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못 한 채 겨울을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나중에 오소리가 마주하게 될, 카드 속 작은 창문.
아직 아무도 모르는 밤의 한가운데에서,
이 장면은 먼저 우리에게만 살짝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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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오소리는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기로 했다.
눈은 왠지 더 차갑게만 내리고, 강은 두껍게 얼어붙어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소식들은
창문 너머 먼 도시의 불빛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오소리는 전기담요를 켜 둔 침대 속에
몸을 더 깊숙이 말아 넣었다.
따뜻한 이불속은 작은 굴처럼 포근했지만,
가슴 어딘가에는 오래된 겨울바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올해를 잘 버텼는지, 정말 조금은 나아진 건지
스스로에게도 선뜻 대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요즘 오소리는 자주,
창틀에 이마를 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는 오소리.
겉은 포근하지만, 마음은 아직 겨울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날 밤도 오소리는 그렇게 서 있었다.
살짝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잿빛 강과 앙상한 나무들이 비스듬히 보였다.
그때,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톡. “
언젠가부터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게 된 오소리는
조용히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하얗게 성에가 낀 창틀 한가운데,
작은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카드는 겨울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색이었다.
희끄무레한 세상 속에서
혼자만 노랑과 연둣빛, 복숭아빛이 섞인 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소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카드 표면에는 희미한 세 잎클로버 그림이
숨 쉬듯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얼어붙은 창가 위,
노랑·연두·복숭아빛이 번지는 작은 카드 한 장.
세 잎짜리 클로버가 조용히 빛나고 있다.
아주 멀리, 겨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다른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민트빛 하늘 아래 복숭아색 구름섬들이 떠 있고,
별 모양의 꽃눈이 눈처럼 천천히 내리는 곳.
그 구름섬 가장자리에는
보두르도치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보두르도치는 손바닥만 한 카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었다.
세 잎클로버 그림과,
말 대신 빛으로 적어 둔 짧은 마음들이
손끝을 따라 은은하게 번져 나갔다.
“멀리 있지만, 네 겨울을 생각하고 있어.”
고슴도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말하고,
카드를 살짝 밀어 올렸다.
카드는 별가루 속을 천천히 지나
어딘가의 창가를 향해 떠올랐다.
다시, 겨울의 창가.
오소리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유리와는 다르게
카드에서는 묘하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카드 한가운데에서
작은 창문이 “톡” 하고 열렸다.
민트빛 우주 하늘과 복숭아색 구름섬,
별 모양의 꽃눈이 눈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섬 모서리에는
고슴도치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고슴도치는 이쪽을 향해
작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오소리는 그 표정을 보고 알 것 같았다.
“여기서, 네 겨울을 지켜보고 있었어.”
따뜻한 이불속에 몸을 말고 누운 오소리.
가슴 위 카드에서 작은 우주가 피어오르며
온몸에 노랑·연둣빛이 번져 간다.
오소리는 카드를 가슴께 꼭 끌어안고
천천히 침대 속으로 몸을 묻었다.
두꺼운 이불 아래에서,
카드가 놓인 자리에서부터
옅은 노랑과 연둣빛, 복숭아빛이
가슴 안쪽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차갑게 굳어 있던 마음 한가운데에
작은 봄 한 점, 작은 우주 한 점이
천천히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오늘도 아주 많이 잘 버텼다는 말이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한꺼번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겨울 창가에
이런 카드를 한 장 띄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오소리는 그렇게 조용히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한 화면의 양쪽에 놓인 두 밤.
왼쪽에는 이불속에서 카드를 품은 오소리,
오른쪽에는 구름섬 위에서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보두르도치.
서로의 겨울과 우주를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다.
이불 밖의 겨울은 여전히 차갑고 길겠지만,
이불속에는 이제
나만 아는 조그만 우주와
먼 곳에서 건너온 마음 한 장이 함께였다.
그리고 어쩌면,
어느 날엔 오소리의 카드가
또 다른 누군가의 겨울 창가에
살짝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은 멀리 돌아다니며,
조금 늦게라도 서로의 겨울을 건넌다.
따뜻한 금빛과 연둣빛이 번지는 한 송이 세 잎클로버.
이야기의 마지막에 남겨진, 조용한 표지처럼...
사람들은 네 잎을 행운이라고 부르지만,
겨울을 끝까지 버티게 해 주는 건
언제나 이 평범한 세 잎이었다.
기적 같은 하루가 아니어도,
오늘을 간신히 건너온 나에게
조용히 건네는 세 잎짜리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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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버티는 어른들을 위한 짧은 우주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밤에도, 이렇게 작은 카드 한 장이 날아가면 좋겠어요.
겨울을 조금 버거워하는, 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오소리입니다.
밖으로는 별말 없지만,
이불속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는 타입이에요.
어느 날, 창가에서 멀리서 날아온 카드를 한 장 받게 됩니다.
민트빛 구름섬에 사는 작은 고슴도치입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카드에 담아,
먼 곳의 겨울 창가로 살짝살짝 띄워 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공식 이름은 ‘보두르도치’지만,
친해진 친구들은 가끔 ‘보두르’라고도 부릅니다.
글 · 이미지 ⓒ 디오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