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이 앞에서 한 장만 찍자!”
일본 여행을 갔다가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붉은 문이 줄지어 있는 후시미이나리 신사 앞에서요.
그 친구는 신나게 도리이 밑을 지나고, 손뼉을 치며 절을 했습니다.
“일본 문화 체험이지 뭐~” 하면서요.
그 장면을 보며, 저는 마음이 묘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 일본에 가면
신사도 절처럼 보이고,
절도 신사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형님들,
둘은 전혀 다릅니다.
절은 불교의 공간입니다.
염불, 참선, 자비, 해탈이 중심이지요.
신사는 신도의 공간입니다.
가미(神), 조상숭배, 자연숭배, 천황숭배가 중심입니다.
그리고요,
신사 앞에는 항상 붉은 문인 도리이(鳥居)가 있고,
절 앞에는 산문(山門)이 있습니다.
한쪽엔 스님, 한쪽엔 칸누시(神主, 제관)가 있습니다.
외형만 비슷하지,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두 문명입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신사를 단순한 종교공간이 아니라,
천황 중심의 국가 통치 이념의 상징으로 바꿉니다.
“천황은 신이다.”
“전쟁은 신의 뜻이다.”
“죽으면 신이 된다.”
“신을 모시는 게 애국이다.”
이런 논리로 전 국민 신사참배를 강요했어요.
심지어 우리 조상들에게도 강제로 절하게 했습니다.
그때 조상들 중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에 갇힌 분들도 많았습니다.
왜요?
그건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나는 너희 제국주의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절을 하죠.
그게 뭘 의미합니까?
“과거 전쟁을 반성하지 않겠다.”
“전범은 신이다.”
이런 선언을 세계 앞에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앞에서
“우와~ 신사 멋지다~”
“문화 체험이야~” 하면서 사진 찍고 절을 한다?
그건 그냥 무지한 게 아니라, 무서운 동조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절 한 번쯤이야~”
하지만
절은 머리 숙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절은 곧 나의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절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을 할 수 있어야,
진짜 교양입니다.
진짜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