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

by 영애비

야간자율학습

“그 반은 야간자율학습 몇 명이나 나왔어요?
우린 5명도 안 돼요.”

“그 정도면 양호하죠.
우리 반은 더 적어요.
요즘 누가 밤에 학교에 남아요?
다들 스터디카페에 가지.
억지로 강제하면 말 나와요.”

“그나저나 학년부장님이 중간에서 고생이시네요.
위에서 은근히 압력 넣는 모양이던데…”

“외부에서 그 학교는 공부를 시키네 마네 말이 나오니,
그냥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렵겠죠.”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학교는 한밤중에도 훤했다.
공식적인 하교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어떤 교실은 자정 무렵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야간자율학습’,
일명 ‘야자’라는 이름 아래
집보다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화 〈완득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야자가 야간자율학습인데,
자율학습을 면제시킨다라… 말이 됩니까?
야간강제학습이라면 몰라도?”

자율을 가장한 강제학습.

야자를 빠지려면 사유서를 써야 했고,
담임과 부장교사의 감독 아래 철저히 관리됐다.

그런데도 그 시절 아이들은
야자를 크게 부당하게 여기지 않았고,
부모들 역시 대체로 찬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더 신기하다.
당시에는 학교가 아이들을 관리해 주는 것보다
효율적인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야간자율학습이 은근히 기다려졌다.

아버지가 워낙 엄격하셨던 탓에
해가 지고 나서 밖에 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자란 우리 세대라면 알 것이다.
시골 밤에 놀거리가 얼마나 많은지를.

비록 공간은 학교였지만,
그 시간에 집 밖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해방감이 있었다.

당시 우리 중학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야간자율학습 전원 참석이 원칙이었다.

더 특이했던 건
담임교사가 아니라
3학년 선배가 교실에 남아
함께 공부하며 우리를 관리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교사도 무서웠지만,
선배는 그보다 더 무서웠다.

그 선배는 정말로 엄격했고,
교실 관리를 참 잘했다.
떠들 틈도, 딴생각할 여지도 거의 없었다.

이름과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선배는
현재 고향에서 강력계 형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미
형사로서의 싹은 충분히 보였던 셈이다.


고등학교에서도
야간자율학습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오히려 우리 학교의 야자는
‘자율’이라는 말을 붙일 자격이 있었다.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곳이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남아 공부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교실에서의 야자를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대신 기숙사의 학습 일정은 더 빡빡했다.

자율학습은 밤 11시 50분까지 이어졌고,
한때는 새벽 1시까지 연장된 적도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에서
라이벌 학교에 뒤처졌다는 이유였다.

그때만큼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이건 좀 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1시 자율학습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지금 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되며,
남는 아이들도 많지 않다.

아이들은 더 이상
밤의 학교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 시간은
스터디카페나
각자의 공간으로 옮겨갔다.

엄밀히 말하면
야간자율학습 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공부하던
전제가 사라졌을 뿐이다.

명맥만 유지하는 지금의 야간자율학습은
학교가 공부의 중심이던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유산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야자’라는 말도
체벌처럼

“맞아, 예전에는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추억 속에서만
회자되는 단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