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어요
“꿈이 없어요.
학교를 왜 다니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어쩌면 좋죠?”
20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장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말해주면 오히려 감사하다.
더 많은 아이들은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 앞에서
그저 입을 꾹 다문다.
새삼 놀랍지도 않은 건,
우리 집에서 자라는 세 아이들도
교실 속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제일 큰 녀석만 가끔 입을 열 뿐이다.
가끔 아주 조심스럽게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위의 질문을 던지면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처음엔 정말 훌륭한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고,
내가 직접 학부모가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좋아”라는 말은
겉으로 보면 존중 가득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막막함이 숨어 있다.
알려줄 정보도 없고,
혹시 틀린 말을 할까 조심스럽고,
그래도 부모로서 체면은 지켜야 하고,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가장 안전한 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
부모가 자식이 ‘좋아하는 일’을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분명 진심이다.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너도 그런 말 해본 적 없냐?”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해줄 말이 그 말밖에 없더라.
내 입만 쳐다보는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좀 멋있어 보이잖아.”
명리학을 교실에서 활용해보자는 생각은
지금 배우고 있는 명리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주는 귀하게 써야 합니다.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가능성의 숲에서 가장 바람직한 길을 비춰주는 등불로 써야 하죠.”
종이를 접으면
보이지 않는 자국을 따라 물이 흐르듯,
사주는 운명에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보여주는 일에 가깝다.
그 문장을 지금도 마음에 품고 있다.
요즘 학교는 ‘진로’라는 단어로 가득하다.
진로 탐색, 진로 컨설팅, 진로 리모델링.
특히 고교학점제가 시작된 고등학교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진로에 맞게 과목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것도 고작 고1에게.
여태 동그라미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세모가 되라고 한다.
적어도 네모로 다듬을 시간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만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교사들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방향 하나쯤은 비춰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오늘도 교실에서 이 질문을 마주한다.
“선생님,
저… 꿈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