 문제, EU의 탄생배경과 특성.

by 김병훈

5. 한국경제와 세계경제


(3)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


① ‘팍스 아메리카’로의 길.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신흥국가, 대륙국가, 이민국가로 발전해갔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북미대륙의 중앙 부분에 해당하는 광대한 토지를 차지한 후,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국민경제를 통합했습니다. 이후 1차대전 직전까지 미국은 철강업, 기계공업, 식품가공업을 중심으로 한 세계 1위의 공업생산력과 광대한 국토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농업생산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1차대전으로 인해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력은 크게 약해지고, 패배한 독일의 경제는 황폐해졌습니다. 러시아는 1917년의 혁명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반면에 전쟁 중에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군수품을 공급하는 병기창 역할을 수행했던 미국은 공업생산력과 산업구조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연합국에 자금도 제공하여 ‘순(純)채무국’에서 ‘순채권국’으로 전환하면서, 국제금융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시켰습니다.


1차대전이 끝난 1920년대의 미국은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붐을 타고 ‘번영의 10년간’을 구가했습니다. 컨베이어 라인을 통해 대량 생산되던 포드의 ‘T형 자동차’가 이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1929년 10월 뉴욕증권거래소의 주가폭락을 계기로 ‘세계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순식간에 미국의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케인스주의적인 뉴딜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뉴딜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는 했지만, 경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2차대전이 발발하여 전쟁경제가 들어서고 나서였습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정치력과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에 있어서도 월등한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1953년에 미국은 전 세계 공업생산의 절반, 수출의 5분의1, 금 보유량의 3분의2를 점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미국식 경제구조와 미국의 선진기술을 본받고 싶어했습니다.

1950~1960년대는 미국, 서유럽, 일본 등 선진공업국을 중심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지속되던 시기였습니다.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기순환의 하강국면도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은 단지 선진국에만 국한된 것이었고,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도 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이런 성장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②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경제의 상대적 지위가 크게 낮아졌습니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일본과 서독의 급속한 경제부흥미국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침식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옛 소련과 동유럽 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미국은 다시 지배력을 회복했습니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경쟁자가 없는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고, 경제력도 부분적으로 회복됐습니다. 벤처 비즈니스의 활력, 정보화에서의 우위, 글로벌화한 경제활동에서 적극적인 미국기업이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특히 미국 월가의 금융자본은 세계화의 진전 속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해 갔습니다.

장기 불황을 경험한 일본이나 저성장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유럽선진국과는 달리 미국은 1990년대에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IT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정과 경상수지에서 매년 수천억 달러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경제가 공급부족 상태이고, 이 부족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일본을 비롯한 한국, 대만, 중국입니다. 미국은 이들 나라에서 재화를 초과 수입함으로써 풍요로운 미국을 유지합니다. 수입한 재화의 대금은 일본 등이 미국 국채 따위를 구입하는 돈으로 충당합니다. 또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분배는 악화 일로를 걸었습니다.

1990년대의 호황기에도 빈부격차는 계속 확대되어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소득분배가 가장 나쁜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③ 유럽경제의 성장과 정체.

유럽은 자본주의 공업화가 가장 먼저 진전된 지역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커다란 피해를 입었으나, 2차대전 직후부터 수년에 걸쳐 미국의 원조로 이루어진 ‘마셜플랜’에 힘입어 경제를 부흥시키고, 1970년대 초까지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유럽이 이렇게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요 면에서 수출, 투자, 정부지출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수출 신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세계적으로 IMF와 GATT체제가 확립되고, 서유럽 내에서 경제통합이 진전된 덕분입니다.

공급 면에서는 선진화된 모델을 쉽게 모방할 수 있는 ‘후발성의 이익’을 살려 미국의 기술 수준을 뒤따라 잡고, 이민노동력과 농촌으로부터 유입된 노동력으로 노동 공급을 충당했기 때문입니다.

서유럽은 전반적으로 국가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에 비해 훨씬 공평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점 때문에 서유럽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안정과 충실한 복지를 강조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정체와 고실업률을 부각시킵니다.


④ 유럽연합의 탄생.

1952년 서독과 프랑스 등 유럽 6개국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했습니다. 이것과 1958년에 발족한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를 합쳐서 유럽공동체(EC)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1993년 EC는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EU의 탄생 배경에는 미국, 일본, 아시아 신흥공업경제 등의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있습니다.

EU는 1995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등이 가맹해 15개국 체제로 가다가,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가맹하였고, 2016년 영국이 탈퇴하면서 27개국 체제가 되었습니다.


EU는 미국처럼 곧바로 ‘유럽합중국’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각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합의 가능한 분야부터 통합을 추진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EC 시절에는 관세동맹을 체결하고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포함해 유럽지역 시장의 완전 자유화를 추구했습니다. EU는 통화에서도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13개 가맹국은 유로를 도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와, 재정적자가 GDP의 3% 이내여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자격 규정 때문입니다.

EU는 인구 4.5억 명으로, 미국의 3.5억 명, 일본 1.2억 명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GDP의 합계액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말하자면 선진국들 사이에서 3극(極)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EU는 통상정책, 농업정책, 금융정책에서 권한을 행사하며, 경쟁정책과 환경정책에서도 부분적으로 가맹국가의 권한을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재정정책이나 산업정책은 여전히 각국 정부의 권한에 속합니다. EU는 세계국가로 가는 중간 단계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지역 블록에 지나지 않을지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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