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몰라~ 어머니가 자세히 알려주시지는 않는데,
어디 절에 있는 스님이래.”
“스님?
나도 우리 동네 절 주지 스님이 봐 주셨다던데?
같은 스님인가? 하하.”
“야, 다른 놈들도 이야기해 봐라.
이거 은근 재밌네”
“나는 우리 동네에 용한 도사가 있는데,
내가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했다더라!”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1990년대 초반의 대학은,
경상도 시골 구석에서만 자라던 나에게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지금은 신입생의 상당수가 수도권 출신이지만,
그때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골고루 모였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마냥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누가 먼저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사주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다들 자기 사주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출처가 더 재밌었다.
사주를 봐준 사람들을 가만히 나눠보니
대략 세 부류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이자 가장 많이 등장한 주인공은 스님이었다.
속세를 떠나 계신 분들인데도
어찌 그리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지,
스님이 사주를 봐 줬다는 이야기가 유독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스님이 자기 두통까지 치료해 줬다며 자랑했다.
커다란 장침을 머리에 쑤셔 넣었다는데,
과연 그래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나라 스님들은 참 다재다능하시다.
두 번째는 지방 곳곳에서 암약하던 도사님들이었다.
당시에는 보통 ‘도사님’이라고 불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속 쪽에서 활동하던 분들이었을 것이다.
길흉을 점쳐 주고
인생의 방향을 일러주는 분들 말이다.
보살님에게 사주를 봤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내 고향에도 꽤 유명한 도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전형적인 도사라기보다는
속세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 보이던 분이었다.
세 번째는 지나가던 이름 모를 나그네였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내가 바로 이 부류에 속했다.
어머니가 우체국에서 근무하시던 시절,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노인이
내 사주를 봐 주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사주를 봐 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까지 닮아 있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사주를 봤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사주를 의뢰한 사람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거의 99%가 어머니였다.
사주 명리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상담을 의뢰하거나
사주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 역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어머니들이 사주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신 핵심만 툭 던져주신다.
“이거 조심하고,
저것만 주의하면
넌 다 크게 된대.”
여기서 더 물어보면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어린 놈이 뭘 자꾸 알려고 해.
그냥 엄마가 한 말만 명심해.”
그땐 웃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들이 던진 그 한두 마디의 위력은 꽤 컸다.
평생 물가를 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친구는
지금도 바닷가를 잘 가지 않는다.
마흔 전에는 차를 몰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장 동료는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을
버스에서 보낸다.
결혼을 일찍 하면 제명을 못 산다는 말을 들은 후배는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짝을 만났다.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이 ‘사주’라는 이름을 달고 전달되면,
그 위력은 몇 배로 커져
한 사람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현업에서 활동하는 술사들은
말 한마디를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말이
때로는 칼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머니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노인이 네 사주를 보더니
딱 문교부 장관 할 팔자라더라.
그러니까 다 잘될 거다.”
문교부 장관,
요즘 말로 하면 교육부 장관이다.
근처에도 못 갔으니
사주는 역시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없었던 건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그 말은 묘하게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사범대에 진학했고,
교육행정고시에 도전하기도 했다.
너무 아전인수격 해석일까.
역시 사주는
어렵고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