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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우 Dec 19. 2022

애증 이야기

친언니


내 일기장은 결국 변덕스러운 애증의 기록이 되었다. 한동안 심드렁하게 지냈다. 생각도 않고 조용히. 며칠 전 언니와 나눈 대화의 여파 때문이다.




언니네 부부는 시험과 과외로 내리 바쁘던 내게 집에 놀러 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스물세 살이 되면 사주겠다던 양갈비도 한 번은 그 유혹에 등장할 정도였다. 너무 어려서부터 먹으면 입맛이 비싸지니 스물셋은 되어서 먹는 게 좋겠다고 했던 양갈비다. 그 대단한 체험을 이 년이나 앞당겨 주다니. 언니의 솔깃한 말들에 그만 다 제쳐 버리고 버스에 올라탈 뻔한 일도 몇 번 있었으나, 막상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만남이 계속 미루어졌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언니의 신혼집을 찾았다. 난 아직 구경도 못한 본가의 김장 겉절이가 언니네 집에 있었다.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형부가 수육을 맛있게 삶아 주셨고, 그것에 김장 김치를 곁들여 셋이 저녁을 먹었다. 가끔 반려견인 춘삼이가 식탁 주위를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모습에 셋은 고개를 빼고 함께 귀여워했다.


형부는 내가 온다고 하기에 맛있는 술을 만들어 주려고 몇 가지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당일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그것을 사양해야 했다. 형부가 나만큼이나 아쉬워하셨다. 결국 형부와 언니는 소주를, 나는 진저 에일을 선택했다. 심플한 식탁이었다.





우린 간만에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주된 안주는 언니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이야기꾼의 편집 덕분인지 험담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매우 뚜렷했다. 술잔이 기울어질수록 그들은 점점 더 과장되어 묘사되었고, 마침내 내 앞의 언니가 한 편의 독백극을 연기하는 다이나믹한 배우가 되어 있었다. 시트콤 같은 그들 일화는 밉기보다 웃겼다.


대화 주제가 내 근황으로 옮겨졌다. 요즘 나의 생활을 말하면서 난 ‘시절 인연’이란 단어를 꺼냈다. 최근 자주 떠오른 단어였다. 하루는 끝이 보이는 어떤 관계들을 헤아리다가, ‘이렇게 시절로만 남겠구나.’ 생각했다. 가끔 슬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사뭇 초연하게 말했다. 내겐 이미 종결된 화두였기에 나름 단정한 모양새로 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언니에겐 이렇게 안정기에 들어선 생각들만 털어놓게 되었다.


그러나 몇 초 뒤 그 단정한 모양새라는 것도 내 오산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새 언니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무너지고 만 탓이다.









언닌 종종 내게서 사촌 언니를 찾고 본인 친구를 찾고 엄마를 찾는다. 죄다 본인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말하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문득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너 ㅇㅇ같아.” 이 한 마디가 내포하는 속뜻을 난 이제 쉽게 알아차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구릿한 느낌들까지 순식간에 전해지는 언니의 언어다. 그 믿을 수 없는 속도에 난 가드를 미처 올리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날 언니는 다시 한번 내게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즉시 말했다.


“너 ㅇㅇ같아.”


오래간만에 초라한 알몸이 되는 경험이었다. 이왕 원망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더 초라해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 또 떠올렸다. 그래. 난 술 취한 언니를 싫어했지. 알코올은 언니 혀를 짧아지게 만들고, 그 짧은 혀로 말실수를 하게 한다. 그에 대해 ‘나’라는 개인 범위 안에서 ‘상처받았다.’하면 될 일인데, 그 원한은 내 몸을 무섭게 벗어난다. 형부는 저런 언니를 왜 사랑할까. 언니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일까. 알게 모르게 어떤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일까. 복수심 서린 난도질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언니를 나보다도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본인 집 냉동고를 열어 두고 내 가방에 냉동식품을 욱여넣어주던 언니의 후리한 모습. 언니는 찹쌀 꿔바로우가 정말 맛있으니 꼭 가져가라고 권유를 거듭했다. 당시 남자 친구이던 지금의 형부도 가세했다. 이거 정말 맛있으니 가져가서 먹어 보라고.


혈육을 놓아 버리지 말라는 어떤 메시지처럼, 웃기게도 이런 타이밍에 언니의 그런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 처음으로 대방어를 맛보여주겠다고 그들의 자취방에 초대한 날이었다. 난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 집 냉동고도 이미 꽉 차 있다고 계속 사양해야 했다.






결국 애증이다. 언니와 말도 섞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언젠간 장난스럽게 엉덩일 한 대 올려치고 싶은 것. 이렇게 미워해도, 강아지가 보고 싶단 어쭙잖은 구실로 또 언니를 보러 가겠지. 아무래도 애정만으론 텁텁한 게 자매이지 않나, 하고 칼을 슬쩍 숨겼다. 누군지 모를 신에게도 방금의 저주를 취소하는 기도를 서둘러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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