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5화. 노들강변 아리랑

의열단원 김익상의 활약상과 최후

by 벽운

노들강변 아리랑

늦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노량진 노들언덕에 한가락의 피리소리가 애잔하게 들려오고 있다. 그 소리는 숨이 가쁜 듯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곤 하였다. 그 피리소리가 끝나고 구성진 가락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요∼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 지친 육신을 끌고 가려고 해도 갈 데가 없네. 부모형제 다 떠나고 처자도 찾을 수 없는 신세이네. 그 얼마나 먼 길을 떠돌다 왔는지 이 강물은 알겠는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하고 한스런 아리랑이 들려왔다. 어느 병색이 완연한, 남루한 저고리를 걸친 남자가 낙엽을 깔고 앉아 신세타령을 하고 있다.


그는 25년 전에 이곳 노들언덕에 있는 사육신묘에 잔을 올리고 비장한 길을 간다고 고하였었다. 노들언덕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한 번씩 올랐고 사육신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던 곳이기도 하였다. 암울한 시대가 그를 부르니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치기로 맹세하였었다. 그는 마지막 술잔을 유응부선생에게 올리면서 진시황을 시해하려 역수를 건너는 형가의 노래를 읊조리며 술을 따랐었다.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하고 애절하게 노래했다. 그리고 그는 청춘을 불사르며 조국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대장정에 올랐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장면들은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는 술 한잔도 안 하고 맨 정신으로 그 겁나는 곳을 당당하게 들어섰고 여유를 부리면서 그곳을 농락하지 않았던가. 그 젊은 피라는 것이 그토록 뜨겁고 장엄했고 의연했더란 말이지. 그 피를 쏟을 각오를 하였기에 아무 고뇌도 미련도 두려움도 없었지. 마음의 들끓는 분노의 소용돌이가 아무런 주저 없이 당연히 그가 가야 할 길을 가리켜주었지.


그날은 흐렸고 거리는 너무 조용했기에 조그만 소리에도 꿈틀거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종로에는 전차가 한 번씩 뿌지직 불꽃을 튀기며 지나갔고 여기저기에는 인력거를 태우려는 사람들이 매의 눈으로 손님을 찾고 있었다. 길 건너 총독부 건물 정문은 여전히 헌병들이 장총을 어깨에 메고 지키고 있었다. 정문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검문이 엄하고 분명한 용무를 밝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엄중한 감시와 검문이 이루어지다 보니 총독부는 그동안 편안하게 상처 없이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 그 고요함은 어느 순간부터 불안감을 몰고 왔고 다시 꿈틀거림으로 변하더니 어느 순간에 청천벽력으로 변하였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천둥소리는 사방천지를 진동하였다.

그는 노들언덕에서 강 건너 빤히 내려다 보이는 마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그냥 소작이나 하고 머슴살이를 해야 할 바에야, 또 그 진절머리 나는 수탈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에 뜨거운 분심만 올라오는 지라 떠나기로 하였다. 마포는 모든 물류의 종점이었고 또 인생의 종점이기도 하였다. 제각기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서 온 종점이며 강원도에서 출발한 뗏목의 종착지이다. 그는 그 종착지를 출발하여 새로운 시발지를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그 진절머리 나는 왜놈들과 빌붙어 사는 지주들을 보니 맨 정신에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왜놈들이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하고 순사라는 놈들이 심심하면 끌고 가서 무슨 길거리를 배회하는 강아지를 패듯이 하니 사랑하지만 그 나라를 떠나기로 하였다.


그는 잘못된 것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도대체 왜 우리 민족이 일본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지에 이해를 못 하였다. 일제가 들어오기 전에 양반들이 거드름을 부리고 하인들에게 하대를 하여도 같은 민족이니까,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니까 하면서 참고 넘겼었다. 왜놈들은 돈욕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결같이 여색을 밝히는지 가난한 소녀들을 몸노리개로 삼고 또 기모노를 입혀 민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박살 내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잘못하다가는 폭행죄로 아니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힐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는 이왕 떠나는 김에 분풀이나 실컷 하여 왜놈들에게 쫓겨서 국경을 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동네인 마포에 우미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조선인 처녀를 기모노를 입혀 술장사를 하는 못된 왜놈이 있었다. 그 같은 조선인은 그곳에 들락거릴 수가 없었지만 한 번씩 꾀를 내어 출입하곤 하였다. 그는 머리가 좋아 일본말을 빨리 배웠고 발음도 일본인과 다름없이 부드럽고 유창하였다. ‘아리가또오 고자이마스’ ‘스미 마셍’ ‘오 사케가 오이시이데스네’는 말할 것도 없고 말씨로서는 틀림없는 일본인이었다. 거기에다가 간이 컸고 능청스러워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를 넘겨버리는 타고난 순발력도 지녔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연기놀이를 좋아했고 남을 골탕 먹이는 일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는 그 일본 놈 집의 금고를 털기로 하였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무슨 비겁한 게 아니라 당당하게 그러기로 하였다. 그는 그 집주인이 출타 중인 때를 이용하여 그 우미관에 성큼 발을 디뎠다. 그의 옷차림은 틀림없는 일본인 복장이었고 거기에다가 쪽발이 게다까지 신었다. 그는 집주인의 비밀 심부름을 하는 역을 맡았고, 손 편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돈 얼마를 긴급히 이런 이름과 복장을 한 사람에게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전화를 하면 비밀이 누설되니 손 편지로 보내니 그렇게 하여 그 사람 편으로 돈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지금 종로 근방에 조선인 고택이 헐값에 나왔는데 그것에 대한 계약금이 당장 필요하니 금고을 열어서 가네다상에게 주어 엔화로 빨리 보내도록......”하고 주인의 이름과 그럴듯한 도장도 함께 찍혀있었다. 그는 능청스럽게 문설주에 기대어 담배를 지긋이 물고 담담하게 기다렸다. 그 손 편지를 보는 경리는 그의 모든 행동거지가 의심할 데를 찾아볼 수가 없고 헐값에 나온 매물이기에 급히 인편으로 보내야 한다는 이유도 분명하였기에 돈을 스스럼없이 내주었다.


그는 왜놈의 옷을 벗어버리고 왜놈의 말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고 조선인 옷으로 조선말로 갈아입고 봉천행 기차를 탔다. 그 거금의 일부를 뚝떼어 배고픈 아내의 손에 쥐어주고 해방이 되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 돈은 도둑질이었지만 정당한 것이었고 빼앗긴 것을 도로 찾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돈은 자신의 써서는 안 되는 조선인의 한과 눈물이 어린 돈이었기에 장엄한 일에 써야 했다.

그는 다음 날 봉천역에 내려 일박을 하고 이야기로 만 듣던 약산 김원봉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상해는 조계지역이어 행동하기가 자유스러웠기에 임시정부도 있었고 의열단 본부도 있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약산을 만났고 그 자리에는 이종암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다.


“오, 김선생께서 그런 기막힌 연극을 하셨단 말인가요. 천재적인 연기를 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이종암 선생과 비슷한 면이 있군요. 두 분 다 금고를 털어서 독립자금으로 만들었으니.”

“그 일본돈은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그 돈에 그려있는 천황의 얼굴에 침을 탁 뱉고 난 뒤에 씁시다.”

“맞는 말씀이오. 그 돈은 더럽지만 용도는 훌륭하겠지요.”

김익상은 이종암이 대구은행원 출신인 엘리트임을 알았다. 그는 일제의 돈을 횡령하여 독립자금을 댔으니 자기가 한 일 이상으로 통쾌하였다. 그 금액이 어머어마하게 큰돈이었으니 당분간 의열단의 든든한 재정이 되었다. 어차피 그 돈은 동족의 고혈을 쥐어짜서 나온 도둑질 해간 돈이었으니 정당하게 되찾아 온 셈이다. 그에게 약산과 이종암은 아주 소탈하였고 대범하고 열정적인 인물로 비쳤다.

“언제 출발을 하시면 좋을까요. 김선생이 유창한 일본어로 능수능란하게 하면 성공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약산 선생, 저에게 임무만 내려주시구려. 나도 긴장하면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게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니 빨리 하고 싶구려.”

“허허, 의욕이 앞서 성급하면 안 됩니다. 진정하시고 조금 기회를 기다려 봅시다.”

“내가 경성 출신이라 시내 지리나 숨을 곳은 눈감고도 훤하니 잡히지는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하고 김익상과 약산과의 나눈 대화였다.


김익상은 경성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언제나처럼 검문은 있었고 조선인에게는 철저하였다. 그는 양복차림으로 내부를 두리번거리더니 표적을 찾은 매처럼 일본인 여자와 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좌석으로 다가갔다. 유창한 일본으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어린 아기를 자신의 품에 안았으니 틀림없는 부부처럼 보였다. 간간히 일본말을 내뱉으니 부인은 안심하였고 그의 신사도에 감동하였다.

그때 경찰의 순찰이 있었고 그는 얼굴 표정하나 안 바꾸고 부인하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간간이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경찰은 아까운 시간을 그에게 낭비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니 그는 더욱 대담하였고 한 번도 검문을 받지 않고 경성역에 내렸다. 그의 보따리에는 큰고 작은 폭탄들이 들어 있었고 그 위험하기 그지없는 물건은 어찌 한 번도 검문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신의 한 수를 갖고 있었고 스스로의 자신감과 의지로써 장애물을 거침없이 넘었다.


“아아, 큰 폭발이 일어났네. 저 보게나, 혼비백산하여 뛰쳐나오는 꼴을.”

“누가 이 백주대낮에 폭탄을 던졌단 말인고. 아마 의열단이 움직이는 건가.”

이렇게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폭탄을 던진 배후를 추측하거나 그런 바람을 갖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조선 침략의 심장부인 총독부가 참기 힘든 모습으로 경복궁터에 걸터앉아 있으니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무슨 괴물의 두상 같은 그 첨탑은 틀림없는 치욕의 상징이었고 그곳에서 폼을 잡고 거드름을 부리는 관리들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 후련함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이기도 식어가는 심장에 기름을 붓는 것이기도 캄캄한 암흑 속에 빛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꾹꾹 눌려 지내기만 하였던 민족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운 횃불이었다.

그는 천연스럽게 넉살 좋게 당당하게 총독부를 빠져나왔다. 몰려 들어오는 경찰과 헌병들에게 던진 그 몇 마디는 실전에서 하는 연극치고는 너무나 훌륭한 대사였다. 그 어리석은 왜놈들을 조롱하고 희롱하다 못해 또 한번 그들을 바보로 만든 천부적인 재능의 발현이었다.


“오부나이, 오부나이.” 그 말은 위험하니 지금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말이었으니 정작 폭탄을 던진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고 총독부 고등관리의 입에서 나올 말이었다.

김익상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와 종로에서 동태를 파악하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돌덩이에 묶어 한강에 가라앉혀 증거를 인멸하였다. 그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으니 일본인 목수 복장이었다. 총독부에 들어갈 때는 전기공으로 들어갔는데 또다시 변신을 한 것이었다. 그는 봉천행 기차를 탔고 신의주에서 내렸다. 국경 검문이 엄중할 것으로 예상하여 압록강 철교를 걸어서 건너기로 하였다.

신의주 철교는 어제 총독부 폭파사건으로 검문검색이 엄격해서 그런지 한산하였다. 김익상이 철교로 진입하자, 헌병이 제지하며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 헌병을 빤히 쳐다보았더니 그 헌병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


“어찌하여 천황폐하의 헌병이 조선인과 본토인을 분간을 못한다 말인가. 그렇게 해서 어찌 불령선인을 검거할 것인가.”

“다시 한번 말하니 좀 머리를 쓰면서 일하게. 그 머리는 장식용이 아니지 않은가.”하고 꾸짖으니 헌병은 사과를 하였다.

“지금 총독부에 폭탄이 터져 경성에 난리가 났으니, 혹시 범인이 철교로 해서 국경을 넘을지 모르니 철저하게 근무해야 할 것이오.”하고 넝청스럽게 말하니 헌병은 거듭 사과를 하였다.


김익상은 거사 후 사흘째 되는 날 상해에 도착하였다. 약산은 그를 치켜세우면서 그 찬란하면서도 엄중하면서도 코미디 같은 연기력에 갈채를 보냈다. 투사는 완력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넘기는 연기력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순간이 닥치면 몸은 경직되고 마음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잔불 같은 것이 아니던가. 의욕이 너무 앞서서 성급하게 일을 도모하는 것도, 너무 신중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 그 둘 다 투사는 피해야 할 과제이었다. 약산은 김익상의 사례를 의열단원에게 교육시켰고 김익상은 그 교재의 주인공이었다.


일제는 총독부 폭파범에 대한 단서를 하나도 찾지를 못하고 해를 넘겼다. 총독은 분개하였고 조선백성들은 고소해하고 통쾌해 하였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신의 강림으로 여겼다.

며칠 후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가 상해를 방문한다는 정보가 의열단에 날아들었다. 약산은 조용히 이종암과 김익상과 오성륜을 불렀다.

“이번 거사는 국제적으로 우리 조선인의 기상을 만방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오. 다들 훌륭하여 적임자를 고르기에 힘들군요.”

“이번에는 사격의 명수인 오성륜 의사가 맡아주면 어떨까 하오. 김익상 의사는 전번 거사를 성공시켰으니 이번에는 좀 쉬시고요.”하고 약산이 한마디 던지니 자중은 웅성거렸고 불만을 토해내었다. 먼저 이종암이 강하게 말하면서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였다.

“이종암의사는 부산경찰서 폭파와 밀양경찰서 투탄을 성공시켰으니 이번에 좀 쉬시고요.”

“안중근의사께서 하얼빈 역두에서 이또우를 명중시켰듯이 권총의 명수인 오성륜의사에게 맡기도록 합시다.”하니 기어코 이종암은 거부하고 옆에 있던 김익상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약산은 난감하였고 그들의 의욕은 가상하나 거사의 완전한 성공을 위하여 너무 의욕적인 것을 경계하였다. 그렇다고 그 의사들의 의지를 꺾어 버리기에는 너무 그들의 충정이 눈물겨웠다. 그래서 절충하여 제1선은 오성륜이니 제2선은 김익상이 제3선은 이종암이 하는 걸로 마무리하였다.

다나카가 탄 기선이 상해 황포탄항에 도착하였다. 재외 공관장과 일본 교민등의 환영 물결에 쌓여 그 간도학살의 원흉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승용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성륜은 6 연발 권총을 품 안에서 꺼내어 조용히 왼손을 받쳐 들고 놈을 겨냥하였다. 살인마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크게 클로즈업되자 조용히 젖을 짜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명중을 확신하였고 그의 머리에 두발을 심장을 향하여 두발을 당겼다. 나머지 두발은 아껴두었다고 마지막 절명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남겨두었다. 그런데 다나까의 앞에 갑자기 웬 서양 여인이 지나가면서 고스란히 그 탄알들을 흡수하였다. 총성에 놀란 다나카는 승용차 쪽으로 뛰어갔고 나머지 두발을 발사하니 그의 모자를 관통하고 허공을 뚫고 지나갔다.


그들에게는 비운이었고 다른 그들에게는 다행이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닌 운명이었고 하늘의 장난이었다. 그 서양여인만 다나까를 대신하여 황천길로 갔으니 오성륜은 좌절하였다. 그 2선인 김익상이 폭탄을 꺼내어 다나까를 향하여 던졌으나 차바퀴를 맞추고 불발탄이 되어 길 위를 뒹굴었다. 다나까는 혼비백산하여 도망갔고 그 도망치는 차를 향하여 김익상이 폭탄을 던졌으나 그마저도 불발탄이 되어버렸다.

이종암은 혼란의 틈을 타서 도망쳤고 오성륜과 김익상은 잡혔다. 이후 오성륜은 탈옥하였고 김익상은 중범죄로 일본으로 이첩되어 재판을 받고 나가사끼 감옥에 수감되었다.


김익상은 일제의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하지 않았고 즉시 사형은 확정되었다.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원하지 않은 천황의 은사로 감형되어 무기징역에서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그가 행한 조선총독부 폭파 등 중죄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당하지 않고 감형되어 계속 복역한 데에는 일제의 음모가 숨어있었다.


재판정에서도 김익상은 늠름하였고 특유의 유머로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피고는 어찌하여 일본인 행세를 하고 총독부를 폭파하였는가.”

“그대들이 내선일체라고 하였으니 일본어를 썼으니 무슨 잘못이 있는가.”

“듣던 대로 말주변은 청산유수로다. 그게 궤변이라는 거다.”

“하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말이 참말이 아니겠는가.”하고 재판관과 김익상간에 오간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이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피고에게 이익이 되는 증거가 있으면 말해보라.”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오로지 조선이 독립되는 것이겠지.”하고 말하니 재판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김익상의 능청스러움에 경악하였다.


그를 면회 오는 사람도 없어 사식도 반입되지 못하고 다꾸앙과 왜된장국에다가 쌀밥으로 때우니 조국의 김치와 구수한 된장국에 보리밥이 그리웠다. 그는 면회도 사식도 없었지만 원망하지 않고 굶주리는 조국의 동포들을 생각하며 불평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그물을 뜨면서 무료함을 달래었고 그 솜씨가 정교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그 20년이라는 긴 수감기간을 견디어 내려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고 그 그물의 끈이 그를 견디게 해주는 생명줄이었다.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그물 뜨기를 광복이라는 일념으로 손을 놀리니 그에 비례하여 시간은 흘러갔다.


김익상은 다시 구마모토 형무소로 이감되어 본격적인 수형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햇살을 보고 희망을 보기도 하였지만 밤이 오면 암흑이 그것을 다시 빼앗아 가버렸다. 희망이 없으면 단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죄수의 처지인지라 햇빛이 반가웠지만 어찌 보면 백일몽을 꾸는 허망함도 있었다. 차라리 해가 뜨지 않은 밤이 계속되고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고 의열단원들과 거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꿈 속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는 백일몽을 꾸면서 상해에 있는 약산과 동지들을 만나고 깨고 나면 눈시울을 적시면서 그리워했다. 황포탄에서 던진 폭탄이 하필이면 다나카의 승용차 타이어에 맞아 퉁겨버려 그것을 영국 군인이 발로 차서 강물에 빠뜨렸단 말이던가. 그 간도에서 조선동포를 대학살 한 경신참변의 원흉을 폭사시키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다가왔다. 그 처단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약산과 동지들이 얼마나 실망하였겠는가. 그래도 그는 감옥을 탈출하여 다시 약산을 만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높은 형무소의 담을 넘으면 유창한 말로 능청스러운 연기로 충분히 탈출하여 투쟁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는 탈옥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부지런히 그물 뜨기를 계속하였다.


일제는 그를 당장 죽이기에는 아까웠고 여러 방도로 활용할 길을 찾고 있었다. 그가 재능이 없고 단순 용감한 투사였다면 사형을 언도하여 즉시 집행하는 것이 일제가 해온 관행이니 맞는다. 일제는 약산을 사로잡고 싶었고 그의 목에 최고의 현상금을 걸지 않았던가. 일제는 김익상에게 출옥의 희망을 없앴다가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등 교묘하게 다루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였기에 한 번씩 일제는 그 소식들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상, 처자들이 안 보고 싶소. 어찌 가정을 내버리고 불령선인이 되었단 말이오.”

“나는 고국을 떠날 때 나를 잊으라고 했고 나도 가족들을 이미 잊어버렸소.”

“어어 저런, 그런 무정한 사람이 어디 있소. 가족은 나라보다도 중하지 않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나라가 있어야 가족이 있다고 보오.”하고 익상은 그들의 음모를 알아차려 대응하였다.


익상은 우리에 갇힌 범이 되었고 탈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마음이 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회유를 견디기 힘들면 자결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일제의 감옥은 너무나 높고 어둡고 빛이 없고 절망만 안겨왔다. 현해탄 건너 고국이 그리웠고 자기가 죽더라도 광복의 빛을 남겨주고 싶었다. 일제는 끊임없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마음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그는 그런 수법을 진작 알았지만 한 번씩 약해지기도 하였다.


어느 날 교소도장이 그를 불러내어 잘 차려진 사시미에다가 사케를 내놓고 이런저런 말을 하였다. 그는 듣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고, 그들이 주는 술은 예의상 받아 마셨다. 어느 순간 술기운이 전신을 에워싸더니 그를 포로로 만들었다. 그는 두고 온 가족들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모습들이 애처로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순배의 술이 더 들어가자 그 그리움은 참을 수 없는 갈증으로 다가왔고 환영으로 변하여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김상, 처자들이 걱정이 안 되오. 마음만 바꾸면 만나게 해 드리리다. 당장 이곳으로 모시고 올 수 있소이다.”

“그 지긋지긋한 피의 투쟁이 지겹지도 않소. 이제 가족과 함께 우리 일본에서 편안하게 발을 뻗고 지내는 게 어떻겠소.”

“지금 조선은 해방되기는 글렀소. 중국도 이제 손들고 대일본제국에 편입될 것이오. 희망을 버리시오.”하고 교도소장은 그를 협박하는 듯 겁을 주는 듯하면서 그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상해에 있는 약산의 거처를 밝혀내고 접선하는데 필요한 암구호를 알아내기 위해 눈이 시뻘게져 달겨들었다. 후일에 일본으로 가서 재판을 받은 백정기 의사에게도 그랬고 김익상에게는 더욱 집요했다. 백정기 의사는 폐결핵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방을 한해 앞두고 사망하였었다. 일제는 김익상이 일본말도 잘하고 다소 융통성이 있어 강철 같은 백정기 의사보다는 그에게 집중하였다. 그들은 친절한 듯 야비하였고 맹수를 잡기 위해 새끼를 미끼로 삼는 잔인함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김상,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오. 시간은 가고 가족들은 기다리고 있소이다.”

“이미 조선의 광복은 물 건너갔고 하나의 대일본제국이 동양을 다스릴 것이오.”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나가 될 것이오. 빨리 일등신민의 자리를 챙겨야 않겠소.”

“최남선도 이광수도 이미 신민이 되었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 서둘러야 하오.”하고 교도소장은 그에게 천황의 은혜를 직접 챙겨줄 듯이 간절하게 이야기했다.


그의 몸은 이미 쇠약해지고 정신마저 혼미해져 갔다. 기약 없는 고통의 시간은 그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갔고 광복의 희망은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집요하게 회유하는 일제의 감옥은 그를 한 번씩 환상 속으로 몰고 갔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회의감도 잠깐 스쳐갔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신민이 되어 호의호식을 한다는 말에 분개감이 들었다가도 연민이 들기도 또 현명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룬 것이 무엇이던가, 불쌍한 가족들을 내팽개친 비정함은 어쩔 것인가. 오직 자신의 울분을 삭힐 길 없어 기약 없는 먼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그는 악몽에 시달렸고 고향이 그리웠고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자기가 버티면 가족들이 겪을 고초가 어떤가도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 주고 위로해 주지를 않았고 철창밖에서 매일 잠시동안 들어오는 햇볕만이 그의 희망이요 친구였다. 일제의 감옥은 견고했고 냉정하면서도 한 번씩 그를 환상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초인이 아니라 하나의 연약한 갈대이었다.

그는 어느 날 철창틈으로 비쳐오는 햇빛에 의해 형체를 드러낸 거미줄을 보았다. 그 거미줄에는 무수한 벌레들의 시체가 걸려있었고 한 마리의 날파리가 걸려서 그 포승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을 꽁꽁 묶어버리는 거미줄은 운명의 덫이었고 비명 없는 발버둥은 스스로의 말로로 가는 마지막 표현이었다. 그는 감옥 속에서 거미줄을 보았고 그 역시 날파리처럼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진 감옥을 벗어나기는 죽음만이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는 죽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일제는 그런 것을 아예 만들 기회는 물론 방법도 찾을 수 없게 철저하였다. 더 이상 그물을 짜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으니 자결할 수단은 없었다.


그는 회유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교도소장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하였다. 그는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기도 하였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바보가 되기도 하였다.

“김상, 이제 마지막 배려요. 마음 한번 돌려버리면 그냥 평화가 오질 않겠소.”

“어버버 어버버, 아우우 아우우, 이이이 이이이”하고 알아듣기 힘든 말을 토해내었다.

“김상, 지금 실성을 하였소. 그 기괴한 소리를 한단 말이오. 혹시 꾀를 부리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곳이 우리 집이네, 야 친구야 왜 여기에 있노. 나하고 지금 놀자.”

“김상, 지금 실성했소. 더듬다가 내보고 친구라니 맨 정신이요.”

“나는 거짓말을 못한다. 친구야 너나 나나 거짓말하면 벌 받는다.”하고 그는 이상한 말을 계속 지껄여 대었다.


교도소장은 김익상이 정신이 돌았는지 연극을 하면서 비꼬는지 애매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 인가 그보다 더한 헛소리를 하니 신민이 될 마음도 없이 조롱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비싼 황국의 곡식을 더 이상 축내지 않기 위해 그를 출옥시켰다.

김익상은 시모노세키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내렸고 형사의 감시하에 일박을 한 뒤 다음날 부산역에서 경성행 기차를 탔다. 일제는 김익상이 1급 죄인이기에 출옥 후 감시를 하기로 하였고 일단 경성까지 동행했다. 그다음부터는 소위 말하는 일정한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실상의 구금상태에 두었다.

일제는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대신 잔인하게 보복하는 계획을 세워두었다. 경성에 도착하여 다시 하룻밤을 보낸 뒤에 형사는 그를 종로에 있는 고급요정으로 데려갔다. 그 집은 김익상이 봉천으로 탈출하기 전에 엔화를 강탈한 일본인 소유였다. 그때는 기모노를 입힌 조선소녀들을 일본인들의 몸시중을 들게 하던 유곽이 아니었던가. 그는 마음이 쇠한 느낌이 들었고 어쩐지 심상찮은 기분이 밀어닥치기도 하였다. 그 스즈끼 형사는 김익상을 은밀한 별실로 안내하였고 사시미와 사케가 들어왔다. 스즈끼는 그에게 먼저 사케를 따랐고 자기도 한잔을 걸쳤다. 침묵 속에서 한병의 사케를 마셨고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다가 경성땅에서의 감회가 그를 환상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그 긴 세월 동안 밤마다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던가. 그의 아내는 매일같이 들이닥치는 순사들의 심문으로 정신박약 상태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꿈을 꾸었고, 그의 딸은 일본 놈의 협박으로 요정에 나가도록 강제하였고, 그의 남동생은 그 탄압을 피해 만주로 피신하였는 등 상상 같기도 현실 같기도 한 꿈을 몇 번씩 번갈아 가며 꾸지 않았던가. 내일이 밝아 잠이 깨면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하였지만 언제나 그런 것들이 현실로 나타날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술이 들어가니 그는 스즈끼를 넌지시 쳐다보았고 스즈끼는 김익상의 예나 다름없는 뻔뻔한 눈길에 불쾌하면서도 받아들였다. 그 장면은 스즈끼가 본론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기다린다는 신호였다. 스즈끼는 그에게 고급담배를 한대 권하였다. 그리고 담뱃불을 먼저 그에게 붙여주었고 자기 것에도 붙였다. 담배연기는 요정의 허공을 제사상의 향불 연기처럼 줄지어 피어올랐다. 그때 스즈끼는 조그만 비밀 창문의 커튼을 걷어 올렸다.


“김상, 놀래지 마시오. 저기 기모노를 입고 술을 따르는 여자가 누구로 보이오.”

“그야 당연히 옷과 속이 같은 그대 나라의 족속이 아니겠소.”

“허허, 이제는 말귀도 못 알아듣더니만 눈도 침침해서 분간을 못하는 모양이오.”

“나야 두귀가 있거나 말거나 두 눈이 있거나 말거나 한 사람이 아니겠소.”

“잘 들어시오. 저 여자의 이름은 ‘요시꼬 가네다’라고 하오. 기억이 안 나오.”

“김영자, 흔해 빠진 게 그 이름이 아니오. 그런데 창씨 개명을 한 모양이군요.”

‘맞소, 저 여인의 아버지는 가네다상이고 조선이름은 김익상이오.“하고 스즈끼는 비정한 눈으로 조롱하듯이 말한다.


김익상은 고개를 파묻고 흐느낀다. 어찌 잔인하게 그런 모습을 무대에다 올린다는 말이던가. 자신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처럼 행세한 과보인가, 아니면 일제가 교묘히 만든 연극인가. 둘 다 맞을 수 있었고 하나만 맞을 수도 있었다. 그 하나가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는 또다시 야수의 심장으로 돌아갔다.

스즈끼는 다시 그의 부인이 마약중독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여 이미 폐인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내일 당장 면회를 시켜줄 수가 있다고 하였지만 그는 분노의 눈초리로 그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스즈끼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미치던가 아니면 죽던가 아니면 또다시 폭탄을 들던가 하겠다는 마음이 들끓어 올랐다.

그는 사육신묘에 조용히 올라서 25년 전의 약속을 지켜서 다시 돌아왔다고 고하였다. 그때 한강물을 건너면서 부른 노래가 형가가 역수를 건너면서 부른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이었다.

그는 다시 사육신에게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 구슬픈 아리랑을 한곡 부르고 그 잔잔한 한강물을 나룻배 없이 혼자서 서서히 강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시 사육신묘를 되돌아보며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러 고개를 들었다가 숙였다. 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반짝거리고 있었고 그는 그 별자리에 자신의 보금자리 하나를 만들었다. 그는 사육신과의 약속은 지켰지만 가족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다.

다음 날 경성에 어느 일본인 형사가 우미관 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다음 날에는 한강이 서해로 들어가는 입구인 행주나루 근처 갈대숲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떠올라 고깃배 어부가 발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 이후로 노들강변을 오르내리는 돛단배에서 가사를 알아듣기가 힘든 구슬픈 아리랑이 흥얼거리면서 울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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