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처음 갔을 때였다.
친구의 초대로 어느 시골 마을의 2층집에 묵게 됐다.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집.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는 마치 귀마개를 낀 것 같은 느낌에 멈춰 섰다.
‘어? 사람 없어?’
거실에도, 부엌에도, 작은 방에도 모두 불이 켜져 있었고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도 풍겼지만,
그 집은 한 마디 소리도 없었다.
그 조용함의 정체는 바로 ‘목조건물’이었다.
벽도 나무, 천장도 나무, 마루도 나무.
말 그대로 “나무로 된 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이 집에선,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들릴까?
콘크리트는 소리를 튕긴다.
발소리, 말소리, 문 여는 소리
그러나 나무는 다르다.
나무는 소리를 흡수한다.
툭 하고 내려놓은 숟가락 소리가
툭도 아니고 그냥 ‘…’ 사라진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다.
그 침묵이 사람을 조용하게 만든다.
처음엔 괜히 긴장된다.
기침도 조심스럽고, 발소리도 의식하게 된다.
말소리를 줄이고, 문을 천천히 닫는다.
그리고 눈치 없이 소리를 냈을 땐, 나무가 혼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때 깨달았다.
이 조용한 집은 그냥 주거공간이 아니라, '예절 학교'라는 걸.
소리를 줄이면 자연스레
남을 의식하게 된다.
내 행동 하나가 이웃의 평화를 깨뜨릴 수 있다는 사실.
건축이, 사람을 바꾼다.
공간이, 인격을 만든다.
그래서일까.
일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챈다.
지하철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식당에서도
눈빛 하나로 마음을 나눈다.
말을 줄인다고, 마음까지 줄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깊은 배려가 피어난다.
우리는 아파트에 산다.
벽 두껍고, 문 단단하고, 방음 잘 되니까
더 떠들고, 더 쉽게 내뱉는다.
“어차피 안 들릴 거야” 하면서.
하지만 말이 벽은 못 뚫어도,
사람의 마음은 뚫는다.
그러니,
우리는 콘크리트 집에 살아도
마음만큼은 목조건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나무처럼 조용히 들어주고,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고,
침묵 속에서 자란 배려를, 세상에 조용히 나눌 수 있기를.
“소리 없는 집이, 사람을 가르친다.”
말없이 혼내는 집.
소리 없이 다정한 나무.
그 속에서 피어난 침묵의 미학.
그날, 나는
나무로 지어진 그 조용한 집에서,
조용히 사람다워지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