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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Oct 05. 2022

송정 바다

햇살 좋은 토요일입니다.

기장 해광사 앞 바닷가에서 11시 약속으로 배낭에 어제저녁에 산 족발과 소주 생수를 넣으며 마음이 바빠집니다.


당초 동해선을 타고

오시리아 역에서 걷거나 버스로 가려고 했으나 아침에 산책을 다녀온 후라 한 번에 가는 100번 버스로 편안히 앉아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버스는 예전과 달리

토곡 방면으로 둘러 갔으며

해운대 신도시를 가로질러 터널을 빠져나오니 멋진 송정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전망 좋은 달맞이길과 청사포 윗길로 가지 않아 아쉬웠지만, 송정은 늘 포근히 나를 반겨 줍니다.


시골서 전학 온 중 3년

어느 일요일

송정으로 4촌 형제들과 함께

이 버스를 타고 난생처음 멋진 바다를 보러 갔었지요.


눈부신 푸른 하늘과 바다

부서지는 파도의 흰 포말과 구름

아름다운 해변의 황홀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장마 때 고향 마을 뒤 둑 끝을 넘칠 듯이 흐르는 황토물의 위력을 가장 크게 여겼습니다.

끝없는 수평선은 정말 신비와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이것만으로 나는 시골서 전학 온 보람을 충분히 보상받았습니다.


군대 일병 시절

여름의 시작 6월에 나는 일 주간의 유격 훈련을 마치고 송정해수욕장의 군인 휴양지에 파견을 나왔습니다.


모래밭에 지어진 멋진 10여 개 휴양용 막사(침대 모기장 양질의 모포)에서 파도소리 들으며 수영복만 입고 여름 한철을 보냈습니다.


밤이면 백사장에 앉아 기타를 치며  

'흰구름 먹구름'을 부르다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뜨이면 바다에 뛰어들고 모래밭을 고르고 간이 샤워장을 청소하며

군인 가족들의 피서를 맞이하고 도와주는 즐겁고 한가한 생활이었지요.


별이 총총하던 여름밤

라이브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해변에서 캠프하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며 그리워집니다.


8월 태풍이 왔을 때 집채 만한 파도를 뒤로 남겨도 고, 두 달간의 낭만은 끝이 났습니다.


직장 생활 첫해

아버지뻘 연세의 부장님에게서

낚시를 처음 배워 그의 낚시 도구를 저렴하게 구입했습니다.

신선대에서 노래미를 쿨러 가득 잡기도 했었고 포항 호미곶 원정도 다녀왔었지요.

이러한 자신감으로 어느 휴일 사촌 동생을 데리고 송정 죽도공원 옆 방파제로 낚시를 갔었습니다.


방파제 둑 중간쯤 높이에 서서

낚싯대의 여러 바늘에 지렁이를 다 끼우고 나서 멋진 폼(구경꾼이 많았음)으로 바다를 항해 릴대를 힘차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낚싯줄은 보이지 않고

동시에 등 뒤에서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렸습니다.


바다로 뻗어야 할 낚싯줄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짧은 줄의 바늘과 추가 세게 뒤쪽 누군가를 덮친 것 같습니다.


뒤쪽 방파제 맨 위에서

가족과 함께 회를 드시는 분의 얇은 셔츠를  뚫고 팔과 가슴에 낚싯줄과 바늘이 엉키고 꼽혔습니다.


정신없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몸에 붙어 앉아 얽히고설킨 낚싯줄과 바늘을 뽑으며

그분 몸과 팔뚝에 새겨진 적나라한 문신을 보며 나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란 말도 있나 봅니다.

낚시 바늘의 생채기 보다 훨씬 삶의 깊이가 있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회를 한 접시 함께 나누고 말없이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낚시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직장생활 말년쯤

바둑 잘 두는 중학교 동기들이 몇 명 있었지요.

한 친구가 제공한 오피스텔

그곳은 우리들의 바둑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수영과 파도타기

죽도공원에서 구덕포까지의 백사장 풍경은 대국 틈틈이 여유와 휴식을 주었습니다.


그중 고인이 된 친구도 있지만, 지금도 수담을 나누는 모임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집사람과 송정에서 시작하는 바다 길을 몇 번 걸었습니다.

내려 쪼이던 햇살과 바람과 나무, 키 낮은 집과 해안 초소와 바다 빛을 우린 기억하고 있지요.


송정 바다는 이렇게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마침내 버스는

송정 마을 끝을 돌아서

동부산 관광단지의 펜션촌, 대형 아웃렛, 해동용궁사와 수산과학원을 지나 해광사에 닿았습니다.


절 앞을 돌아서

넓은 공영 주차장으로 걸어오니

오랑대와 바다가 보이고, 몽돌이 깔린 좁은 해변에 자리 잡은 약속한 일행 셋이 보입니다


손을 흔들며 내려가 보니

와인에 전복구이, 꼬막, 피자 등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이 펼쳐져 있습니다.

(내가 가져간 족발과 소주는 아예 내놓지도 못할 정도로 푸짐했습니다.)


친구 둘, 후배 한 사람

20년 전 모임에서 만난 동갑 친구들, 5년 후배는 해마다 여러 번 산행을 함께 해 왔습니다.

조용한 성품에 산행과 고스톱, 당구와 노래, 술을 함께하는 인연으로 늘 편안한 만남입니다.


오늘도 후배가 추천한 80년대 노래를 듣습니다.

오선과 한음  '빛바랜 사랑'

김광일 '길 바람 아이'

마치 옛날을 꿈꾼 듯 아련하고 몽롱해집니다.


와인과 인삼주 한 병을 비우고

우리는

연화리, 대변항으로 햇볕 속에 걸어갔습니다.

멸치와 붕장어가 잘 잡히는 포구

대변항의 갯내음과 소박하고 친근한 풍경은

언제 걸어도 포근하고 즐거운 곳입니다.


우리는 대변항 끝에서 바다로 돌지 않고

지름길인 봉대산 허리쯤 되는 산 자락을 넘어 월전마을까지 걸었습니다.


마을 앞 넓고 큰 바위와 녹색 등대의 바다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옛 직장 동료의 처형이 운영하는

단골 곰탕집으로 들어가 큰 수육을 주문하니 신선한 봄의 나물과 해초류 반찬이 입맛을 크게 돋워 술맛이 한층 더 좋았습니다.

(동래시장에서 사 와 먹지 않은 족발은 주인께

건네주었습니다.)


취기를 느끼며 마을버스 타는 곳에서

천 원짜리 호떡 하나씩을 사 먹고 기장역으로 가

동해선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와 당구를 친 후 또 통닭과 맥주로 마무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코로나가 정말 해제될 쯤에는 금정산도 오르고 노래방에 꼭 가 멋진 노래도 불러 보자는 막연한 약속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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