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와 닉
주말에 〈주토피아 2〉를 보러 갔다.
온 가족이 1편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도 컸다.
넷플릭스에 밀려 고사 직전이라는 극장은 거의 만석이었다.
요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극장을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쌍둥이 막내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자막이 불편한가 싶어
영화는 원어로 봐야 한다던 아내를 잠시 원망했다.
“자막이라서 이해하기 어려워?
더빙으로 볼 걸 그랬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빠, 나 주디 좀 별로인 것 같아.”
“주디가 왜? 착한 사람이잖아.”
“그냥 너무 자기 멋대로야.
닉이 불쌍해.”
예전에 학교 현장에서
원국을 열어 보고 싶은 학생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아, 저 아이 사주에는
분명 특정 기운이 강하겠구나.’
사주 명리를 공부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공부에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보며
명리적으로 캐릭터를 떠올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실제 명식을 확인할 수 없으니
틀릴 걱정도 없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사실 막내 녀석이 느끼던 불편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의롭지만 고지식할 정도로
자신의 길을 밀어붙이는 주디보다,
다소 비루해 보이지만 현실적이고 영리한 닉에게
마음이 더 갔다.
본인은 올바름을 추구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불편함을 강요하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정의를 내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들.
그 장면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의 캐릭터 해석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캐릭터를 단 하나의 십신 조합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재미로 봐주시길 바란다.
명리적으로 본다면
주디는 전형적인 식신·정관의 조합에 가깝다.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야.
내 방식이 맞아.’
식신의 고집과 실행력,
정관의 원칙과 정의감이 체화된 모습이다.
부지런하고 말보다 행동이 빠르며
현장 실무에 강하다.
다만, 융통성은 부족하다.
닉은 정반대다.
편인·편관의 결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편견과 차별을 통해
세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먼저 계산하는 인물.
겉으로는 비겁하고 불량해 보이지만,
실은 생존과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물과 기름 같은 둘이
어째서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명리적으로 보면 답은 단순하다.
식신은 칠살을 제어하고,
편인은 정관을 깨운다.
주디의 밝은 에너지는
닉의 방어적인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닉의 현실 감각은
주디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보여준다.
서로를 고치려 들지 않으면서
부족한 부분만 보완해 주는 관계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조합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 한편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어딘가의 ‘주토피아’를
여전히 바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