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가 열 번 울리기 전,
나는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
괜히 일찍 앉았다.
마치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두근거리는 사람처럼.
10시.
숫자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었다.
나와 나 사이의 경계선 같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 따뜻한 물을 끓였다.
페퍼민트 티백을 컵에 넣고 물을 부었다.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녀가 말한 준비는 단 하나.
릴렉스.
단순한 단어였다.
하지만 나는 평생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일 같았다.
나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함이 손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생각보다 손이 차가웠다.
한 모금 마셨다.
향이 코를 타고 올라왔다.
가슴 어딘가가 조금 느슨해졌다.
“릴렉스…”
나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말했다.
몸이 먼저 풀리지 않으면,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고.
나는 어깨를 천천히 돌렸다.
목을 좌우로 기울였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쥐었다.
이상하게도, 몸을 움직이자 생각의 속도가 아주 약간 느려졌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요가복으로 갈아입었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 때 마치 작은 갑옷을 벗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꽤 단단히 조이고 살았구나.”
욕실로 가 세수를 했다.
미지근한 물이 얼굴을 적셨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자 거울 속 얼굴이 조금 말랑해 보였다.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조명을 낮추고 휴대폰은 뒤집어두었다.
그리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호흡부터.”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쉬었다.
들이마실 때는 넷.
멈추고 둘.
내쉴 때는 여섯.
처음 몇 번은 어색했다.
생각이 끼어들었다.
내일 일정…
아이들…
'지금은 아니야.'
속으로 조용히 말해주었다.
호흡이 조금 깊어졌다.
몸이 소파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등과 팔, 허벅지가 쿠션에 닿아 있었다.
나는 그 감각을 하나씩 확인했다.
등이 닿아 있다.
손이 놓여 있다.
발이 바닥에 있다.
여기 있다.
지금.
그녀가 말했던 두 번째 단계가 떠올랐다.
“기분 좋았던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세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기억을 뒤지면 늘 후회가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억지로 다른 서랍을 열어보았다.
몇 년 전, 여름.
아이들과 바닷가에 갔던 날.
바람이 불고, 햇빛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붙잡았다.
햇빛의 온도.
파도 소리.
아이들의 웃음.
가슴이 아주 조금 따뜻해졌다.
그때, 벽시계가 댕댕댕 열 번 울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기다렸다.
이번엔 덜 두려웠다.
이미 나는 준비를 했으니까.
소파의 쿠션이 아주 미세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
그녀였다.
“잘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렸다.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이 저를 만나러 온 거예요.”
“무슨 뜻이죠?”
“어제는 제가 당신에게 나타났죠. 오늘은 당신이 준비했어요.”
그 말은 이상하게도 힘이 되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냈다.
그녀는 말했다.
“이 시간은 걱정을 없애는 시간이 아니에요.”
“그럼요?”
“걱정을 만날 수 있는 안전한 방을 만드는 시간이에요.”
안전한 방.
나는 그 단어를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문이 있고,
창문이 있고,
바람이 통하는 방.
“이 방에서 당신은 무너지지 않아요.”
그녀의 말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는 어제보다 더 선명했다.
빛이 아니라 사람 같았다.
“준비됐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릴렉스.
그 단어는 이제 단순한 지시가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허락이었다.
괜찮아.
지금은 싸우지 않아도 돼.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 당신의 마음으로 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