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신사가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리워하는 사람
크리스마스가 다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어느 봄날 토요일 아침에 누나의 큰 아들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였지만 마음을 추스르면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좀처럼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이었기에 더욱 불안감이 앞선다.
“외삼촌 저 수종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께서 급성 패혈증이 와서 병원에 계신데 혼수상태입니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전화를 드렸습니다.”
“왜 갑자기 패혈증이 왔나. 혹시 생선회를 잘못 드신 것은 아닌지, 비브리오균 패혈증이 한 번씩 걸린다고 하던데. 너무 걱정 말고 잘 간병해 드려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 말로는 대장암으로 인한 것 같다고 합니다. 어찌 대장암에 걸리신 줄도 모르고 견뎌내셨는지, 모두 다 저희들 잘못인 것 같습니다. 한 번씩 소화가 안 된다고 정로환을 드시는 걸 보고 예사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회복이 되는 게 시급하다. 내가 오늘 병원에 가볼게, 아마 그때 깨어나셔야 할 텐데. 아이고 무슨 이런 일이 있노.”하고 조카와 긴급한 전화로 대화하였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도 길 가다가 만나 찬 한잔하고 이야기도 나누었고, 고향 조부님 기념사업 행사 때도 차로 모시고 다녀오지 않았던가. 그때 마을에서 점심을 먹는데 속이 안 좋다고 몇 숟가락만 들고 마는 모습이 있었지만 예사로 생각하였었다. 병원 중환실 앞에서 경과를 기다리니 면회는 안 되고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형님의 말로는 아주 비관적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넌지시 이야기해 준다. 그는 하늘을 붙잡고 간절히 소생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누나가 교회에 다니니까 예수님에게도 그가 절에 나가니까 부처님에게도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늘이 무심치 않았는지 누님은 의식을 회복하여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정밀검사 결과 대장암 말기라고 하니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의 경험으로 볼 때 주변 사람들이 한 1년이나 2년까지를 못 버티고 떠나갔기에 그 또한 큰 걱정이 아닐 수가 없었다. 현재는 살아있으니 걱정하는 누나를 안심시키고 조카들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해야 하였다. 그 흔해 빠진 정밀건강검진 한번 못 받게 해 준 조카들을 질책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고, 그 자신도 아버지를 정밀검진 한번 못 해 드려 암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던가. 모두가 지난 일이며 뉘우쳐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기에 누나의 쾌유를 빌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기만을 바랐다.
누나는 급성 패혈증에서 회복되었으나 대장암과의 싸움으로 무척 고통스러워하였다.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통증으로 잠을 못 이룬다고 하여 지켜보는 조카들은 물론 그도 마음이 아파왔다. 이제는 약물로는 치유가 어렵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하늘의 도움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생존의 의지가 중요하고, 자식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여 면역력이 강해지고, 짧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만 했다. 그는 문병을 갈 때마다 악화되어 가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빌었다. 그날은 마음도 정리할 겸 가고 싶었던 김천 청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무궁화호 찻간에서 생각에 잠기니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동생아, 한 번만 더 할아버지 독립운동유공자 신청을 해봐라. 내가 교회에 나가서 매주 기도하니 이번에는 될 것 같다. 알긋제.”하고 말을 하던 그날에 다시 힘을 얻어 신청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누나는 어려운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격려해 주곤 하였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장기간 투병할 때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손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요플레’를 한 박스 사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아, 생활이 어렵더라도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본가에 매일 어머니 끼니를 챙겨주기도, 병원이나 약국에 모셔가기도 한 그야말로 효녀 심청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동생아, 내가 어머니 때문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마침 동네 사람이 집에 왔는데 나보고 딸이라고 안 하고 간병인이라고 하데. 치매도 아직은 아닌데 말이야.”하고 나한테 하소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어머니에게 왜 그런 말을 하였느냐고 물으니, 아들집에 못살고 혼자 사는 걸 보고 무시하지 못하도록 간병인을 들일 정도로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극을 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누나가 효성이 깊고 이해심이 있다고 한들 지나친 말이 틀림이 없었다. 오래전에 어머니가 낙상을 하여 고관절이 부러지는 수술을 하여 모실 곳이 마땅치 않자, 누나가 자기의 집으로 모시고 가서 회복할 때까지 몇 달간 간병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에 간병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스갯소리로 간병인이라고 하였을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추억을 떠 올리다 보니 어느덧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청암사 가는 버스를 타니 옆자리에 비구니 스님과 같이 앉게 되었다.
“스님은 지금 어디로 가시는지요. 저는 청암사로 가려고 합니다. 십여 년 전에 수도산을 등반하고 수도암은 보았는데 청암사는 못 들렸거든요.”
“마침 잘되었네요. 저는 청암사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오늘은 김천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청암사도 좋지만 수도암은 이름 그대로 수도하기에 정말 좋은 암자이지요.”하고 비구니 스님과 대화하였다. 그는 청암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비구니 스님의 짐을 나누어 들어서 근 십리길을 같이 걸었다. 참 기이한 인연이었고 자연스러운 만남이었으니 걸어가면서 청암사와 인현왕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다. 장희빈으로 인해 숙종으로부터 폐서인이 되어 쫓겨나 청암사에 머물렀던 인현왕후, 장희빈이 폐서인이 되자 다시 궁으로 돌아온 인자하고 후덕한 왕비이었다. 그는 청암사 대웅전에 참배하고 조용히 좌정하여 다시 생각에 잠긴다.
“동생아, 내가 요새 자존심도 상하고 부모에게 효도도 못하고 해서 마음이 안 편하다. 그 돈이라는 게 뭔지 그게 나를 괴롭히네. 친구들을 만나면 자식자랑 돈 자랑하는데 나는 그런 복이 없나 보다.”하고 어느 날 누나가 한탄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누나는 예전에는 잘 살았는데 자형이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어렵게 살아왔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했기에 친구들 모임에 나가서 자기들 자랑만 하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싫었나 보다. 친정집에도 면목도 없고 남들이 하는 효도를 못하다는 자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누나에게 그는 지금 돈보다 더 귀한 어머니를 간병하는 지극한 효도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칭찬해주기도 하였다. 돈이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생활고를 겪으면 마음이 안 편해지고,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돈이 무언지 모르고 지낼 때 그 얼마나 누나가 활달하였고 낙천적이었던가. 가을바람이 휙 불어오니 풍경소리가 그를 깊은 사색에서 깨어나게 한다. 김천역으로 돌아오는 버스의 차창가에 보이는 수도산의 뒷모습이 누가 그를 배웅하고 있는 듯하다. 봄에 잎을 내놓아 여름에 녹음을 만들던 나무들은 단풍이 들어 아름답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산너머로 해가 저물어 가고 산새들도 귀소를 찾아 날아간다.
누나의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어 갔다. 그는 문병을 가서 조용히 손을 잡아보았다. 그가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조카들도 교회에 나가 기도도 하니 병이 다 나을 것이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래도 많이 아픈지 얼굴을 펴지를 못한다. 그는 옛날 시골집에서 살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얼굴을 펴고 슬며시 웃고 있었다. 그 시골의 추억 속에 잠겨있으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되어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낫고 나면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금이 나오니 그것을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혼자서 친구들 만나 맛있는 것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하여, 잠깐 동안은 행복해하였다. 그런데 서서히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버릴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얼마 후 그는 영남알프스 가지산 자락에 있는 석남사를 찾아가려고 한다. 그 절도 청암사처럼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청정도량이다. 그는 이왕 가는 절이면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는 절에 가서 빌면 더 효험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절로 가려고 한 것이다. 가지산 자락의 석남사는 늦가을이어서 입구에서부터 단풍에 물던 나무들이 맞이한다. 한해도 서서히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며 마지막 그리움을 낙엽 속에 담아서 하나둘 길섶에 떨어뜨린다. 어쩔 수 없이 저무는 계절에 떠나야만 하는 이파리들이기에 슬픈 마음으로 보면 애달프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면 그야말로 단풍놀이가 아니던가. 석남사 대웅전에 들어서서 불전함에 시주를 하고 참배한 후 구석에 좌정한다.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빨려들 듯 그는 과거로 여행을 한다.
“동생아, 이일을 어찌하면 좋노. 너그 자형이 말기 암으로 얼마 못 산단다. 내가 기어코 너그 자형을 살리고 말 끼다. 아이구 아이구.”하고 어느 날 전화로 그에게 울부짖으면서 하던 말이다. 그의 매형은 오래전에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다 나았다고 여기던 것이 불편해서 병원에 진료를 받으니 재발하여 시한부 삶이라는 것인 아닌가. 너무나 슬픔에 겨워 마음을 둘 데가 없어 서울에 출장 가 있던 그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부라는 것이 남으로서 만났는데 미우나 고우나 정이 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경제적 문제로, 자식들 때문에 자주 다투었지만 죽음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통곡하였던 것이다.
자형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누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하여 그는 매년 기일에 저녁을 함께 하며 슬픔을 잊게 하였다. 누나가 정말 효녀가 맞는 것은 자형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요양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문병을 하였고, 그런 사실을 나중에 어머니가 형제들의 말을 듣고 알게 되어 잘 안 우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이게 하였었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숨기고 북받치는 슬픔을 어머니에게 표시하지 않았단 말인가.
누나는 부모님에게 큰 빚을 지었다는 것을 항상 그에게 말하곤 하였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형하고 연애를 해서 선을 넘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버지는 누나의 그런 행태에 분노하며 당분간의 왕래를 끊어버리기도 하였었다. 엄격한 유학의 법도를 생명처럼 여기는 선비이신 아버지가 사전 상의도 없이 종교도 기독교인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정말 고약하게 생각한 것이 맞는다. 누나는 사랑을 위하여 부모님의 흔쾌한 동의를 못 얻고 축복 없는 결혼식을 올렸기에 항상 죄스러움에 괴로워하였었다. 그것을 참회하기 위해 부모님이 사는 동네 가까이에 집을 얻어 도와드리기도 하였다. 그가 대학시절에 아버지, 형님과 함께 누나가 사는 동네로 셋방을 얻어 신세를 지기도 한 것이 누나의 참회 어린 효심이라고 믿었다. 어머니가 혼자서 본가에 있을 때 매일 식사를 챙겨드리고 빨래를 하고, 병원이나 약국에 모셔간 것도 참회 어린 효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요양병원의 긴 투병기간에 일주일이 꼭 한두 번씩 문병을 간 것도 그러하다.
“동생아, 아버지와 오빠하고 너한테 밥을 잘해 주어야 하는데 좀 허술하제. 그래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갈치찌개도 해놓았으니 많이 먹어라. 밥을 천천히 먹고 난 후 TV도 실컷 보고 가거라. 아버지가 ‘웃으면 복이 오네’라는 프로를 좋아하니 다 보고 가거라. 알긋제.”하고 그 옛날 누나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대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동생들을 키우고 있었고, 아버지는 헌책을 좌판을 벌여 내다 팔면서 형님과 그를 먹이고 교육시켰는데, 빨래라던가 밥을 해먹이기가 힘들어 일부로 누나가 사는 동네로 슬그머니 이사를 하였다. 누나가 이사 가면 몇 번씩이나 따라다녔는데, 아마 누나가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시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 시절에는 TV와 전화를 갖춘 집이 별로 많지 않았기에, 전파사에 있던 TV를 상점 문 앞에서 서서 보기도 하였었다. 누나도 그 당시에 전셋집에 살았는데 자형이 괜찮은 직장에 나가 살기는 괜찮았었다. 그 안방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일어나서 집으로 가야 하는데 TV프로가 재미가 있어 일어설 줄을 몰랐고, 그 쿰쿰한 발냄새까지 풍기면서 부자지간에 부녀지간에 사돈지간에 부부지간에 함께 어울려 보냈던 그 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 당시 시골에 있던 어머니는 성격이 개방적이고 말을 잘하여 부잣집 자녀들을 중매하여 그 중매대가를 후하게 불러서 받아내어 가정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학벌이 밀리는 자형을, 중매한 총각이 높은 자리에 올라있던 재벌그룹에 취직시켰으니 장모의 큰 덕을 본 것도 사실이었으니, 자형도 좁은 방에서 늦도록 삐대던 장인과 처남들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자형은 장인을 아버지처럼 대하기도 하였고, 귀한 딸을 데려와 고생시키는데 대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였었다.
누나의 병세는 이제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문병하여 누나의 손을 잡으니 말은 못 하고 눈을 깜박이며 손을 꼭 쥐며 발가락을 꿈틀거리면서 반갑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그는 흐르는 눈물을 이겨낼 수가 없어 말없이 잠시 돌아섰다. 의식이 있을 적에 한마디 하여야겠다고 다가가서 말을 하였다.
“누나야, 누나 니는 정말 효녀이다. 내가 지켜봐서 아는데 부산에 내려와서 어렵게 사는 형제들을 얼마나 잘 보살펴 주었노. 그것보다 더한 것은 낙상을 당하여 수술한 어머니를 몇 달간 모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본가 근방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하지 않았나. 누나는 현대의 효녀 심청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나는 정말 착하고 정직하게 효성을 다하며 잘 살았으니 내 말은 정말이다. 일긋제.”하고 말하니 누나는 다시 그의 손가락을 있는 힘을 다하여 꼬옥 잡아준다. 누나는 이제 마지막으로 저 어둡게 보이는 터널을 지나 탁 트인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하다. 어쩌겠는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천사가 곧 이 세상을 등지려고 하니 안타까워하는 가족들과 달리 정신적으로는 환희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 직전인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떠나가려고 하는 누나의 안심을 빌어주기도 자신의 마음도 달래기 위해 초겨울에 계룡산 동학사를 찾아가기로 한다. 새마을 열차는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지나가고 얼마 안 있으면 대전역에서 내려야 한다. 잠시 잠깐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생아, 니가 창원서 신병훈련받는다고 고생이 많았제. 어찌했길래 안경을 부서어서 나한테 연락이 왔을꼬. 처음 전화를 받는데 혹시나 하는 하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데. 다행히 다친 게 아니고 훈련받다가 안경이 부서졌다고 하데. 내 밖에 전화가 없는데 그래서 연락을 했었구나. 아버지도 연락도 안 되지만 걱정도 할끼고 나하네 연락한 게 잘했다. 그래서 너그 조교에게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고 하면서 안경도 맞추고 해서 잘 보냈다. 무사히 제대하여 오거라. 알긋제.”하고 누나가 꿈에 나타나서 말하는 게 아닌가. 사실이 그러했지만 누나는 지금껏 내가 그렇게 말하니 번번이 기억이 안 난다고 웃고 말았던 게 사실이었다. 자기가 한 좋은 일을 일체 내세우지 않는 성품에다가 현재 못 사는 처지로 혹시 자기에게 잘하라고 하는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 같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가슴이 고동치는 감격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는 창원훈련소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았는데, 덩치가 크지만 동작이 느려 조교들로부터 기합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기합을 받다가 안경이 떨어져서 안경알이 깨지고 말아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마침 조교가 주말에 부산으로 외박을 가니 안경을 맞출 수 있도록 집에 연락을 하라고 하였다. 알다시피 집에는 전화도 없었기에 만만한 누나의 집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 조교는 누나를 만나 점심 대접을 받고 함께 극장에 영화까지 한편을 누나하고 같이 보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그 조교가 한 말이지 누나가 한 말은 아니고, 그 조교는 “세상에 그런 좋은 누나가 어디 있겠나”하는 말을 들었다. 제대한 후 누나에게 고맙다고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니 자신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빙긋이 웃고 마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인정이 많기도 한 반면에 자존심도 무척 강한 누나였던 것이다.
새마을열차는 대전역에 도착하였고 그는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유성으로 가서 동학사 가는 버스를 탔다. 동학사는 직장산악회에서 한번 계룡산을 등반하면서 처음 만났고, 그다음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계룡산을 등산할 때 들렀으며, 한 번은 혼자서 정상을 밟고 남매바위를 거쳐 내려와 동학사에서 몸과 마음을 쉬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단종의 자취를 찾아서 몇 번 더 찾았던 적이 있다. 초겨울의 동학사 가는 길은 다소 한산하였기에 사색하며 걷기에는 좋았다. 동학사 역시 비구니 스님이 수행하는 절이며, 숙모전에는 신숙주, 엄흥도, 조여 등 충신들이 단종의 신위를 몰래 모셨던 곳이기에 그에게는 의미 있는 사찰이다. 동학사 대웅전에 참배하고 누나의 안심을 빌고 일어섰다. 내려오는 길에 민속주점에 들러 파전과 막걸리를 시켜 한잔 한잔 들이키니 그 옛날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숙아, 네 이년, 니가 설날에 쓸려고 담가놓은 막걸리 단지를 다 엎어버렸네. 시렁에 떡이 있는데 내려다 먹으려고 단지를 밟다가 엎어버렸제. 매차리가 어디있노 실컷 맞아봐라. 그래도 니가 안 했다고 발뺌을 하니 더 맞아야 하겠다. 나쁜 가시나야.”하고 어머니가 노발대발하며 전후사정도 안 듣고 사정없이 빗자루몽뎅이로 때린다. 그것이 힘없이 부서지니 부엌의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사정없이 전신만신을 때리니 누나는 울고불고하면서 동네골목으로 도망가버린다. 그런데 진작 범인은 따로 있었지만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학교에서 집으로 와야 할 그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였다. 그는 마을에서도 유명한 개구쟁이이고 집안에서도 장난을 치다가 장독도 깨뜨리고 요강도 금이 가게 하고 창문도 들쑤셔 구멍을 내곤 하였으니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나타나지 않으니까 알 수가 없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그를 찾아 동네를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뒷마당에 세워둔 짚동 안에서 부스륵 소리가 나면서 그가 불현듯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어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그를 부둥켜안으니 무슨 술냄새가 심하게 풍기는 게 아닌가. 집안으로 들어와 밝은 데서 보니까 양말도 벗어 호주머니에 넣었고, 옷에는 여기저기 술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바로 그가 술단지를 엎은 범인인 것을 알아차리고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어머니의 심한 추달에 그는 사실을 실토하였으니, 시렁 위에 있는 떡이 배가 고파 먹고 싶어 키가 모자라 술단지를 밟고 올라가다가 중심을 잃고 함께 넘어진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고 빌었다. 이왕 엎지르진 술단지 인지라 어머니는 매를 내려놓았고, 그는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억울하게 두들겨 맞은 누나를 찾으러 나갔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미안하기도 하여 동네를 돌아다니며 누나를 부르니 수동댁 작은방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반갑기도 미안키도 하여 말은 못 하고 우두커니 서있는데 나무라기는커녕 웃는 얼굴로 “훔쳐먹은 떡맛이 어떻더노.”하는 게 아닌가. 누나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보복은커녕 대단한 사랑을 그에게 베풀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집안모임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씩 나오면 웃음꽃이 피곤하여였다. 어른도 흉내 내기 힘든 연막전술을 펴서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영악함도 있었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짚동 안에 숨어서 기다리는 인내심도 대단하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 누나와의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지만 남는 것은 오직 고운 정 밖에 없었다. 그가 부산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였을 때 대학에 다니는 형님과 그를 뒷바라지해 주기 위해 대신동 종고모님 댁에서 잠은 자고 매일같이 새벽에 꽃동네 밑 달동네로 올라와서 아침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가기도 하여 누나가 없었으면 굶거나 거지 행색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누나는 형제들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야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학교 매점에 일하면서 남는 빵조각을 챙겨 와서 주기도 하여 배고픔을 달래주었는데, 그 고마움을 그때는 몰랐었다. 항상 자기 동생이 머리가 좋아 일류 중학교에 다닌다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해주던 마음이 넓고 포근한 모습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인지 누나는 크리스마스날 하늘나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간의 절에 다니면서 올리던 기도도 소용이 없었고 하늘은 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니 가족들의 슬픔은 크겠지만 하늘나라로 떠나는 게 하늘의 뜻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가족들을 안심케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떠났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지라 그날은 기일이기도 명절이기도 하였으니 슬픔이 기쁨과 함께 하니 예배를 보면서 자연스레 누나를 추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신비한 것은 어떻게 성탄절까지 견디어 내었던가 하는 것이다. 강한 믿음이 누나를 며칠만 며칠만 하면서 그날까지 끌고 왔기에 신앙의 깊음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누나를 공원묘지에 모시고 돌아오는 장의차 안에서 인생은 빈손으로 가고 만다는 진리를 알아차렸다. 아무것도 남김없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 추억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그의 마음이 외로울 때 나타나서 손을 잡아 줄 것이다.
그는 누나를 떠나보내어 마음이 울적하여 연말연시를 맞아 한 번씩 찾아가는 태백을 가기로 하였다. 느린 무궁화열차 속에서 지난날을 추상하며 펼쳐지는 눈밭에다가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었다. 열차는 영주를 거쳐 춘양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눈 숲으로 뒤덮인 계곡을 조용히 경적을 울리면서 달려간다. 그 경적소리는 슬픈 노래이기도 초혼가 같기도 하여 그를 같이 울게 하였다. 하얀 눈밭에 뒤덮인 산야는 모두를 무(無)라는 상태로 되돌리고 하얀 도화지 위에 각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로 여백을 마련해 주었다. 이제 열차는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으로 다가간다. 고도를 높여가니 철마도 숨이 가쁜가 차창이 흔들리고 기적소리는 목이 멘다. 철암역에 내려 곧장 태백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서 황지 연못 옆에 있는 자주 가던 모텔에 짐을 풀었다. 내일은 신년 새 아침으로 일찍 일어나 태백산을 오르기로 작정하였다. 황지 못 주변은 청춘 남녀들로 북적이고 귀여운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현장을 보니 지나온 한 해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 태백산 당골행 시내버스를 탔다. 당골 입구에는 신년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등산객으로 붐볐다. 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보람에 가득 찬 얼굴 모습이다. 그는 흰 눈이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반재에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스틱에 몸을 의지하며 천천히 태백산 바로 밑에 있는 망경사를 향해 나아갔다. 망경사에 도착하여 용정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니 속이 후련하고 기운이 다시 난다. 단종비각을 참배하고 곧장 오르니 태백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는 천제단을 참배하고 나서 중천에 떠있는 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하늘이여, 떠나보낸 수많은 인연들이 안녕하게 하소서, 슬픔보다 안도로서 그들을 추모하게 하소서, 언젠가는 떠나야 할 길을 먼저 갔다 여기게 하소서, 오로지 아름다운 추억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는 들고 간 누나와의 긴 이야기를 태백산 정상의 거친 눈바람 품으로 날려 보낸다. 그 이야기들은 눈꽃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리며 천제단을 감돌며 저 밝은 태양 곁으로 잠겨버린다. 한 줌의 백설을 손에 쥐어 꽉 짜본다. 보들보들한 눈이 으스슥 으깨어지며 손가락사이로 눈물처럼 녹아 흘러나온다. 그의 눈가에는 휘날리는 눈송이가 엉켜져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세상만사는 한바탕 꿈이며 흩날리는 눈보라처럼 격렬하게 춤추다가 태양아래 천천히 녹아내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물과 같은 것인가. 이제는 그 아름답고 애달픈 이야기들을 천제단 높은 곳에 저장하여 오가는 등산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겠지. 그는 천제단 돌담에 예쁘게 생긴 조그만 돌멩이를 주워 편지처럼 살짝 끼워둔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 영원토록 천제단과 함께하며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내려오는 열차 간에서 그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가족들 모두에게 희비가 엇갈린 한 해이었으니 기쁨은 순간이요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 것인가. 그해는 할아버지가 근 20여 년간의 독립유공자 신청 끝에 드디어 포상을 받았었고, 그 기쁨은 온 가족들의 것이었으며 그 영광은 부모님들의 몫이었다. 고향 조부님 공적비 앞에서 축하기념행사를 하였으며, 그 행사에 누나를 비롯한 형제들이 참석하였었다.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유공자 신청을 하게 된 것은 누나의 격려가 힘이 되었다. “동생아, 힘들지만 이번에 다시 한번 신청해 봐라. 내가 교회에 가서 매일 기도할게. 독립유공자 선정이 돼야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좋아하지 않겠나. 그쟈.”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신청한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누나는 생계가 어려운 상태이어 조부님이 독립유공자가 되면 큰돈은 아니지만 정부지원금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기초연금에다가 지원금까지 받으면 친구들에게 한 번씩 밥도 사고 팔도여행도 다녀오고, 손자들 용돈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오래 살아 그 혜택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 꿈은 일 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세상에 억울한 일도 많지만 인정 많고 착한 누나가 일찍 떠나간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좀 더 오래 살아 자주 만나 식사라도 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하늘은 그렇게 해주지를 않았다. 하늘이 더 좋은 천국으로 일찍 불러올려, 짧은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라고 불렀던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누나는 어느 한 남자를 구제해 주려고 온 천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무난한 집안으로 시집을 갈 수가 있었는데, 사랑을 찾아서 험난한 길로 간 것이다. 그의 자형은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6.25 때 지식인이었던 아버지가 군경에 의해 원인도 모르게 학살되어 불우하게 자랐다. 홀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형제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으나, 마땅한 직업을 갖지를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인연인지, 누구의 소개인지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게 되었으며, 불우한 가정사를 듣고 동정이 가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딱딱하고 무뚝뚝한 집안에서 자라난 누나는 부드럽고 낙천적인 자형의 성격에 꽂히고 말았으니, 하늘이 점지해 준 연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나는 천성이 인정이 많고 부지런하지만 한 번씩 시샘을 내는 등 남편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한 번씩 부부싸움을 하여 말리려 가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자기의 통제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사랑싸움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누나가 떠나가고 난 후 그는 범어사를 찾았다. 종교는 다르지만 영가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를 하기 위하여서이다. 대웅전에 참배하고 나서 지장전으로 들어가서 절하고 좌정하여 생각에 잠겨본다. 한 가족으로 누나와 동생으로 만나 지난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좀 더 잘해주고, 보이지 않게 지니고 있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했었는데 이미 떠나고 말았다. 항상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한처럼 다가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보다 더한 슬픔이 엄습해 오는 것은 받은 정이 많고 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는 일어서서 배낭을 메고 금정산을 오른다. 부처바위와 무명암 사이에 있는 산성터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산아래에 있는 영락공원 쪽 하늘을 바라보니 오색 무지개 구름이 잠을 자듯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두 손을 모아 고이 잠든 그곳을 바라보지만 이미 오색 무지개 구름이 가르쳐 주듯 하늘나라에 당도하였다는 신호 같기도 하였다.
누나와의 추억이 다시 되살아 일어난다. 그는 누나에게서 받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찾아낸 것이 어릴 때에 산에 나무하러 가서 진달래꽃을 꺾어 한 묶음 만들어 누나보고 꽃병에 꽂아두고 즐기라고 한 것이 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먼 산에 시사를 지내는 곳으로 찾아가서 편법으로 떡을 두몫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그 떡을 동생들이 안보는 곳으로 누나를 살짝 불러 먹으라고 건 내준 일이 생각난다. 또 한 번은 누나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잘못하여 고무신이 물에 떠내려 가는 것을 헤엄을 잘 치는 그가 물에 갈아 앉은 신발을 잠수하여 건져다 준일이 있었다. 그것은 하찮은 것으로 누나의 큰 은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누나가 중학교 3학년 때, 동네 여자친구들하고 밤에 읍내에 있는 남학생들하고 경치가 좋은 냇가에서 모여 놀고 있다는 소문이 어머니 귀에 들어왔었다. 어머니는 그를 불러 누나가 그곳에 있는지 살짝 가서 보고 오라고 말하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숨어서 어둠 속이지만 그 무리 속에 누나가 끼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떻게 하나 망설여졌고, 이실직고를 하면 누나는 머리채를 낚아채여 두들겨 맞을게 뻔하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해서는 안되지만 거짓말을 하기로 하였다. “어무이, 그곳에 가보니까 누나는 없고 순자 누나하고, 옥이 누나하고, 점이 누나만 있더라. 누나는 아마 명순이 누나하고, 영순이 누나하고 해동아지매 집에 있는 것 같더라. 내가 눈이 밝아 정확하게 보고 왔다.”하고 그는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해주어 누나가 두들겨 맞는 상황을 피해 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하고 말수 약국 앞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려고 가는 참이었다. 그때 골목 안에서 누나가 친구들하고 어울려 수다를 떨면서 우리들 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안 부르면 그냥 지나칠 것 같아 큰 소리로 누나 이름을 불렀다.
“누나야, 지금 친구들하고 밥 먹고 차 한잔 하러 가는 길인가 보제. 내 친구들이 인사한다고 하니 받아 줘라. 모두들 대신동 학원 다닐 때 꼬치 친구들이다.”
“아이구, 친구들이라 반갑네요. 여기 약국주인도 계시네. 아마 명지에서 태어난 모양이시제. 내 친구 귀자가 잘 안다고 하던데. 그동안 우리 어머니 약도 잘 지어주고 갈 때마다 박카스도 주고 정말 고마웠는데.”
“자, 봐라 친구들아, 우리 누나가 멋쟁이가 맞제. 혹시 탤런트 누구하고 닮은 것 안 같나. 나는 이효춘하고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데 어떻노.”
“아, 그렇네. 영판 이효춘하고 닮으셨네. 연세가 드셨는데 예쁘시고 미소 짓는 게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시네. 인세야, 너는 우찌 너그 누나를 안 닮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노.”하고 태준이가 맞장구를 친다.
“우리 누나가 이래 봬도 시골에서는 멋쟁이라고 깃발 날렸다 아이가. 이웃동네 총각들이 멀리서 와서 용건도 없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그랬제. 동네 총각들도 저그 집에 연장이 있는데도 일부로 빌리려 오면서 누나 얼굴을 슬쩍 보고 가기도 했다면 말 다하겠제.”하고 그는 친구들과 함께 누나를 실컷 띄워 준 적은 있었다. 그게 누나의 고마움에 보답이 되지는 못할망정 일시적으로 기분을 좋게 해 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잊을 것은 잊어야 하고 슬픔을 승화시켜 고인의 유덕을 기리면서 가족들은 살아가야 한다. 그는 첫 번째 누나의 기일인 크리스마스 저녁에 조카들을 불러 조촐하게 반주를 곁들이며 식사를 하였다. 조카들은 교회에 나가 신앙심이 깊어서 그런지 슬픔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표정들이 밝았다. 아마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듯이 천국에서 천사로서 일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불교를 믿지만 극락세계에 안착하여 관세음보살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년에도 크리스마스가 오면 조카들하고 만나 누나와의 추억을 나누면서 성탄절 저녁을 보내기로 하였다. 음식점을 나오는 데 골목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저 멀리 동쪽 하늘에는 반짝반짝 샛별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