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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랑 신사 헷갈리신다고요? 신사는 부처님안 계십니다!

by 다다미 위 해설자

도쿄의 어느 겨울 아침,
눈이 채 녹지 않은 신사 앞에서 나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조용히 도리이(鳥居)를 지나
작은 정화수로 손을 씻고,
두 번 절하고, 박수를 두 번 치더니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소원도 없이.

그는 그렇게
누구를 기다리듯, 누군가에게 인사하듯
신사(神社)를 다녀갔다.

그때 문득 궁금했다.
“이분은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신사에 오는 걸까?”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하면
믿는 대상이 있고,
경전이 있으며,
기도와 절실함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일본의 신사는 달랐다.
신을 믿는다기보다, 신에게 ‘예를 갖춘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신도(神道)라는 일본 고유의 신앙은
창시자도 없고, 경전도 없으며, 교리도 없다.
대신 조상 대대로 전해온
‘예의’와 ‘의식’이 중심이다.

그래서 신사는 말한다.
“소원을 빌기 전에, 인사를 먼저 하라.”



신사를 가면
붉은 대문인 도리이(鳥居)를 지나
정결하게 손을 씻고,
그 앞에 서서 인사를 하고 박수를 친다

이건 ‘믿습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일본식 인사의 방식이다.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신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고개 숙인다.

이것이 일본의 신사다.


일본 전역에는 약 8만 개의 신사가 있다.
편의점보다 많다.

산에는 산신,
바다에는 해신,
밭에는 곡식의 신,
연애의 신, 장사의 신, 시험의 신,
심지어 화장실에도 신이 있다.

너무 많다 보니,
일본인에게 신은 ‘하나님’ 같은 유일신이 아니다.
존재의 질서 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인사해야 할 대상들일뿐이다.


그날 그 신사에서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다.
“신을 믿는 마음보다,
신 앞에서 예를 갖추는 태도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기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할 일은, ‘고개를 숙이는 예의’ 아닐까?

“신앙은 믿음으로 시작되지만,
공경은 예의로 완성된다.”

일본의 신사는
믿음의 무게가 아니라,
예의의 깊이로 세워진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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