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그 단어는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샤워기를 틀어놓고 멍하니 서 있다가도,
운전 중 신호를 기다리다가도
툭.
중독.
나는 그 단어를 밀어냈다.
“과해. 그건 아니지.”
중독은 병이다.
중독은 통제를 잃은 상태다.
중독은 파괴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멀쩡하게 일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장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기도 한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 늘 뭔가가 돌고 있었다.
생각.
끊이지 않는 생각.
그날 밤, 일부러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부터 아무 걱정도 하지 말자.’
눈을 감고 누웠다.
천천히 호흡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넷에서 이미 생각이 들어왔다.
주식은 정말 괜찮을까? 아니, 그건 생각하지 말자.
다섯.
여섯.
크리스티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겠지? 아니, 멈추자.
일곱.
사업 계획 다시 세워야 하나?
경제 전망은?
아이들 학원은?
나는 눈을 떴다.
멈출 수 없었다.
생각은 내가 켜는 게 아니라 이미 켜져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조금 무서워졌다.
나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걱정이 나를 쓰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
중독이란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는 상태라 했다.
나는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나는 평범했다.
눈 밑이 약간 어두웠고, 입꼬리는 습관처럼 내려가 있었다.
“넌 괜찮아.”
나는 거울 속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거울 속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지난 몇 년을 떠올렸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나는 즉시 깊이 파고들었다.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써보고,
대책을 세우고, 또 다른 가능성을 가정하고.
그걸 ‘철저함’이라고 불렀다.
‘준비성’이라고 불렀다.
‘현실 감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혹시 그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걱정을 하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모든 가능성을 다 떠올려두면 덜 당할 것 같았다.
상처받을 일을 미리 예측해두면 덜 아플 것 같았다.
실패를 미리 상상해두면 덜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걱정을 방패처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방패를 내려놓으면 맨몸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순간, 칼 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걱정이 네 삶을 굴리는 엔진 같아.”
엔진.
엔진이 멈추면 차는 멈춘다.
그렇다면 나는 차가 멈추는 걸 죽는 것처럼 느끼는 건 아닐까.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는 시간.
그 시간은 내게 공허였다.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
쓸모없어진 느낌.
무언가 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계속.
걱정이라도 붙잡고 ‘나는 뭔가 하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했다.
그게 나를 살아 있게 한다고 믿으면서.
그때, 아주 조용한 깨달음이 스쳤다.
나는 걱정을 사랑한 적은 없지만 걱정에 의지해왔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의존이었다.
의존은 중독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침대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처음으로 변명하지 않고 합리화하지 않고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 보았다.
“나는… 걱정에 의존해왔구나.”
중독이라는 단어는
이제 조금 덜 날카로워졌다.
대신 더 무거워졌다.
이건 내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오래 함께 살아온 습관이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좋아. 인정하자.”
인정은 패배가 아니었다.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선 어딘가에서
나는 아직 보지 못한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