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밴쿠버 생활에세이: 밴쿠버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

by Haiyeon 하이연



밴쿠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외국인 친구들과도 어울려봤고, 한인 1.5세, 2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섞여 지내봤다. 내 밴쿠버 생활은 블로그에도 있으니 찾아와서 보면 된다.

https://m.blog.naver.com/yeonvan/223953216860


그런데 최근 들어, 밴쿠버에 여름이 오기도 했고, 다양한사람들과 어울리며 소셜라이징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사실 한동안 소셜라이징이라는 단어에 피로감을느꼈기 때문에 모임이나 카페를 통한 오픈챗은 하지 않았었다.


기대 없이 참여한 한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건넨 첫 질문.


“유학생이세요?”

“여기서 일하세요?”

“비자 어떻게 되세요?”

“렌트는 어떻게 내요? 혼자 렌트해요?”

“무슨 일 하세요?”

아,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단, 나의 ‘상태’를 분류하려는 취조에 가까운 느낌.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이런 질문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오간다.

대부분은 무심코 묻는 말이겠지만, 그 안에 미묘한 우열 프레임이 깔려 있는 걸 느끼지 못할 수 없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배경 이야기가 오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종종 이런 말이 들려온다.


“어머 인터네셜로 냈어요?

되게 여유 있는 집 딸 같아요~”


순간 멍해졌다.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며 살아왔다.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 아래서는, 그 모든 것이 “있는 집 배경”으로 압축되고 있었다.



‘있는 집 딸’이었다면,

나는 더 좋은 학교로 편입하고도,

시간과 돈 때문에 그걸 포기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 포기해야 했던 것도, 미뤄야 했던 것도 많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내 조건 안에서 스스로 방법을 만들며 버텨냈다.


“있는 집 딸이 이렇게 혼자서 버티며 일백 번 넘는 이력서 넣고, 면접 다니고, 맥주 한 잔에 위로받을까?”


괜히 웃음만 나왔다.



내가 속상했던 건,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너무나 가볍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기준을 꺼내왔다.

그래서 더 그들의 안일한 편협한 시선이 신기하기도 하고 왜 굳이 이런 질문들이 스몰톡의 주제가 될까 싶긴 하다.


왜 사람을 ‘비자’나 ‘영주권’, ‘신분’으로 구분 지으려 할까? 왜 한국인 커뮤니티 안에서조차, “ 지금 너,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인가요?”를 먼저 묻는 걸까?


외국인 친구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름, 온 이유,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하지만 한국인끼리의 모임은 다르다.

우리는 ‘경력’, ‘소속’, ‘신분 상태’부터 확인하고, 그다음에야 사람을 본다.


나는 그냥 같이 즐기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들의 프레임 안에 들어가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영주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하나의 선택이고,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그걸로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려는 시선은 결국 자기 열등감을 감추는 방식일 뿐이다.


비자가 있든 없든, 영주권이 있든 말든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떤 태도로 존재하는 가다.


물론 나도 완벽하지 않다.

나 역시 때때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을수록,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은 무너진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 결심한다.

신분이 아닌 사람을 보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떻게 계세요? “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세요? “로 묻는 내가 되고 싶다.


우리는 결국,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보다, 어떻게 살아내느냐로 기억될 사람들이니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독자분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나누고 싶습니다.

다만, 상대를 비하하거나 감정을 해치는 악의적 댓글은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함께 건강한 대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