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리스트

by 스텔라

꽃 시장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했다.

원래라면 오늘은 꽃 향기를 맡으며 한 다발 사 올 생각이었다. 집 식탁 위에 놓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 척이라도 해보려고.

그런데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꽃은 나중에도 살 수 있지만, 오늘의 이 기분은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집 안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나를 압박했다.

나는 소파에 가방을 던져두고 한참 서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칼 리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걱정이 엔진 같다는 말.


엔진이 멈추면… 나는 멈추는 걸까?

다음 날까지도 머리는 계속 돌아갔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생각은 자동으로 흘러갔다.


주식은 괜찮은가.
크리스티나는 왜 그랬을까.
사업은 왜 늘 제자리일까.
아이들 교육은 충분한가.
노후는 준비되고 있는가.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문장이 뒤를 이었다. 마치 자동 재생 목록처럼.


문득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식탁 위에 종이를 펼쳤다. 펜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그래, 적어보자.


<현재 고민거리>

v주식 –50%.

이러다 또 다 잃는 거 아닐까.

v관계.
크리스티나와의 갈등.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자꾸 마음에 걸리지?

v미래.
경제 상황이 불안정하다.

사업이 좀 더 잘 되면 좋겠는데.


적다 보니 한 달 전의 고민이 떠올랐다.


<한 달 전 고민거리>

v사명.
나는 왜 나만의 직업이 없지? 나는 무가치한 건가?

v우울감.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 이대로 늙어가는 거겠지.


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종이 위에 나열된 문장들은 모두 심각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이 고민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생각했다.
해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앞으로 닥칠 걱정들>

v건강.

나이가 들면 아플 일밖에 없겠지.
v아이들 사춘기.

분명 말썽을 부릴 거야.
v부모님의 노후.
v경제 위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벌써 종이 위에 올라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걱정이라기보다…
걱정을 찾는 작업 같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르륵 연결되었다.

걱정은 사건이 아니라, 습관 아닐까?



나는 눈을 감았다.

만약 걱정이 정말 엔진이라면,
나는 계속 연료를 넣고 있는 셈이다.

연료가 없으면 엔진은 꺼질 테니까.

좋은 연료 : 기쁨, 설렘, 기대, 창조는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연료를 집어넣는다.

불안. 후회. 가정된 실패. 최악의 시나리오.

그 연료는 금방 타오른다.
엔진은 즉시 반응한다.
생각은 빠르게 돌아간다.

나는 멈추지 않아도 된다.

아니, 멈출 필요가 없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걱정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걱정을 통해 계속 ‘작동’하고 있구나


아무 걱정도 없다면,
아무 문제도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공에 덩그러니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공허가 더 두려웠던 건 아닐까.

나는 종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 중에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생각보다 적었다.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바꿀 수 없는 영역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거 뭐야... 보지도 않는 드라마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 사람 같잖아.. 재미도 없고 결말도 아는 이야기인데 끄지 못하고 계속 보는 사람.

어이 없는 웃음이 나왔다.


걱정은 드라마였다.
나는 그 드라마의 유일한 시청자이자 작가였다.

그리고 동시에 피해자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펜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삶의 문제가 아니라, 패턴이네.”


그 순간,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내가 걱정 그 자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나는 걱정을 하고 있을 뿐, 걱정이 나를 이루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틈이었다.
하지만 빛은 늘 틈으로 들어온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걱정을 멈추려고 애쓰기보다 걱정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알지 못했다.

며칠 후,

그 액자 속 여인이 정말로 걸어 나올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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