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라, 내 살들아!
“그래, 뭘 공부한다꼬?
뭐? 명리학? 사주?
말이 좋아 명리지, 그거 순 점쟁이 아이가?
임마, 니 신들맀나?”
“아니라니까요, 외삼촌.
무속이랑 명리학은 달라요.
우리는 학문이라니까요.”
“시끄럽다. 당장 때리치라.
지 아부지가 땅 팔아가 공부시키놨더만
겨우 한다는 게 점쟁이라꼬?”
“에헤이 참, 점쟁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참말로….”
“아따, 피는 무섭데이.
니 혹시 외할매 젊었을 때
신기 잠깐 들어왔다 나갔다는 말
들어본 적 없나?”
“아니요.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요?”
“니들 외할매가 한 번은 신이 들맀는데
떡시루 가장자리에 발끝으로 딱 올라서서
그 떡시루 위를 빙빙 돌고 난리도 아니었데이.
온 동네가 다 시끄러벘다.”
“그 떡시루 가장자리에 발끝으로 선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하하, 우리 외할매 대단하셨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야, 대단한 건 외할매가 아니라
니들 외할부지였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오금이 저려서
아무 생각도 못 했을 기다.
근데 외할부지는 달랐데이.”
“어떻게 하셨는데요?”
“신줏단지를 마당에다
냅다 패대기쳐서 깨부쉈다 아이가.
귀신 물러가라 소리 지르면서.
그 길로 니들 외할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외삼촌은 마지막 당부로 말을 맺으셨다.
“하여튼 시끄럽고,
그 공부 당장 때리치라.
그리고 학교에서 애들이나 잘 가르치라.
알겠나?
실실 웃지 말고 명심하거래이.”
놀랍고도 흥미로운 우리 가족사 이야기다.
사실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영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늘 반만 믿었다.
입담이 세고,
과장이 조금 섞이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외삼촌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덜덜한 가족사다.
사주 명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외삼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때마다 설명을 하다 보니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주 명리학의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는 것.
사주 명리에게
점이나 미신 같은 오명을 안겨준
요소는 몇 가지가 있다.
오늘은 그중 하나,
‘살(殺)’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사주를 보다 보면
‘~살’로 끝나는 말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역마살, 도화살, 현침살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즘은 인터넷 만세력에
생년월일시만 넣으면
누구나 쉽게
이 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내 사주 명식을 열어봤을 때
그 작은 글씨들을 보고
혼자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었던 건
우리 아이들의 사주 명식을
열어봤을 때였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니, 이런 건 누가
왜 만들어 놓은 거야….”
한 번은 명리 수업 시간에
‘살’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해요.
종교도 공부해서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민족이잖아요.
이 살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중국 명리 원전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어요.”
“그럼 이건 어디서 나온 거죠?”
“한국 무속 신앙의 영향과
명리학적 재해석이
결합된 개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우리만의 개념이죠.”
“그래도 죽일 살(殺)이라니…
무섭잖아요.”
선생님은 웃으며
이렇게 덧붙이셨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개운하면서,
흘려보내면서 사는 겁니다.
그 결과가 여러분들이에요.
한번 보세요.
그 많은 살을 달고도
여태껏 큰 사고 없이
잘 살아왔잖아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물론 아직도
만세력을 열 때마다
보이는 수많은 살들이
반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요한 건
살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라는 것을.
사주 공부를 하며
나쁜 기운을 흘려보내는 과정을 배우는 일,
그 자체가
나에게는 공부이고 재미다.
외삼촌 말마따나
나는 오늘도
점쟁이가 아니라,
그저 사주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이 길을 조금씩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