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10화. 심원암

거제도 출신 친구의 청소년 시절 추억과 심원암에 얽힌 이야기들

by 벽운

심원암

세민의 친구들은 섬에 많이 살고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큰 섬들에서 말이다. 거제도가 그렇고 남해도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거제출신들이 많고 친해진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아마 슬픈 사연들이 세민의 그것과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대하면 항상 파도같은 충동과 갈증이 혼재하여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명호는 거제도를 조상들은 감옥처럼 여겼지만 어쩌던 그에게는 보금자리였다. 그 갯내음이 온몸을 염색하여 냄새조차 바다가 돼 버린 운명이었다. 아침이면 먼저 붉게 타오르는 해를 바다에서 먼저 맞았다. 산머너로 저물어 다시 바다로 입수하는 모습은 해가 태어나서 늙어가고 죽는 곳이 바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 바다는 항상 슬픔을 가져오기도 희망을 실어오기도 하였다.


명호의 선조는 뭍에서 들어왔다. 그냥 무엇엔가 쫓겨서 살기위해 왔다. 더 이상 도망갈수 없는 포구에 주저앉아 운명과 싸워나갔다. 남자들은 목숨을 담보로 맡기고 고기를 찾아 나섰고 여자들은 허벅을 껴안고 갯가에서 미역을 땄다. 산비탈 밭에서 그것도 곡식이랍시고 수수나 조를 심었다. 더 이상 물러설수 없는 삶의 절벽에서 한가닥 동앗줄을 부여잡고 생명을 키워나갔다. 세찬 폭풍우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그 슬픈 소식을 안고 왔다. 더이상 흘릴 눈물도 물러설 공간도 없는 운명의 터전에서 서로를 병풍삼아 구슬픈 인생을 노래했다.

그가 태어나고 커온 곳은 망치라는 곳이다. 고개를 바라보는 곳이기도 바다를 바라보기 좋은 고개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곳이 세상천지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고 믿었다. 단, 부모님이 계시고 나이를 먹지 않아 소년으로만 살수 있다면 말이다. 그는 어쩔수 없이 도시로 나갔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어느 해 연말이었다. 명호는 친구들 몇 명을 불러 고향을 찾아가기로 했다. 매년 연말이면 방문하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모두의 운명의 갈림길에서 자칫 거쳐갈 수 있는 고아원이었다. 그곳의 원장은 여자였고 환한 미소가 그의 이름을 대신해주었다. 친구들은 항상 고아원이라는 곳에 미안해하였다. 그들이 져야할 책임을 대신 안아주기에 고마워하였다. 그런 점에서 연말 성탄절을 앞두고 찾아가는 것은 양심의 가책을 살짝 들어주는 묘약이기도 하였다.


친구들은 고아원을 방문하고 난 뒤에 명호의 선산을 들러보았다. 명호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친구들 스스로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거제시내로 넘어오는 길에 명호와 인연이 닿은 심원암을 찾아갔다. 그곳은 북병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끼고 있었으며 주변은 편백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거제치유의 숲이라는 안내판을 따라가니 심원암이 나타났다. 명호는 심원암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절의 규모가 너무 커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심원암을 찾은 지는 그때 이후 처음이었다.


주지스님은 보이지를 않았다. 명호는 법당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상 앞에 좌정하였다. 왜 이제 왔느냐 하면서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눈을 감자 파도처럼 밀려오는 죽음과 욕정의 두 그림자가 촛불아래 춤을 추었다. 오욕에 찌들었던 그 시절의 죄의식이 뱀처럼 스믈스믈 허물을 벗어서 법상아래 차곡차곡 쌓여갔다. 향불은 긴꼬리를 남기며 승천하고 선향이 마지막 재를 남기고 쓰러질 때 풍경소리에 깨어났다. 면죄부를 대신하여 준비한 시주봉투를 불전함에 밀어넣었다.


세민의 친구 중에 명호이외도 승철이라는 군대친구가 있다. 그 역시 명호처럼 거제도를 운명처럼 붙잡고 살아왔고 뭍에 살지만 항상 갯내음을 그리워하고 있다. 명호와 승철 모두 어머니 배냇물 같은 갯내음을 잊을수 없어 뭍에서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산다.

그날 밤 세민은 승철에게 거제도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그 장소는 옥포와 지세포는 물론이고 심원암에 대한 것도 있었다. 잠시 후에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심원암이라니, 어찌 그곳을 갔단 말이고. 참 신통하네.”

“신통하다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기나 한가.”

“물론이지, 그절은 우리 선대의 재를 올리는 곳이지.”

“또 주지스님을 잘 알고 있지.”하고 말하는 게 아니던가.

세민은 그 말을 듣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도 고아원을 다녀왔다고 하니 그곳도 잘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민의 군대동기인 승철은 옥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약건재상을 하였다. 중학교 때는 여자들과 섞여서 함께 공부하였다. 그의 중학교 친구들은 생김새 만큼 다양하였다. 고기잡이 선장의 아들도 죽방멸치어장집 딸도 목사 아들도 스님의 딸도 있었다. 그의 반에서 단연 눈에 띄는 여학생은 대처승의 딸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몸매에 한 번씩 흘리는 눈웃음은 남학생들을 사죽을 못쓰게 만들곤하였다.

명호와 승철은 세민의 친구들이지만 한 번도 만난적은 없었다. 학교친구와 군대친구이니 당연하였지만 한 번씩 그가 중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섬으로 갔지만 육지를 보면 포근해하였다. 그 선조들이 뭍에서 왔기 때문에 외갓집을 그리듯이 한번씩 그랬다.


명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피를 토했다. 백짓장처럼 창백하게 도배된 얼굴은 이미 마지막 생명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신호였다. 이미 망가져 바람을 일으킬 수 없는 대장간의 풀무인양 허파는 텅텅 비어버렸다. 간간히 겨울철 강가의 갈대가 부딛히는 그 사그락거림은 탄력을 잃은 생명의 통로를 날카롭게 긁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오는 그 어두운 그림자가 금방이라도 비수를 안고 덮칠 것 같았다.

얼마 않있으면 대학입시가 있는데 큰일이 난 것이다. 진학보다는 먼저 살아야 했기에 보따리를 싸들고 거제도로 내려왔다. 그 문학도를 향한 꿈이 좌절되고 이제는 생명을 지켜야하는 벼랑 끝에 서게된 것이다.

명호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심원암으로 들어갔다. 우선 살아야만 했고 그 다음에 공부가 있었다. 집안에서 머리가 좋아 아버지가 큰 사람으로 만들려고 부산으로 보냈는데 허무하게 귀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절 한쪽 마구간 옆에 방 한 칸을 빌려 자취를 하였다. 심원암은 말이 절이지 스레트지붕의 절의 모습을 한 촌집과 다름없었다. 주지는 자식들을 키웠고 밭을 갈기 위해 소도 키웠다. 폐사지에다가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중창하였으니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고 한번씩 살생도 해야했다.

명호의 폐는 벌집처럼 패여 있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가슴 안쪽에서 마른 갈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수건에 뱉어낸 가래에는 늘 검붉은 선혈이 실려 있었다. 대학 교정 대신 그가 도착한 곳은 심원암 마구간 옆의 곰팡이 냄새 자욱한 골방이었다. 이제부터는 운명의 부름에 따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하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생존은 비릿한 냄새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햇살이 편백나무 숲을 뚫고 지열을 달굴 때면 차가운 피를 가진 것들이 바위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명호는 떨리는 손으로 작대기를 휘둘렀다. 제 띠와 같은 뱀들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하고 숨을 헉헉거리면서 하소연했다.

이렇게 서로는 먹고 먹히며 살아야 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죽여야 했다.

주지스님이 밭으로 나간 오후에 명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화로에 숯불을 피웠다. 석쇠 위에서 껍질이 말려 올라가며 고소하면서도 노린내 나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뱀의 살점은 담백했으나 그 안에는 지독한 생명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것을 씹어 삼킬 때마다 명호는 자신의 뻥 뚫린 허파가 조금씩 메워지는 착각에 빠졌다. 살생의 냄새는 방 안 가득 고였다. 그것은 곧 명호의 몸 냄새가 되었다. 그 비릿한 생존의 감각은 어느 무더운 여름밤에 벼락처럼 음심으로 번졌다. 그 꿈틀거리는 생명력은 정확했고 어김없이 발동했다.


그날 밤, 명호는 가슴에 차오른 열기를 견딜 수 없어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물을 담은 아담한 소沼가 있었다. 숲은 낮 동안 품었던 열을 아직 다 내놓지 못한 채 눅진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는 물소리를 들으면 기침이 잦아들 것이라 믿었다.

계곡에 다다랐을 때 달빛이 물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그 빛 사이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본능처럼 발걸음을 멈췄다. 요염한 달빛아래 반사된 얼굴은 주지의 딸이었다.


그녀는 폭포 밑에서 물을 껴안고 있었다. 옷들은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등에 붙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곡선은 대리석 조각상처럼 아름다웠다. 신비를 안고 있는 가슴과 허벅지는 껴안고 싶기도 안기고 싶기도 한 모순적 충동을 불러왔다. 명호는 한 발짝 물러서려 했으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고 눈길은 더 가까이로 다가갔다. 숨을 들이키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그는 기침이 터질까 두려워 손으로 입을 닫고 이를 악물었다.

밤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은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 소沼의 물결이 일때마다 선녀 같은 그림자가 흔들렸고 그 흔들림이 명호의 눈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소매 끝에 묻은 자신의 검붉은 선혈과 대조되는 눈이 시릴 정도로 백옥 같은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그는 보려 하지 않았지만 이미 본 뒤였다. 피할 수 없는 인식처럼 그 장면은 그의 몸에 드리웠다.


그 순간 낮에 삼킨 뱀의 살점이 떠올랐다. 생명을 씹어 삼키던 감각과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넘겼던 모든 경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간 숨죽여 있던 생명의 본능이 불끈 일어섰다. 명호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더는 병자의 자리도 수행자의 자리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제어할수 없는 원초적 욕망의 덩어리였다.

그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발소리를 죽인 채 숲속으로 물러났다. 숨은 끝내 터져 나왔고 그는 나무에 기대어 한참을 헐떡였다. 가슴이 아파왔다. 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느닷없는 기침소리는 침묵을 깨고 물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날 밤 명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헐떡거리는 가슴이 울혈되었고 그 황홀한 잔영이 밤새도록 일렁거렸다. 눈을 감으면 달빛에 부서지던 물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내 귓속에서 울림으로 변해갔고 뇌리에 새겨졌다. 아름답고도 아쉬운 장면이었고 생명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현장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명호에게 나물 접시를 건넸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선물이었다.

“어제... 미안했어요.”

그 말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명호는 끝내 묻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고사리 같은 풋내가 풍겨왔다. 명호는 은은하면서도 그립기도한 그 냄새를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주지의 딸은 옥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여름방학이라 절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명호는 주지 딸에게 마음을 빼앗겨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명호가 미안해야할지 그녀가 그래야할지는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찌 서로가 미안해하였는지 알수는 없었다. 줄 수 있는게 있었고 줄수 없는 것도 있었다.

세민이 심원암을 알게 된지는 이십 년전이었다. 출가한 세속의 친구를 태우고 거제도와 남해안 일대에 수행할 조용한 토굴을 찾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심원암은 명호가 소개해주었다. 그절을 본 친구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고 수행처로 맞지 않다는 낌새였다. 여인의 분냄새가 아직도 풍겨 나왔으니 말이다. 그곳 어디에선가 오래전에 파묻어 놓았던 고소한 냄새가 새어나와 코를 자극하였다.


전쟁이 터진 해 그날 밤은 어둠이 짙게 드려우진 그믐이었다. 백씨는 동료 세 명과 함께 보급투쟁을 나갔다. 배가 고파서 물로서 헛배를 채우고 고구마는 이제 물려버렸다. 마을마다 몇 번을 훑었기에 튀어나올 양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삼팔선을 통과하여 내려온지도 두달이 다되어가고 전선은 정체되었다. 낮에는 미군의 정찰로 산에서 나갈 수 없어 오직 밤을 기다렸다. 삼인조는 여항산 자락에서 국군에게 잡혔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었고 총도 버리고 사상도 던져놓고 순순히 항복했다. 세 명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옮겨져서 또 다른 감금생활을 하게되었다.


반공포로로 석방된 백씨는 거제에다 짐같은 몸을 풀었다. 그간의 지긋지긋한 행군과 전투로 더 이상 움직이기가 싫었고 그럴 힘도 없었다. 그는 옥포시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였지만 마땅한 자리는 없었다. 어느 봄날 시장통에서 백씨 성을 가진 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그 한약재상의 상호가 종씨임을 알려주었고 그는 그곳을 얼씬거렸다.

“이보게, 본관이 수원이란 말인가. 그러면 우리 종씨가 맞네.”

“예, 통천에 일가들이 많습니다. 가게 간판이 만나게 해주었네요.”하고 한약재상 주인과 백씨가 나눈 이야기였다.

옥포 시장통의 낡은 한약방 안은 쌉싸름한 감초 냄새와 묵직한 숙지황 향으로 가득했다. 백사장은 돋보기를 내려놓고 앞에 앉은 초췌한 사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내의 손등에는 거친 막노동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짐승처럼 예민하게 빛나고 있었다. 삼팔선을 돌파하고 서울을 거쳐 전라도를 빙돌아 함안까지 오면서 일어난 일들을 실토하였다.

“선생님, 저가 사람을 죽였어요. 개미새끼 한 마리 못 죽이던 내가 말입니다.”

“허허, 어찌 자네 탓이던가. 다 비정한 세월 때문이지.”

“내 동생도 국군인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네. 아마 죽었을 거야.”

“저는 한 번씩 조준사격으로 국군을 쏴죽였지요. 진동전투에서요.”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씨는 그믐날에 정찰을 나갔다. 거제도가 바라보이는 진동앞바다는 희멀건 거품을 쉴 새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등지고 있는 여항산은 황소의 등처럼 바다를 향해 수그리고 있었다. 서서히 능선을 따라 바다 쪽으로 흘러나오니 외딴 오두막집이 쓸쓸하게 퍼져앉아 있었다. 그 3인조는 빈집으로 들어갔고 조용히 사방을 훑어 나갔다. 그때 마주편 바닷가에서 두 명의 국군이 오두막쪽으로 걸어오는게 아닌가. 별다른 경계도 없이 그냥 방심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백씨는 두려웠고 들고 있는 총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점점 가까워지자 정찰조장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재빨리 쏘고 도망가자는 명령이었다. 그는 지금껏 정조준 하여 쏘아본적은 없었다. 대부분 머리를 쳐박고 허공에다 총알을 버린게 대부분이었다. 희미한 그믐달빛에 어린 국군의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그는 망설였고 조장은 다그쳤다. 그는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하는 소리와 함께 어린 국군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정찰조는 어둠속으로 급히 사라졌다.


백씨는 살인의 죄책감을 내려놓지 못하고 괴로워하였다. 아무리 백사장이 달래도 진정되지를 않았다. 그는 살아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절로 들어가게. 내가 아는 절이 있네. 그곳에서 참회하며 살아가게.”

“그곳에 내 동생을 혹시나 하며 모셨네. 천도를 빌어주게나.”

“예, 큰 살생을 하였지만 목탁독경으로 참회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래, 어디 죄라는 게 흔적이 있던가. 다 마음이 만드는 것이지.”하고 두 사람은 애절하게 이야기했다.

백씨는 그 어른의 소개로 절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살아야할 곳은 시장통이 아니라 산이었다. 그때까지도 따발총으로 쏴 죽인 국군들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무서운 저주의 올가미를 벗어나려면 절로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그는 종씨 어른의 소개로 심원암을 찾았다. 손 편지를 들고 주지실 문을 두들겼다. 절이라고 하지만 그냥 깃틀집 같은 곳에다가 불상을 모신 정도이었다.

“어허, 백대인의 소개로 왔다구요. 집안이다 보니 살길을 열어주었군요.”

“예, 사람 눈이 무서워서 절이 아니면 하루라도 못 살것 같아서요.”

“여기서 나무도 하고 약초도 캐고 하면서 수행하시오. 수행이 별거 있나.”

“예, 그냥 누울 자리만 있으면 되고 밥벌이는 할게요.”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당시 심원암 주지는 대처승이었다.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아들은 절이 싫다고 대처로 나가버렸고 아내와 딸과 함께 살았다. 절 살림은 시주가 없어 초파일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나마 산에서 나오는 약초와 버섯이 살길을 열어주었다. 약초는 옥포시장에 있는 백씨 한약재상으로 보내게 되어 서로 잘 알게 된 것이다.

무슨 인연인지 반공포로인 백씨는 주지 딸과 혼약을 맺어 대처승으로써 심원암을 경영하게 되었다. 살기 위해서는 절이 있어야 했고 약초를 캐어서 경영해야 했다. 임종을 앞두고 은사이면서 장인인 주지는 꼭 손을 잡아주면서 당부를 하였다.

“원해야, 이절은 나의 구원처였다. 너도 그렇게 믿고 잘 살아가거라.”

“예, 큰스님. 이 은혜를 어디에다 갚아야 하는지요.”

“그냥 인연 따라 잘 살아가면 된다. 길이라는 게 어디 딱 정해져 있더냐.”

“예,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살림살이를 잘 해보겠습니다.”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명호는 심원암에서 살아서 나왔다. 벌집처럼 뻥뻥 뚫린 허파는 기적처럼 봉합되었고 숨을 쉴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숲이 내뿜는 공기를 흡입하고 산이 주는 뱀이라는 단백질이 그의 생명을 살렸다. 그때까지도 그는 심원암을 구원처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 은혜를 잊고 있었던 셈이었다.

명호에게 심원암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곳은 자신의 설계도를 그리고 재건하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또 자신의 뿌리와 운명을 다시 확인하는 배움의 터전이었다.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생명을 지키고 존중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한때 대학 진학과 문학적 꿈에 집착하던 소년은 이제 현실 속에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는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절에서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명호는 자연의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깨달았다. 달빛이 계곡물 위로 부서질 때 산새의 지저귐이 아침 공기를 채울 때가 그랬다. 그는 숲의 미세한 진동에도 온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살아있고 숨 쉬고 먹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이 그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명호는 의성김씨 집안의 육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늦게 세상에 나온 건 순전히 그의 아버지의 아들 욕심 때문이었다. 큰 아들은 어쩐지 공부에 관심이 없고 고기잡이는 좋아하였다. 막내아들 하나를 낳아지면 학문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명호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명이 길라고 심원암 주지에게 팔았다. 그의 이름은 명호도 되고 판호도 되었다. 오래 살아야 길게 학문도 배우고 깊이도 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일년에 미역 한뭇과 쌀 한말을 시주로 보냈다.

주지는 명호가 오래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가 결핵으로 절에 있을 때 평소 보다 두배나 목탁을 두드려 주었다. 또 공부방에서 새어나오는 고기 냄새에 눈감아 주기도 하였다. 한 번씩 뱀을 주워다가 나무통에 넣어두어 명호가 가져가는 걸 눈감아 주었다. 평소에도 잡아 둔 뱀을 모아 땅꾼에 넘겨주어 절 살림에 보태었으니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세민이가 친구 스님을 모시고 심원암을 들렀을 때 주지스님하고 나눈 이야기였다.

“명호 소개로 오셨다고요. 그애는 나한테 팔려왔었지요. 명이 길라고.”

“아마, 환갑이 넘어서 낳았으니 효자인 셈이지요. 아버지도 힘이 세고.....”

“그애가 한번 나타날 낀데 언제 올라나. 교수가 되었다고 하든가.”

“폐병에 걸려 오던 날 눈앞이 캄캄했는데. 뱀 덕분에 살았지 뭐.”

“그 애가 뱀띠였으니 뱀이 도운게지. 사주팔자가 딱 들어맞았지.”

명호는 자신이 태어나고 병이 들고 다시 살아난 것은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 외로운 섬의 마지막 물결을 타고 가난한 어부의 집에 상륙하였다. 사그라져가던 초가에 빛을 드리우게 하여 먼 바다를 꿈꾸게 하였다. 언제가는 도착할 범선을 기다리며 부지런히 바람을 안고 달렸다. 그 고독한 항해에서 생명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굽이치는 파고를 넘어 욕망의 바다를 건너 고요한 그의 성지에 닻을 내렸다.


어느 날 부터 명호의 귀에서는 밤낮없이 소리가 났다. 벌레 우는 소리 같기도 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같기도 했다. 때로는 누군가 욕설을 퍼붓는 것처럼 들려 잠을 설쳤다. 그는 귀를 막아보기도 하고 고개를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소리는 몸 안쪽에서 울렸다. 병원에서는 이명이라 했다. 신경성이라며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남겼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명호는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소리는 그곳에서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처음부터 그 소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날 밤 죽였던 뱀들, 삼켜버린 생명들, 달빛 아래서 보았던 몸,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넘어갔던 모든 경계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어느 날 명호가 세민에게 털어 놓은 하소연이었다.

“꿈에 심원암이 보이고 도망가고 숨고 흐느끼던 장면도 나오네.”

“나도 한때 이명이 왔는데 이제는 못 느끼겠네.”

“그 비법을 한번 말해줘라. 예전부터 면허 없는 한의사가 아니었나.”

“그러면 그 소리를 북소리나 목탁소리나 물소리로 생각해버려.”

“소리가 사라지면 이명도 없어지겠네. 소리라는 게 참 지울 수도 없고.”

“그 소리는 마음이 만드니까 마음이 없으면 소리도 없지.”


명호는 분명 무슨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꿈속에서 지인들이 자기를 공격하고 도망치는데 갑자기 길목에 뱀들이 나타나서 겁을 주더라는 것이었다. 세민은 처방전을 가르쳐주고 한번 실천해 보라고 권했다. 지난날을 참회하고 절에도 나가 봐라고 하였다. 명호는 심원암에서 잡아먹은 뱀 생각이 떠올라 살생을 참회하였다. 세민이가 말한 처방전을 실험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쉽사리 이명은 진정되지를 않았다.

명호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마른 하품이 잦았고, 그는 물 밖으로 나온 붕어처럼 입을 벌린 채 숨을 찾았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시선은 자주 흔들렸다. 가끔은 귀 안쪽에서 무언가를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두 손으로 귓바퀴를 감싸 쥐었다. 숨이 새어 나왔다. 소리는 없었지만 그 한숨은 방 안을 한 바퀴 맴돌다 갈 곳을 잃고 다시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세민이의 권고대로 명호는 절을 찾아갔다. 법당 안의 선선한 공기 속에 좌정했다. 눈을 감자 고요를 틈타 기다렸다는 듯 귓속에서 수십 마리의 뱀이 마른 풀을 헤치며 지나가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긁어댔다. 그것은 살기 위해 삼켰던 뱀들의 비명이자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연정의 신음이었다. 그때 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내음이 명호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향기는 예전 심원암 골방에서 맡았던 비릿한 뱀의 노린내와 계곡에서 풍겨오던 산초의 풋내를 한데 섞어 불태우는 듯했다.

그때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눈매가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명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검붉은 죄의식들이 뱀의 허물처럼 투득투득 끊어져 나갔다. 껍질을 벗어 던진 기억들은 법상 아래 차곡차곡 쌓여 이내 한 줌의 재로 변해갔다. 그토록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생존의 부책감이 비로소 타인의 생명을 빌려 연명했던 그 미안함이 향불의 연기를 타고 승천하는 순간이었다.


명호는 떨리는 손으로 시주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수십 년간 가슴 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를 봉인한 것이었다. 툭 하고 봉투가 불전함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 기이하게도 그 작은 마찰음이 법당 안의 거대한 정적을 깨뜨리는 순간 귓속을 가득 채웠던 파도소리와 뱀의 기척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풍경 소리가 맑게 울렸다. 비워진 귓속으로 비로소 거제도의 청정한 바람 소리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명호는 소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속으로 목탁을 두드렸고, 북을 울렸고 풍경을 흔들었다. 그의 마음은 늘 법당에 가있었다. 관세음보살상이 하얀 옷을 벗고 백옥 같은 나신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향불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몸에 배어들고 혼탁한 기운을 들추어내었다. 그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붙잡아 다듬고 있었다.


명호는 기도하던 암자에서 내려온 며칠 뒤 평소와 달리 고요한 숨을 들이켰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세민의 목소리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조용하네.”

“뭐가?”

“귀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네.”

그 순간, 명호의 몸 안 깊은 곳에서 오래 묵었던 긴장과 공포가 한꺼번에 풀려나가는 듯했다. 이명과 꿈속의 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넘어야 했던 경계와 죄의식... 그 모두가 사라져버렸다. 귀 안의 빈 공간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달빛에 부서진 계곡물 소리가 이전과 달리 분명하고 맑게 들렸다. 살아있고 숨 쉬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것이 명호에게 처음으로 평온이라는 이름의 감각으로 다가왔다.

“이제 꿈도 안 꿔지네. 길목에 뱀도 없고.”

그가 낮게 중얼거렸지만, 이번에는 말끝에 떨림도 두려움도 없었다. 대신 묵직하지만 단단한 안도감과 삶에 대한 결의가 섞여 있었다.


명호는 숲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달빛 아래 편백나무 숲과 흐르는 계곡에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 자연의 모든 것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 죄책감을 붙들 필요도 없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의미 있었음을 알았다.

깊게 숨을 내쉬며 명호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살아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바람 속에서 명호는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한 온전한 평온을 느꼈다. 심원암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닌 그가 넘어온 어둠과 맞서고 살아남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는 천천히 웃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웃음은 조용하지만 활력에 넘쳤다. 삶의 무게와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이제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귀 안이 비어버렸고 바람과 계곡물 소리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공허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있음을 확인시키는 자연과 마음의 합창이었다. 명호는 그 합창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로 숨 쉬고 있음을 알았다.


거제도 방문을 마치던 날 세민은 고아원에서 찍은 사진을 승철에게 보내주었다. 그 사진에는 명호를 포함한 친구들과 여자 원장이 함께 했다.

“어, 명호라는 친구는 얼굴을 모르겠고 여자 원장이 많이 본 얼굴인데.”

“아마 중학교 여자 친구의 모습 같기도 한데. 맞을는지 모르겠네.”

승철은 여자원장이 중학교 동창이라는 확신이 들었던지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세월이 엄청 흘렀지만 그 예쁜 얼굴의 상징인 그 보조개는 아직 남아 있었기에 그러했다.

명호와 승철은 심원암에서 출발하여 여러군데 인연이 얽혀있었다. 절도 그렇고 사람도 그랬다. 또 더 이상의 인연이 숨겨져 있는지 세월이 흐르면 밝혀질수도 있을 것이다. 만물은 함께 연결되어 있는데 눈이 어두워 알아채지 못할뿐이다.


심원암 뒤편 북병산 줄기가 치유의 숲을 품고 길게 누워 있다. 깊숙한 속살을 파고 들어가면 생존을 위한 욕망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기어가고 있다. 산은 어쩔수 없는 욕망을 보듬어 안아주고 스스로 정화하여 계곡물에 실어 세속으로 나가게 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햇빛에 부서지는 찬란한 이슬이 음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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