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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왜 신에게 "잘 부탁합니다"라고 할까?

by 다다미 위 해설자

“일본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습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신사도 가고, 절도 가고,

불상도 모시고, 부적도 붙이고,

심지어 귀신 이야기도 좋아하던데…?


그런데 믿지 않는다니요?


그러다 어느 겨울,

도쿄 메지진구 신사에서

정갈한 옷차림으로 절하고 가는 노인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 앞에서 ‘예를 갖추는’ 거구나.



일본의 전통 종교는 ‘신토(神道)’입니다.

이 신토에는 신이 수백만 명 있어요.


산, 물, 바람, 불,

심지어 화장실에도 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처럼

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모든 것에 깃든 정령 같은 존재들.


그래서 일본에서는

특정 신 하나를 향해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문화가 없습니다.

그건 너무 편파적이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믿기보단 예를 갖춥니다.



일본 사람들, 새해가 되면

전국 신사에 수백만 명이 몰립니다.

그리고 뭘 하느냐?


두 번 손뼉 치고


고개 숙여 절하고


손을 비빕니다


그다음엔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게 끝입니다.


“믿습니다”도 없고

“도와주세요”도 없습니다.

거래입니다.


“내가 정성껏 절했으니,

하나쯤 챙겨주시겠죠?”



일본 사람에게 “당신은 종교가 뭐예요?” 물으면

절반 이상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특별한 종교는 없어요.”


근데 장례식엔 절에 갑니다.

결혼식은 성당 분위기로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연인과 호텔에서 보내고,

불교 법회도 가끔 참여합니다.


그럼 이게 뭐냐?


그냥 삶에 녹아든 습관입니다.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문화’인 겁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종교마저 정치 도구로 씁니다.


덴노(천황)를 신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학교에서는 매일 “덴노 폐하 만세!”

전쟁터에서는 “천황을 위해 죽는다!”


근데 이거,

패전 이후 다 무너집니다.

연합국 최고 사령부가 천황한테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신이 아닙니다. 이제 인간이십니다.”


그제야 일본은

국가신도 → 무종교 사회로 급변합니다.




이게 일본 종교의 핵심입니다.


신을 믿진 않지만, 예의는 지킵니다.


기복은 바라지만, 신념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지만, 절은 합니다.


왜?


그게 질서고, 전통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지키는 방법이니까요.



일본의 종교는 참 특이합니다.


하느님도 없고, 부처님도 없지만—

그 안엔 조용한 절제와 질서가 흐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신은 나를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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