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그녀는 몇주 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밤은 유난히 길었다.
나는 소파에 웅크린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도, 분노도, 분석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닿은 감정.
‘나는 나아질 수 없다.’
그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건 단순한 실패감을 넘어 존재 전체에 대한 선고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내려가도,
아무리 안아줘도,
결국 나는 여기.
같은 자리.
같은 방어.
같은 상처.
이게 지옥이구나.
도망칠 수 없고,
고칠 수도 없고,
구원도 없는 상태.
나는 생각했다.
‘그녀라도 와야 하는데.’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또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를 보았다.
누군가가 와서 괜찮다고 말해주길.
누군가가 와서 이건 과정이라고 설명해주길.
누군가가 와서 나는 잘하고 있다고 확인해주길.
나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 무의식이었고,
내가 만든 형상이었고,
내 안의 조용한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녀조차도 외부로 만들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심장은 여전히 묵직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래.”
입 밖으로 작게 말했다.
“그래, 나는 아직 여기야.”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패배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그래도… 나는 도망치지 않았어.”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방어했고, 상처받았고, 좌절했고, 아프지만
예전처럼 주식 앱을 열어 도망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를 분석하며 밤을 새우지 않았고,
미래의 파국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때리지도 않았다.
나는 여기 앉아 이 감정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조용한 문장이 안에서 올라왔다.
나는 그 문장을 붙잡았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숨이 한번 크게 들이마셔졌다.
이건 핑계가 아니었다. 위로도 아니었다.사실이었다.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었다.
연습 중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연습 중이라는 건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뒤 나도 모르게 문장이 이어졌다.
“실패해도, 나는 끝난 게 아니다.”
가슴이 조금 열렸다.
지옥은 영원하다고 믿을 때 생긴다.
하지만 ‘과정’이라는 단어는 영원을 부순다.
나는 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절망의 잔향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나는 한 문장을 더 붙였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
그 문장은 처음으로 확신에 가까웠다.
그녀가 없어도, 크리스티나가 이해해주지 않아도, 주식이 오르지 않아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
나는 나를 공격하지 않겠다.
나는 나를 지옥에 가두지 않겠다.
나는 완벽해져야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연습할 수 있는 존재다.
그 문장을 스스로 완성한 순간, 나는 알았다.
구원은 누군가가 내려주는 빛이 아니라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라는 걸.
그녀가 오지 않은 밤.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내가 나를 붙들고 있었으니까.
벽시계 초침이 또각또각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누웠다.
절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절망 위에 하나의 문장이 놓였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그 문장은 작았지만,
이번엔 누가 대신 말해준 게 아니었다.
내가 완성한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