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서운암에 있는 두그루의 소나무에 얽히 전설과 두 친구의 이야기
도반송
서운암의 전경은 세상을 담담히 비추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가까이에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지 알수 없다. 영축산이 구름을 빚어 자신을 가리거나 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걷어내곤 했다. 산기슭 안락한 암자에는 누구를 기다리는 듯 은은한 풍경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 아래 몇 그루 소나무가 서로 부둥켜안고 세월을 버텨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대웅전에 좌정하였다. 자욱한 향내음에 취해 서운암의 전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지 해오스님은 원해를 불렀다. 표정은 예사롭지 않았고 입술이 들썩거릴 뿐 말이 쉬이 나오지 못했다. 선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의 공기는 싸늘했다. 찬 서리가 내린 듯 긴장이 감돌았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너를 한참 잘못 보았구나.”
“무슨 큰일이 있어 부르셨는지요.”
“이놈! 능청스럽기가 능구렁이 같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찌 재가보살과 그런 소문이 날 수 있단 말인고.....” 해오 스님이 원해를 추궁했다.
해오스님 귀에 이상한 소문이 들어왔다. 자칫하다가는 암자를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재가보살과 불륜에 휩싸인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난감한 일을 드러내 다스리거나 본사에 알릴 수도 없었다. 신심이 깊어 큰 그릇이 되리라 믿었던 원해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재가보살과의 풍문은 들어보긴 하였었다. 그것은 계율이 흐트러진 말사에서도 좀처럼 없었던 일이었다. 원해는 결단코 아니라고 하였지만 큰스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환속하라는 처분을 따르기로 했다.
서운암은 사찰된장으로 유명하여 재가보살들의 출입이 잦았다. 스님들과의 접촉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원해는 된장을 만드는 콩을 져다 날랐다. 보살들은 씻고 메주를 쑤어 된장으로 만들었다. 일하는 중에 몸을 마주하고 분내음을 맡으면서 야릇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원해는 매향보살에게 호감을 가졌다. 서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금도를 넘었다. 주지스님이 불륜 소문을 들었다고 하니 애매했다. 돌이켜 보니 불륜이라는 게 마음의 선을 넘은 것이라면 사음죄라고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더 이상 군말을 안 하고 큰스님의 처분에 맡겼다.
“이곳에 머무를 수 없느니라. 대처승 종단으로 가든 환속하든 하라.”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내일 하산하겠습니다.” 원해는 쫓기듯이 주지실을 나왔다.
상좌인 법향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문을 듣기는 했으나 원해를 믿었다. 그 소문이 음해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오랜 세월 같이 수행해왔기에 원해의 속마음을 다 알지 않았던가. 마음으로 연정을 가졌을지언정 살을 섞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한 번씩 탁발을 나가서 늦게 들어오기도 심란하여 말도 잘 안하는 것은 보긴 하였다. 매향보살은 예쁘기도 마음씨도 고운데다 자비로워 스님들이 은근히 연모한 것도 사실이었다. 법향도 매향보살을 한 번씩 꿈속에서 보았고 앞에 서면 떨리기도 하였다.
원해와 법향 외에 망고라는 상좌가 있었다. 그는 시샘이 많았고 언행이 속되었다. 음담패설을 자주 했고 보살들에게 진한 농담을 건네는 것을 법향이 엿듣기도 했다. 망고는 매향보살에게 퇴짜를 맞았다고 법향에게 실토하기도 했다. 한때 원해가 사하촌에서 매향보살과 걸어가더라는 소문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매향보살집 안방에서 함께 나오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두소문은 아름답기보다는 위험하였다. 법향은 도반을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소문의 진원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주지스님은 법향을 불렀다. 법향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원해가 그런 선을 넘었다고 생각안합니다. 혹시 누가 헛소문을.....”
“나도 그를 믿지마는 어쩔 도리가 없구나.”
“승적박탈 보다 다른 징계가 어떨는지요. 억울함이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요.”
“허허, 좋은 생각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거라.”
“폐사지 중창불사 소임을 맡겨보면 어떨는지요.”주지스님과 법향이 나눈 이야기였다.
다음날 원해는 쌀 한 말과 된장 한 통을 지고 백운암 중창불사라는 소명을 받고 떠난다. 통도본사 계곡으로 내려오지 못하며 매향보살이 사는 신평마을도 출입금지를 시켰다. 탁발은 한참 떨어진 언양쪽에서 하고 자급자족토록 명했다. 법향은 다행스러웠다. 원해는 안도하였지만 그 낙인을 지울 수 없어 억울해하였다. 사음이란 죄로 물든 승복은 세탁하여 입은 들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었다.
그날도 재근이는 세민이를 만나러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손에는 법문집이 한권 들려있었다. 한 달에 한번은 꼭 법문집을 구해다가 그에게 전해준다. 그둘은 법문집에 들어있는 법문이랑 사진을 보고 수행의 길로 함께 갔다. 재가불자였으나 청정한 구도의 길을 가고 싶어 했다.
“이번에도 법문집을 챙겨왔네. 표지 사진이 멋진데.”
“서운암에 있는 소나무이네. 서로 기대어 있어 신기하더군.”
“부모자식같기도 형제 같기도 하구만.”
“그 암자에 가면 꼭 바라보는 소나무이지.”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근이는 작은 몸집에도 김장배추처럼 속이 알차고 언행이 진중했다. 동안의 자비스러운 인상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의 하루는 아침과 저녁이 분명히 구분되었고 마음의 기상도도 또한 그랬다. 고요한 아침에 먹구름이 밀려들어 오후를 어둡게 장식하듯 밝음과 어둠, 희망과 낙망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세민이는 키가 크고 덩치도 있었지만 뿌리 흔들리는 이빨처럼 세상을 아파했다. 그 아픔인지 허세인지 모를 원인으로 폭음과 폭언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말이 빨랐고 목소리는 컸으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그 둔감함을 스스로 눈치 채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주변을 맴돌았고 그가 만들어 놓은 소용돌이에는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짧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긴 저녁을 방황하며 무채색의 어둠속에 살아갔다.
그 둘이는 같이 일한지가 십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세상도 가정도 많이 바뀌었다. 일이 많았을 때는 이야기를 깊이 나누지 못했다. 다행히 불경기가 대화를 활발하게 해주었다. 그 대화라는 것은 생업에 관한 것이기도 인생에 대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 대화가 없었다면 그둘은 속물이 되었거나 벌써 이별을 하였을지 모른다. 재근이는 법문으로 화제를 이끌었고 세민이는 속된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재근이와는 달리 세민이는 주색을 밝혔고 그 질퍽한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끝없이 그리움을 토로하며 세상을 헤매기도 하였다.
어느 봄날 재근이는 서운암을 들러 대웅전에 좌정하였다. 잠깐 조는 듯하다가 이야기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운암의 전설로 신도들 사이에서 오가던 이야기였다. 그 배경은 예스러웠고 수묵화처럼 흑백이었다. 한 마리 학이 병풍 속에서 날아오르고 구름은 껴안아주고 있었다. 그 장면에 나오는 원해가 꼭 누구를 닮았고 행동거지도 그랬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소나무가 딱 그 사람을 닮은 듯하였다.
그날은 참혹했고 체벌은 가혹하게 내려쳤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꿇어 앉혀 내리치는 곤봉을 막을 손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목구멍은 이미 막혀버렸고 울분도 하소연도 토해낼수가 없었다. 사지는 포박당하고 양동이에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찬물이 다시 정신을 차리게 했다. 몸은 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고 정신은 있으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야차 같은 얼굴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양심을 버렸다면 평화가 올수 있었지만 신념이 그를 불행하게도 지켜주고 있었다.
재근이는 강제징집을 당하여 입대하게 되었다. 아직 용기라는 무기가 있었고 신념이라는 총알이 있었다. 고개를 숙인 게 아니고 단지 꿇어 앉혔을 뿐이었다. 그 선택이 비참하기도 훌륭하기도 하였지만 주변사람들은 안타까워하였다.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에 역류하는 것을 어리석게 보았다. 스스로 유형의 길을 가는 걸 비참해하였다. 그는 군대에서 특별관리를 받았다. 수많은 눈들이 그를 감시하여 숨을 곳이 없었다. 잘못하다간 대학을 졸업할 수도 직장을 가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어머니는 면회올 때마다 반성문을 적어주라고 애걸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재근이와 세민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아카데미라는 서클에 같이 나갔다. 민족과 민주를 이념으로 하고 선배들로부터 행동하는 양심을 배웠다. 학업보다는 토론에 빠졌고 선구자들의 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그들 간에 쌓인 이야기도 많았고 우정 또한 두터웠다. 일찍부터 술을 배웠다. 술은 토론의 예열제요 열정의 촉매제였다.
서로는 아담하고 또 우람하다 보니 부드러운 것을 배우고 무식함도 한 번씩 가르쳐주었다. 그들에게는 말싸움 자체가 대화였고 침묵은 공감의 표현이었다. 그둘은 고교시절부터 술친구였고 어설픈 소피스트들이었다. 어느 한사람이 안보이면 외로웠고 영혼이 멈추는 것처럼 공허하였다.
또 한사람 태명이란 동창이 있었다. 같은 서클에 다녔지만 인생길은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달려갔기에 한참 멀어졌다. 세상에 순응하는 지혜를 가졌고 시류에 올라타는 순발력은 타고났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면 피했고 태풍이 불면 억새처럼 엎드렸다. 삶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가난이 무서운 걸 이미 알았다. 지구가 둥글기에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자연법칙에 따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친구가 어찌 그리 변했을꼬.”
“소신을 지켜낸다는 게 무지 어려운 것일 테고.”
“그는 나를 바보라고 부르겠지.”
“나중에 누가 영웅인지 바보인지 가려지겠지 뭐.”하고 또 둘이서 시무룩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재근이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하소연을 한다. 예전과 다른 한이 뭍어나왔고 분노도 서려있었다. 세민이는 슬금 눈치를 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펴지지를 않았다. 그의 말속에 답을 짐작해보았지만 달래 줄 처방전은 만들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요새 돈벌이도 시원치 않으니까 아내가 잘나가는 친구의 요청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어찌 그 애한테 손 내밀겠나. 변절하란 말인데.”
“눈 반쯤 감고 그렇게 하지 그래. 돈에 이름이 적혀있나.”
“그넘이 날 타락시키려는 것 같아서. 전생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지. 흐흐.”
“예전에 너희 조직을 염탐하여 밀고하였다는 건 알고 있지.”하고 둘이서 나눈 대화였다.
재근이는 긴급조치 위반의 전과로 자신이 원하던 공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노동조합이 있는 직장에도 받아주지 않으니 그가 설 곳은 출판사뿐이었다. 그곳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힘들었다. 또 출판검열이라는 족쇄에 매달려 살았다. 그 자신은 신념의 힘으로 버티는데 가족들은 원망했다. 거기에다가 직업병인 안질까지 앓았다.
그는 살기 위해 절을 찾았다. 원망과 분노를 달래주는 것은 책도 충고도 다 아니었다. 오직 마음을 내려놓아라는 부처님의 말씀만이 그를 살아가게 해주었다. 그를 품어주는 곳은 서운암이었고 힘을 보태는 주는 것은 두 그루 소나무였다. 마냥 그곳에 주저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보고 구름처럼 마음도 흘러보내고 싶었다. 이제 재물복은 끝났고 보이지 않는 진리만이 그를 평안케 해주리라는 꿈만 꾸었다. 모든 것은 운명이었고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원망이라는 언어는 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때 이후에 태명이가 나타나지 않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안됐고 나중에 사정기관에 특채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체제에 협조한 대가로 승승장구하였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힘이 있었다. 그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줄을 섰다. 취직은 말할 것도 없고 승진에도 입김을 불어넣었다. 벼락출세하였고 주변은 그를 받들었다.
재근이는 태명이한테 무슨 제안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줄을 대어 그럴듯한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재근이가 승낙만 하면 억대 연봉의 자리를 꿰차게 되어있었다. 생활고를 벗어나고 사회에 얼굴을 알리는 일거양득의 꽃놀이 판이 아니겠는가. 재근이는 그놈을 미친 새끼라고 하면서 끝까지 따라다니며 타락시킨다고 분개했다. 아내는 사정하였지만 그는 마이동풍을 떠나 차가운 북서풍이었다. 재근이는 배가 고프지만 봄을 기다리며 참아가는 곰과 같았다.
그날은 재근이게 분노의 날이었다. 국가비상사태라는 명분으로 긴급조치가 발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어떻게 하숙방을 급습하게 되었는지 그 정보를 친구들이 아니면 나올 길이 없었다. 그 방에는 등사기, 철필, 줄판, 먹지는 물론이고 시국선언문 원본도 보관된 비밀의 방이었는데도 말이다. 가담자 모두가 굴비 엮이듯이 체포되었으니까 말이다.
학교안 서클 사무실에서 선후배와 함께 반대시위 계획을 세웠다. 그런 다음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회원들 이름을 지웠고 자료도 태워버렸다. 혐의점은 소문으로는 알수가 있지만 물증은 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른 대학교와 연합하여 시청 앞 광장에서 시위를 하였다. ‘독재타도,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엄중한 구호로 시작하였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유인물을 이곳저곳 뿌렸고 그것들은 바람을 타고 자유로이 날아갔다.
“그 시절이 그립네. 그 우렁찬 노래를 부르던 신입생 시절이 말야.”
“나는 좀 부끄럽네. 대학 들어가서 그 사상을 놓아버렸으니까.”
“어찌 보면 네가 현명했지.”
“나는 불효가 되기 싫었거든.”하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또 나누었다.
재근이는 군대생활이란 감옥에서 독방이라는 감방에 갇혀 살았다. 군대에서 쓰는 구호를 외치지 않아 복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삼년이라는 군대생활은 수용소군도요 절망의 산실이었다. 위안을 삼았던 것은 주말 사령부 법당에 가서 법문을 듣는 것과 어머니로 부터 보내오는 영혼의 모음母音이었다. 국방부 시계는 정확했고 만기제대를 하였다. 대학에 복학하여 엄격한 감시 속에 학업을 꾸려나갔다.
“그때 한번 뺨을 갈겨버렸어야 했는데.”
“너를 위한다고 그런 게 아닌가.”
“어찌 그 종이에 지장을 찍을 수 있단말이가. 양심이 있지.”
“그러니 고생할 팔자가 된 거지. 그래도 잘했다.”하고 두친구는 알송달송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둘은 사무실에서 만나면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술을 좋아하였고 그것은 대화의 열기를 높이는 연료였다. 세민이는 폭음하였고 재근이는 그를 말리느라 그 아까운 술이 다깨기도 하였다. 다들 세민이는 고민거리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지라 폭음의 이유를 궁금해 하였다. 그는 신원조회 대상이 아니었기에 대기업에 들어갈 수가 있었고 또 무난하게 승진도 하였다. 그는 사보편집을 오래하다 보니 글 솜씨가 늘었고 시나 시조를 지어 읊기도 하였다. 단, 술만 마시면 갑자기 사람이 변하여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였다. 술이 깨면 본래로 되돌아 왔고 자비심이 강한 것이 그의 실수를 상쇄시켜주었다.
그날은 무서운 날이었고 세민이게는 치유할 수 없는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공병대 2.4종 창고에서 곡괭이 자루에 맞서다가 한쪽 고막을 잃었다. 군대는 반항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러면 죄가 되었다. 순종과 침묵이 미덕이었고 그것은 수행승의 고행처럼 엄중하였다. 그곳에서 분노를 알았고 폭음과 폭언과 폭력도 배웠다. 세상은 그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했고 그 파괴라는 주홍글씨가 내면에 새겨져 어느 조건을 만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로부터 세민이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재근이는 매주 통도사에 간다. 서운암에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는 항상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두 명의 스님이 손을 잡고 만행을 나가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였다.
세민이도 가끔씩 통도사 대웅전에 들려 참배를 하고 온다. 영각 옆 한그루의 애기동백과 매화나무를 관찰하곤 한다. 애기동백이 늦가을에 꽃을 피워 이듬해 봄까지 꽃을 피우는 것을 보니 수행승 같았다. 그 옆의 한그루의 매화는 엄동에 꽃을 틔워서 절도 있게 지기에 선비 같았다. 그 동백과 매화는 닮은 듯 다른 듯 진리를 향해가는 도반의 모습 같았다.
백운암으로 쫓겨 간 원해는 한말 곡식과 한통 된장으로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는 칡뿌리를 캐어서 먹거나 소나무 잎을 쌀가루에 섞어 소식하며 중창불사를 해나갔다. 하루 한 끼는 밥으로 나머지는 솔잎가루로 때웠다. 소식은 정신을 정화했고 목탁독경으로 참회했다. 그의 업보만큼 돌탑을 쌓아나가며 업장이 소멸하기를 기도했다. 매일 삼천 배를 올리고 일체유심조라는 화두를 잡으니 마음은 일시나마 고요해졌다.
주지스님의 엄명에 따라 통도본사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고 탁발은 필요한 경우 외에는 나가지를 않았다. 한 번씩 신평마을 매향보살이 그리웠지만 청정한 신심으로 극복해 나갔다. 그립다는 말은 자신만이 느껴야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여지없이 사음죄가 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 연모의 정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그것은 운명이었고 전생의 업이 분명하였다.
원해를 보내고 난 뒤 주지스님은 그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 자신도 연모의 정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여 출가하지 않았던가. 원해의 아픔이 꼭 자신의 모습과 닮았지만 어쩔 수 없는 계율을 지켜야만 했다. 세속이라면 품어줄 수 있었으나 엄연한 승가가 아니던가. 원해를 두둔할 수가 없었고 무정하지만 쫓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법향을 불렀다.
“그놈이 지금은 엉뚱한 생각을 안 하겠지. 한참 피가 뜨거울 때는 맞지만.”
“신평마을에 나타났다는 소문은 없고 언양쪽에서 보인다고 합니다.”
“한 겨울에 어찌 지내는지 밥은 안 굶고 지내는지. 자업자득인지라.”
“저도 큰스님의 엄명인지라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허허, 계율을 어겼어도 자비심은 내주어야지. 성불하기가 그리 쉽나.”하고 주지스님과 법향이 나눈 이야기였다.
법향은 주지스님의 의중을 읽었고 그 자신도 원해가 걱정이 되었다. 그가 탁발한 곡식을 백운암 법당 안에 몰래 놓아주고 오곤 하였다. 어느 날 신평마을을 지나가는데 매향보살이 수인사를 하기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 때문에 오해를 받아 쫓겨난 원해스님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는지 거처를 아느냐고 물어왔다.
“아마 저 멀리 흰 구름이 흘러가는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겁니다.”
저 서쪽 하늘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조용히 내리면서 말하니 안도해 하였다.
매향보살이 혹시 원해를 만나면 주라고 쌀 한말과 콩 한 되를 시주하였다.
“이 쌀과 콩을 약으로 삼아 성불하길 바란다 전해주세요.”
하고 매향보살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 이후에도 법향은 탁발한 공양물을 몰래 백운암으로 옮겨다 주었다. 법당 안에 두고 온 쌀자루가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을까?
상좌인 망고는 주지스님으로 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냉대를 받았다. 눈이 마주칠 때면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한 번씩 던져주던 화두도 내주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썰렁해진 주지스님의 태도를 보고 법향을 의심했고 괘씸해했다. 그는 매향보살에게 연정을 얻지를 못했고 법향도 그에게만 묵언수행 중이었다. 다른 보살들도 혹시나 입방아에 오를까봐 망고를 피해갔다.
그는 외로웠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한 번씩 꿈결에서 원해가 몽둥이를 들고 잡으러 오는 장면을 보았다. 매향보살이 다시 원해하고 만나서 밀어를 나누는 장면도 나타났다. 그는 치오르는 시기심에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다. 매향보살은 그의 욕망의 텃밭에 불을 질러버렸고 그는 끌 수가 없었다. 밤마다 아련거리는 매향의 나신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서운암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세속으로 내려가 여자를 찾아서 그 끌 수 없는 욕정을 불살라야 했다. 그가 살아야 할 곳은 절간이 아니라 저잣거리였다. 그는 환속한다는 한 장의 편지를 주지실에 남기고 야반도주하였다. 그가 떠날 때 법당 추녀 끝에 달린 풍경만이 바람에 흔들려 울어주면서 잘가라고 인사하였다.
재근이는 요새 태명이가 하는 소행에 분노하고 있다. 권력과 부로 사람을 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가난한 동기들은 그를 따랐고 자리가 필요한 동기는 그에게 청탁하였다. 그는 자비를 베풀었고 중생들은 감복해하며 꼭 부처님 같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재근이에게도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기별이 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던 적이 있었다.
태명이는 재근이를 두 번 죽이려 하고 있었다. 한번은 밀고로 인생행로를 틀게 하였고 두 번째는 자존심 마저 오염시켜 타락시키려 하였다. 재근이에게는 부처가 아닌 마구니였기에 치열하게 싸워 보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태명이의 교묘한 술수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싸우려고 할수록 태명이의 수법에 말려들어가기에 환장할 노릇이었다. 재근이는 유능하였지만 술수에는 낙제수준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낸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민이는 재근이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하였다. 태명이가 한 번씩 동기회 게시판에 나와서 떠들고 다녔다. 그의 말은 형편없었음에도 다들 찬양하였고 누구하나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 부처의 자비를 얻으려면 찬양하거나 최소한 침묵하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게시판에서 태명이는 운동권출신들을 형편없는 놈들이라고 깎아내렸다.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순진하고 속이 새빨갛게 물든 인간들이라고 욕을 하였다. 그 글을 읽고 재근이는 충격을 받았고 게시판을 즉각 탈퇴하였다. 그때까지 재근이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게시판을 지켜보고 있던 세민이는 주특기인 선문답 같은 빈정거림으로 태명이를 공격하였더니 그 힘센 사나이는 잠깐 침묵하였다. 그 선문답은 태명이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강력한 언어였다.
“푸른 솔은 변함이 없는데, 오늘따라 간간이 송충이가 보이네. 그 이름하여 간자間者로세.”였다. 그것은 조직을 염탐하거나 해치는 사람을 뜻한다. 태명이가 재근이한테 한말과 비교가 안 되는 빨갛고도 시커먼 말이었다.
태명이는 순간 휘청거렸던지 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는 게시판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세민이가 발사한 문자폭탄은 태명이가 재근이한테 한말과 비교가 되지 않는 치욕감을 안길 명언을 담았다. 주변에서 아무도 이의제기를 않았고 속으로는 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있는 듯하였다. 그 한방의 펀치로 태명이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충격과 치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시판을 야반도주하였다.
그래도 재근이는 게시판에 복귀하지 않았다. 태명이의 입에 문 칼로 베인 상처가 너무 깊었던 모양이었다. 세민이의 펀치로는 부족하였는지 더 강력한 응징을 원하였는지 재근이는 침묵하고 있었다. 태명이는 게시판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대외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 자유총연맹 지역위원장도 맡고 언론에도 기사가 자주 나오곤 하였다. 그 지역의 유력지에서는 태명이를 아주 훌륭한 인물이라고 거들고 있었다. 그점이 재근이를 또 분노하게 만들었고 고뇌는 깊어만 갔다.
어느 날 지역 유력 신문에 이상한 칼럼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장문의 풍자시로 어느 특정인물을 빗대는 것이 분명하였다.
“어찌 그리 닮을 게 없어 숙주나물이 되었는가. 그 하루도 못 넘기고 시어버리는 신맛을 좋아하는가. 선비는 자고로 숙주나물을 먹지 않고 죽순나물을 먹는다네. 하루 만에 커서 하루 만에 시어버리는 숙주를 보았는가, 모진 풍상을 안고 꿋꿋하게 서있는 대나무를 보았는가......”였다.
이 같은 요지의 풍자시는 독자들에게 강한 의구심을 들게 하였고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아차렸다. 태명이는 그 기사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 풍자시에 자신을 변절과 밀고의 대명사인 신숙주와 김질에 비유하였으니 가문에서도 염려할 정도였다. 며칠 후 재근이는 오랜 은둔 끝에 게시판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난후 소문에 태명이가 실어증에 걸려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간신히 말 한마디를 해놓고는 상대방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핀다고 하였다. 모든 말에 조심을 하고 들리는 말에 민감하여 아예 말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였다. 그간 굽실거리며 아부하던 사람들도 믿지를 못하고 언제 비수를 겨눌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태명이는 과거를 잊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를 못했다.
‘어찌 꿈만 같은가. 다 어디로 도망쳐버렸네. 내가 헛살았는가.’하고 끝없이 독백하였다.
기억상실증 대신 자신감상실증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살려고 남을 죽이려 했지만 모두 다 죽고 말았다는 것을 가을바람이 낙엽을 휩쓸어가면서 가르쳐주었다.
그 후로 재근이는 귓속에서 남을 저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명증에서 벗어났다. 그는 인과응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신이 완전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무서운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괴로워하였다. 그는 망각의 바다에 빠져버리고 싶었지만 하늘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치매라는 무서운 병을 대신 앓으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축산이 단풍으로 물들고 흰 구름이 산자락에 걸쳐 선경을 수놓는 날이었다. 백운암을 중창하여 주지스님과의 약속을 이룬 그날, 원해는 주마등처럼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본다. 매향보살이 된장을 담그러 왔을 때 어찌 그리 끌렸는지 한순간에 눈이 멀지를 않았던가. 그것은 출가승이 가져서는 안 되는 음심이었고 수행을 가로막는 장애가 맞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본능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마는, 오직 애욕의 무상함을 알고 청정한 자비심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원해는 겉으로는 잊은 듯 보이지만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은 문신처럼 내재해 있었다. 그 연모의 정을 떼어 내기란 견성을 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꿈꾸는 연정은 뜨거운 숨결 속에 살을 섞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살을 섞는 순간 사랑이라는 단어는 증발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리움을 원했다. 그리움을 변치 않고 간직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곳을 떠나야했다. 눈에 보이면 허상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음이 산란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잊어야 했다. 보이지 않으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잊으면 살 것 같았다.
그날따라 백운암에는 흰 구름이 밀려와서 머무르다가 저 멀리 동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는 바랑을 걸머지고 죽장을 쥐어 일주문을 나섰다. 동쪽으로 등을 돌리니 문득 그곳이 그리웠다. 한손을 눈 위에 올리고 건너편 산중턱을 바라본다. 아련하게 보이는 서운암은 여전히 두 그루의 소나무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는 까마득한 곳에 있을 도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소슬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어느 봄날 재근이와 세민이는 통도사를 함께 갔다. 그둘은 극락암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거울 같은 보경호가 영축산을 길게 담았고 두 사람의 얼굴을 비쳐주었다. 그곳에서 머무르다가 다시 서운암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펼쳐진 아련한 전경을 감상하였다. 그들의 눈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들어왔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도반송’같다고 재근이가 이름 지어 주었다.
다시 통도사 경내의 영각 앞에 있는 애기동백을 보고 세민이는 꼭 재근이를 닮았다고 말하였다. 다시 재근이는 매화를 보고 세민이를 닮았다고 말했다. 그 애기동백과 매화에서 풍기는 향기가 통도사 경내를 퍼져나가고 순례객들은 그 향기에 싸였다. 둘이서 손을 꼭 잡고 한마디씩 나누니까 꽃나무에서는 법의 향기가 퍼지고 더 넓은 법의 바다가 펼쳐졌다.
내려오는 길에 다비장 가는 길이 나왔다. 그 길은 항상 재근이가 극락암을 갔다가 내려오면서 걷는 길 입구이었다. 그곳에서 둘이서 나눈 대화였다.
“재근아, 어찌 극락암을 먼저 들렀다가 마지막에 다비장 가는 길을 보느냐.”
“앞으로는 다비장 길을 먼저 가고 극락암 길로 갈까 하네. 죽음을 알아야 삶이 보이니까.”
“요새도 귀에서 그 괴로운 소리가 들리나.”
“그 소리는 안 들리는데, 이제 눈이 거의 안 보인다네.”
“나는 귀가 완전히 먹어버렸다네. 눈은 아직 생생한데 말이야.”
“그럼 잘 됐군. 우리 둘이 손잡고 걸어 다니면 불편은 없겠는데.”
둘이는 무풍한송로를 손잡고 걸으면서 저 위의 서운암을 그려본다. 그곳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부둥켜 안고 있을 테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둘이서 꼭 잡은 손은 놓지를 않고 오랫동안 따스한 온기를 주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