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 다른 선택

by 스텔라

크리스티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 그날 얘기, 다시 할 수 있어?”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작게 뛰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분석이 시작됐을 것이다.

‘왜 다시?’
‘또 싸우려는 건가?’
‘이번엔 뭐가 문제지?’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게 먼저 올라왔다.


“아, 긴장됐구나.”

나는 속으로 말했다.

“괜찮아. 긴장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야.”

가슴은 여전히 조여 있었다.
손끝도 조금 차가웠다.

하지만 그 감각 위에 새로운 문장이 하나 얹혀 있었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래. 다시 얘기하자.”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공기는 여전히 약간 서늘했다.

크리스티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날 무시한다고 느꼈어.”

그 말은 여전히 아팠다.

가슴이 쿵.

방어가 올라왔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그 생각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순식간에 줄지어 있는 생각들이 눈앞에 보였다.

“아, 방패 올라왔네.”

속으로 작게 웃음이 났다.

이번엔 급하게 꺼내 들지 않았다.

대신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렇게 느꼈구나.”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따끔했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응. 넌 늘 정답을 말하는 사람 같아.”

그 문장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번엔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억울함.

‘난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야.’

나는 그 억울함을 밀어내지 않았다.

'지금 조금 억울하구나.'

속으로 인정했다.

억울함이 인정되자 조금 약해졌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난… 네가 그렇게 느꼈다는 게 좀 충격이야.

하지만 무시하려던 건 아니었어.”

말하면서도 나는 내 어깨를 느꼈다.

경직되어 있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여기서 길게 설명했을 것이다.

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의 맥락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이번엔 멈췄다.

설명은 방어가 되기 쉽다.

대신 한 문장을 더 붙였다.


“그래.. 네가 상처받았다면, 나도 모르는 어떤 부분이 있었겠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여전히 불편했고,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

그게 달랐다.

대화가 끝났을 때 우리는 완전히 화해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처럼 폭발하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따뜻했다.

가슴도 여전히 조용히 뛰고 있었다.

그날 밤 10시.

나는 소파에 앉았다.

벽시계가 울렸다.

이번엔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고 속으로 말했다.


“오늘 어땠어?”

아주 잠깐의 침묵 뒤,

내 안에서 대답이 올라왔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았어.”

나는 웃었다.

그녀가 없어도 대화는 가능했다.

그때, 아주 익숙한 감각이 소파 옆에 앉았다.

눈을 뜨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였다.


“오늘은 제가 필요 없었죠?”

나는 작게 웃었다.

“조금은요.”

그녀가 말했다.

“이게 성장입니다.”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아니요. 같은 자리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


나는 오늘의 나를 떠올렸다.

가슴은 여전히 조였고,
방어는 여전히 올라왔고,
억울함도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선택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방어를 ‘쓸 수 있지만’, 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걱정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듣기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 차이는 작았지만 결정적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덧붙였다.

“지옥은 ‘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출구는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나는 지금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해요.”


나는 그 문장을 마음속에 새겼다.

오늘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절망에 갇혀 있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연습 중이었고, 연습 중이라는 건
매일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난 조금은 나아졌다.”

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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