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가 길고 먼 다툼을 끝내고 같은 뜻으로 한지점에서 만나는 이야기
붉은 산, 푸른 강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리 제멋대로 인가. 돌이라면 수백 번 정을 맞아도 싸고, 나무라면 싹둑 베어질 법도 하겠지. 안하무인이요 마이동풍이니 좀처럼 다스리기가 힘들다. 가까이 다가가 껴안으려 하면 날카로운 신경질이 뿜어져 나왔고, 무심히 내치려니 비정하게 보일까봐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이미 재가 되도록 다타버린 벌거숭이 산이다. 그의 이름 그대로 황폐화된 산인 것이다.
김홍산의 육체는 끓어오르는 용광로였다. 그의 눈빛은 붉은 불꽃을 담고 있었다. 술에 취하는 밤이면 허공에 대고 퍼붓는 욕설은 귀를 찢는 톱날 같았다. 테이블 건너서 삿대질하는 그의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송곳 같았다. 자리에 없는 얄미운 이들을 씹을 때 입모습은 마른 오징어를 잘근거리는 것처럼 증오로 번득였다.
좌중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유탄을 대비해야 했다. 슬며시 자리를 뜨거나 입술을 굳게 닫은 채 그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술에 취해 폭언으로 고통을 잊으려 했으나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은 오직 하나였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장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 고독한 분노를 몰라준다는 것임을.
그 입에서 쏟아지는 욕설은 타인을 향했지만 무력감에 갇힌 스스로를 비웃는 절규였다. 그는 낙엽이 되어 조용히 바람에 실려 사라지기를 바랐다. 아니면 화산처럼 폭발하여 모든 것을 집어 삼켜 버리기를 바랐다. 그 파멸의 끝에 다다라야 비로소 침묵과 평화가 찾아들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징용 가서 돌아오지 못했다. 가난을 운명인양 부둥켜안고 자식들을 감싼 채 한숨만을 날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의 심장을 찢어 놓았다. 그 상처가 분노로 변해 영혼을 덮치는 거대한 덫이 되어 그를 꽁꽁 묶어놓았다.
가난한 그에게 공부는 강 건너 먼 산이었다. 공사판에서 생계의 버팀목인 다리를 다쳤고 수입도 짧아진 보폭만큼 줄어만 갔다. 그가 절뚝이며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눈길을 돌리거나 슬쩍 비켜갔다. 겉모습이 그러하듯 속도 이미 벌겋게 타버린 폐허였다. 아무 것도 둥지를 틀지 못하는 벌거숭이 산이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섬이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 족족 기어코 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즐겼다. 스스로 외로움의 우물을 파서 그 쓸쓸한 물맛을 재촉하며 마셨다. 그에게는 친구라는 이름은 없었고 오직 분노만이 그를 평안케 해주었다. 어쩔 수 없는 고독을 사랑하지는 못했고 외로움에서 폭발하는 분노를 좋아하였다. 그는 스스로 만든 장애마저 안고 빛이 들어오지 않은 깊은 감옥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자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시절을 잘못 만난 투사였다. 그는 뜨겁게 피어나서 애잔하게 저무는 약산의 진달래를 닮고 싶었다. 그 불같은 분노를 불꽃으로 피어나게 한 그 뜨거운 약산을 좋아했다. 그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그만을 비추어주는 빛을 따라 나아갔다.
김홍산과 이청수는 사사로이 단 둘이 마주한 적이 없다. 여럿이 함께 할 때조차 청수는 탁자 가장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여 홍산의 시선을 피해갔다. 그것이 친구들이 마련해준 안전을 위한 배려인지, 스스로 보이지 않는 방화선을 그은 것인지는 그 두 명만이 알았다. 그 불화의 책임은 막상막하였다. 청수는 종종 성냥개비 같은 비꼼으로 홍산의 활화산을 건드려 불꽃을 일으켰다. 청수에게 홍산의 폭발하는 불꽃은 청수 자신이 갖기를 바라지만 가질 수 없는 부러운 자산처럼 보였다.
청수 또한 술이 들어가면 홍산 못지않은 추태를 부렸기에 그들은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 서로의 흠결이 상대방의 거울이 되어 자책의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청수는 술에 취하면 멈추는 법이 없었고 호주머니에 돈이 바닥 날 때까지 몇 차를 옮기며 마시는 습성이 있었다.
청수는 군대에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그것이 분노의 시발점이었다. 왜 하필 엉덩이 대신 얼굴을 겨냥하였을까? 인격을 망가뜨려야 반항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군대는 반항을 조직의 암으로 여겼고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두들겨 맞을 수 밖에 없었고 아무도 아무것도 보호해주지 못했다. 순한 양이 되어 끌려 다니는 목축에 길들여져야 했다.
그는 장애를 안고 사회에 나왔지만 빈정거림이라는 장애물을 또 만나야했다. 그의 삶과 인격을 송두리째 이상한 언어로 포장하여 비꼬는 말들은 공황상태로 몰고 가기도 하였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자학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가해자들 보다 몇 배나 강한 빈정거림으로 자신을 살려나갔다.
청수는 타락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세상에 내보냈다. 그것은 화려하게 포장한 외피였으며 진정한 속뜻은 자신만이 볼수 있는 비밀의 노트에 적어나갔다. 그 글은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달래며 치료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그에게 글은 생명의 활력소였고 세태를 꾸짖는 격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탈출구 없는 감정이 울혈 되어 우울증을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홍산이와 청수는 한 번씩 크게 싸우기도 하여 몇 달간 말 한마디 섞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는데 연륜과 우정은 별개였다. 어릴 적에 강가에서 같이 멱 감고 참외서리도 하였고 이웃마을 불량배들을 같이 퇴치한 적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관계가 틀어진 것은 청수의 혀끝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 때문이었다.
“무식한 건 둘째 치고, 아버지 없는 티를 내네.”
그 참혹한 경멸이 홍산의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무식이야 부인할 수 없었으나 그 다음 말은 회복 불가능한 큰 틈새를 만들었다. 그 이후 둘이 모임에서 마주칠 때마다 테이블 위로 긴장감이 싸늘하게 흘렀다. 홍산은 청수를 형편없는 맹물로 보았고 청수는 미소 뒤에 칼을 숨긴 선문답 같은 빈정거림으로 응수했다. 그들은 분노와 폭력을 공유하는 이질적인 동지이면서도 단 한 걸음도 좁힐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철마였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서로 편을 짜서 상대를 욕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였다. 옛날부터 사이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근래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학교 동창생들도 서로 편을 지어 어울리니 우정이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홍산이와 청수와 그의 친구들은 그래도 어울리기도 하니 같은 편이 맞지만 딱 두 명이 편이면서도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 간에 평화가 오려면 그둘이 화해하여야 하는 게 지상의 과제였다. 불화를 즐기는 것도 불구경처럼 재미가 있었으니 친구들은 손 놓고 있었다.
김홍산 집안은 일제로부터 되돌려 받은 얼마 안 되는 농토가 공단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헐값에 수용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절뚝거리는 장애와 사그라지지 않은 숯불 같은 분노뿐이었다.
백덕술의 아버지는 친일경찰이었는데도 빨갱이 소탕작전으로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숨을 쉴수 없었고 두꺼운 무관심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숨만 몰아쉬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한 방향으로 행진을 하고 그 쓰라린 옛날은 망각의 물결 속으로 흘러보내버렸다.
홍산과 청수는 술을 많이 마셨고 안주는 돈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생긴 것과 성격은 달랐지만 그 백덕술이라는 이름을 잘근잘근 씹는 입맛은 서로가 닮았다. 그둘은 나란히 서서 손잡지는 못하지만 오직 한 방향으로 눈길은 향했다.
청수는 그런대로 자신을 다스릴 줄을 알았다. 홍산은 논리도 없이 오직 욕설과 폭력으로 세상에 보복하였다. 그에게는 아예 논리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서 거짓으로 분칠한 가면을 보았다. 한 번도 성내지 않는 그 잘난 사람들의 얼굴은 실핏줄이 사라진 성인의 석고상 같았다. 그는 성질나게 하는 세상에는 있는 그대로의 욕이나 주먹이 진실한 도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조곤조곤 말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급했다. 제일 와 닿고 배설하는 기쁨이 있는 욕설이야말로 진정한 언어인 것을 알았다. 그에게 한순간을 기다리는 참을성은 사치였다. 참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회탈을 쓰고 웃고 있었다. 독립투사에게 일제의 만행을 참으라고 말하면 뺨을 안 맞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가 논리를 버린 것은 그것이 언제나 기득권의 기만적인 방패가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논리나 말은 언제나 힘 있는 사람들의 무기였고 나약한 자들의 피를 닦아내는 휴지조각이었다. 그의 주먹과 욕설은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한 언어였다. 그 속에는 계산도 위선도 없었다. 반공이니 자유니 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언어들이 사실은 얼마나 더러운지를 온몸으로 소리치고 싶었다. 그의 거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마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고 싶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세상 자체가 벙어리이고 귀머거리였다.
청수는 욕설보다는 글로써 분노를 표현하였다. 홍산은 말을 좋아하였고 청수는 글을 사랑하였다. 홍산에게는 즉각적인 보복이 우선이었고 청수는 은근히 목줄을 조여 가는데 흥미가 있었다. 청수는 자신의 글이 명문장이라고 믿었지만 남들은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여 서운했다. 청수는 글의 한계를 알았고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이 더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다.
청수는 모든 것에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홍산의 자산이 부러웠다. 물과 기름이 만날 수 없다는 자연의 법칙이 그를 안타깝게 하였다. 그는 머리는 냉장고였지만 마음은 용광로가 아니었다. 홍산은 아니더라도 그를 닮은 참모가 절실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 선거연설회때 그 몇 마디는 김홍산에게 참담한 말이었고 하소연할 데 없는 현실에 입으로 분노하였다. 많은 사람은 듣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고 하였지만 분노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인들은 귀가 어두워 그 말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그 유식을 가장한 무식한 말은 단 몇 마디였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지금 잘못하면 빨갱이 나라가 되니 잘 찍어십시요.”
“그래도 일본은 이웃사촌이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오게 하였지요.”
자유당의 백덕술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손목으로 장단을 맞추며 열변을 토하였다.
그때 연단 아래에서 천으로 감싼 묵직한 물건이 백덕술 후보의 머리위로 휙 날아왔다. 위험한 폭탄이 아무런 통제도 없이 낙하한 것이었다. 주변은 긴장하였고 후속적인 투척이 두려워 몸들을 사렸다. 지연 폭발의 시간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그것을 펼쳐보니 참으로 민망한 글이 적혀있었다.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든 외설스런 욕이었다. 모두의 어머니를 욕보이는 글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김홍산이었다. 그 천을 연단위에서 펼쳐보는 순간 그 글자 그대로 속사포로 욕을 퍼부었다. 그는 모두가 방임하여 휴지조각이 될 뻔한 양심의 자유를 쓸쓸이 지켰다. 백덕술은 얼굴이 우락부락하였지만 억지로 참았다. 귀중한 표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자제력을 발동하였다. 김홍산은 자유당 선거운동원들에게 끌려 나갔고 유세장은 벌집처럼 웅웅거렸다.
그 지역은 펄럭이는 태극기만 보이면 표를 거저 주었다. 주민들은 선거벽보의 순서대로 표를 주었다. 나머지 후보자들은 얼굴만 나오면 가문의 자랑이라고 만족해하였다. 그러니 자유당 후보는 오직 반공과 자유만 많이 외치면 되기에 연설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고 두 주먹만 허공을 가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연단 아래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을 가진 한심스런 사람의 성토만 없으면 아무런 변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자유당이 제일 두려워하는 언어들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누가 그것들을 들추어낼지는 모를 일이었다.
홍산의 친구들은 아직도 씩씩거리는 그를 주막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못 다한 욕설을 경청해주고 찬미해주는 예의를 지켰다. 오직 한사람인 청수만은 침묵으로 대응하였고 그 상습적인 빈정거림을 다음 기회로 미루어 주었다.
개표결과는 당연하였고 표차는 이미 더블스코어에 가까웠으니 슬퍼하는 족속들은 드물었다. 그 다음날 당선사례에 백덕술은 유세차량에서 ‘반공’과 ‘자유’라는 단어로 무식한 입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이제 재선 국회의원이 된 백덕술의 어깨는 올라가고 목은 꿀 장수 목처럼 뻣뻣했다. 선거철에 빼어둔 간과 쓸개는 다시 소중하게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백덕술은 밀실에서 회유와 조작과 선동이란 재료를 요리하여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그는 알듯말듯한 유언비어를 바람 속에 풀어 날렸다. 고무줄처럼 당겼다가 연줄처럼 풀어주었다가 마지막에 도끼로 찍어 내렸다.
백덕술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민주당이 아니라 독립당이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살 떨리게 하는 공포감이 서서히 내면에 먹구름을 만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딱 그 치명적인 한마디가 백덕술의 치부이고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는 김홍산이 나타나지 않거나 아예 방향을 틀어주기를 바랐다.
백덕술은 그 무서운 독립당에 대한 방패로 김홍산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콧방귀를 끼면서 삿대질을 하기에 쫓겨서 나왔다. 두 번째는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며 흘기기에 무서워서 도망 나왔다. 마지막에는 고요히 머리를 숙여 들어가니 재갈공명인양 헛기침을 하면서 만나주었다. 오랜만에 김홍산이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도 잡혔다.
백덕술는 몇 번이나 그를 초대하여 술자리 상석에 앉혔다.
“김선생 같은 분들이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독립이니 친일파니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오직 반공과 자유로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백덕술은 김홍산의 마음을 포착하는 순간 전염성이 강한 말을 꺼내서 주었다. 김홍산은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묘하게 끄덕여 보였다. 그는 난생 처음 뜨거운 환대에 눈빛은 읽을 수 없는 미소와 함께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손은 주먹을 쥐지도 풀지도 않은 채 탁자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백덕술의 말을 듣는 대신 허공에 내뿜는 담배연기속에서 어린 시절의 절뚝거림을 되새겼다. 그 분노는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죽인 맹수처럼 보였다.
김홍산이 룸살롱에서 만취하여 세련된 청년들의 부축을 받으며 허허 웃으며 나오는 장면이 시내중심가의 쇼윈도에 비쳤다. 한 번씩 그답지 않게 광이나는 구두를 신고 밝은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자주 목격되었다.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며 지나가는 장면도 있었다. 그가 평생을 무기로 삼아 휘두르던 정직한 분노를 친일파의 발밑에 내려놓아버린 듯 보였다. 그런 사실을 보고 들은 청수는 믿을 수 없는 홍산의 급변침이 이상스러웠다. 청수는 백덕술보다 자신을 더 미워하여 보복하기 위해 적과 동거를 한것이라고 믿었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저물었고 돌아올 길은 끊겼으니 홍산을 기다린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김홍산은 백덕술과 청수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어 오만스런 행복감을 느꼈다. 홍산은 마음속으로 ‘청수 자식 이제 혼 한번 나봐라’하고 웃어댔다. 그는 불같은 장비에서 냉철한 재갈공명으로 재탄생하였다는 착각에 빠졌다. 어느 한 놈을 제물로 삼아 거대한 포부를 펼칠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날이 당도할 것이다.
최근에 김홍산이 이청수를 부쩍 비난하고 악수조차 안하는 것을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한번은 손을 내미는 청수의 손을 회초리로 때리듯 뿌리치기도 하였다. 친구들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옛날처럼 거친 말도 안하고 알 수 없는 침묵을 지켰다. 민주당과 독립당 모두 불안해하였다. 그간 김홍산의 덕을 많이 보았는데 아쉬워했다. 그는 만나주지도 않았고 콧방귀나 픽픽 끼면서 두당이 쓸쓸해하는 모습을 보고 고소해하였다. 사람을 숫자로 보고 계산기를 두들기는 그들이 싫었던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다.
어느 날 김홍산이 시장 통을 지나가다가 독립당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이청수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걸 보았다. 그들이 빨갱이 당이라고 욕하는 걸 청수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친일파라고 외쳤댔다. 파장한 장터에는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배고픈 강아지 몇 마리만 누구를 꾸짖듯이 깽깽거렸다. 홍산은 청수가 흠뻑 두들겨 맞는 장면을 먼발치에서 구경만하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의 입가에는 분노가 담긴 야릇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맞은 놈도 싫었고 때린 자식들도 미웠다.
입술이 떡나팔이 된 이청수는 담벼락에 기대어 훨씬하게 맞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홍산의 번쩍이는 눈을 보았다. 그 순간 지울 수 없는 서러움과 무정함이 목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그토록 멀어져 버린 두사람 간의 간격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깊은 계곡인 것을 알았다. 그는 두들겨 맞은 몸보다도 옛 친구로부터 외면당한 마음이 아리고 쓰렸다.
다시 시간은 흘러서 어김없이 선거철이 다가왔고 자유당은 느긋했고 민주당은 초조했다. 홍산과 청수가 사는 지역에는 아예 독립당 후보가 나서지를 않아 마음만 먹으면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출마하더라도 당선될 확률은 없지만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의미만 있을 뿐이었다.
청수는 오래 전에 독립당에 가입하였고 그의 친구들 몇 명도 함께하였다. 오직 한사람 김홍산은 응답이 없었다. 청수가 자기 할아버지를 내세워 정치를 하려고 한다는데 아니꼬움도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했던 사연이 숨어있었다.
“왜 그 친구가 독립당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걸까. 청수가 미워서 그런 걸까.”
“짐작건대 당선도 안될 걸 민주당 표만 갉아 먹는다고 그런 것 같기도.”
“혹시 백덕술이의 술수에 넘어간 건지도 모르겠고.”
“아니야, 절대 백덕술이 한테 넘어갈 수는 없는 확신범이야.”
“민주당은 당선이 불가능한지라 독립당이라도 존재를 알려야 하는데.”
하고 그의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였다.
김홍산은 친구들의 권유도 모른 체하고 독립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게 당선 가능성도 없으니까 그렇다. 김홍산이 가입하나 않으나 독립당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독립당은 선거 때만이라도 연단에서 한풀이를 해보는 의미밖에 더 있겠는가.
청수는 연설하기를 좋아하고 청중들의 반응에 한 번씩 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때도 있었다. 유세차량을 친구의 타이탄 트럭을 개조하여 만들었고 음향장비도 형편없었다. 선거운동원이라고 해봐야 소꿉친구 몇 명과 처량한 장면에 마지못해 나타난 친척 몇 사람이 전부였다. 전번 선거에서는 겨우 오천 표를 얻었고 그것도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찍어준 표였다.
봄이 되니 청수의 할아버지 표창 소식을 강남 갔던 제비가 물고 왔다. 청수에게 선거벽보판에 시선을 확 끌어들이고 연설회때 장엄하게 외칠 수 있는 신선한 재료가 생겼다. 백덕술이 제일 두려워는 독립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무기가 생겨 가슴이 설렜다.
이윽고 선거유세가 시작되었다. 기호 1번 자유당 백덕술, 기호 2번 민주당 김상철, 기호 3번 독립당 이청수만이 연설을 하게 되었다. 후보가 일곱 명이라 하였지만 나머지는 선거벽보속 이름으로 만족하는 듯 조용히 사라졌다. 김상철은 이번에도 패색이 짙었다. 다섯 번이나 도전해 모두 2등에 머문 탓에 그를 김오수로 불렀고, 여섯 번째에 이르자 김육수로 별명을 갈아치웠다.
첫 번째 합동연설회 날이었다. 공설운동장에 마련된 연단에는 세 명의 후보들이 나름대로의 미소를 머금고 청중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청수도 예전과 달리 어깨가 으쓱 올라가 있었다. 김상철은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단 아래에는 선거운동원과 청중들이 뒤섞여 후보자들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이청수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후보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를 선점하였다. 손에는 태극기와 독립당기가 들려있었고 홍산의 손에는 태극기만 들려있었다. 홍산은 청수를 응원하러 온 게 아님이 분명해보였다. 그러면 왜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이었을까? 이윽고 백덕술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공산당을 따르는 빨갱이들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 김원봉이를 독립유공자로 표창하라고 하지를 않나, 미군이 물러가야한다고 하지를 않나, 빨갱이들이 난리도 아닙니다.”
“유권자 여러분, 오직 대한민국이 살길은 반공이요 자유입니다. 반공, 반공, 자유, 자유.”하고 백덕술이 외치자 연단아래서 태극기가 펄럭이며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퍼져나갔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김홍산의 두 눈에 불꽃이 틔었고 가슴에는 숨겨둔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연단 위에는 꽃다발을 든 지지자들이 간사한 표정을 감추며 줄을 서고 있었다. 그도 거친 호흡을 애써 가다듬고 슬며시 그 대열에 끼여 백덕술의 면전까지 다다랐다. 그의 허연 수염과 빨간 중절모는 까만 선글라스에 투영되었다. 손에는 봄철에 보기 힘든 하얀 국화꽃 한 다발이 들려있었다. 그는 근엄한 표정과 격조 높은 자세를 취하며 우아한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김홍산이 백덕술과 눈길이 마주쳐서 꽃다발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그의 끓어오르던 용광로는 마침내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고요해졌다. 그때 곰발바닥 같은 오른손이 백덕술의 양빰을 번갈아 갈기니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던가. 그는 다시 두 손으로 칡덩굴 같은 목줄기를 움켜지고 조였다. 캑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연단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청중들은 놀랬다.
그사이 김홍산은 품속에 숨겨두었던 플래카드를 펼쳐보였다.
“친일매국노 백덕술은 사퇴하라. 대한독립만세.”라고 적혀있었다.
청중들은 그의 정체를 알수가 없었으나 그럴듯한 구호에 한쪽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지나가던 독립투사가 자기 욕을 하는걸 못참고 응징을 한 것처럼 보였다.
김홍산은 존경하는 그 투사의 이름을 욕되게 한 그놈의 이름이 진절머리 나도록 미웠다. 어찌 이름까지 하는 짓까지 그대로 닮았는지 기가 찼다. 그는 울컥거리면서 올라오는 분노를 다스릴 수가 없었고 주먹에 에너지를 모아 지연폭발시켜버렸다.
손쓸 틈도 없이 백덕술은 당했다. 양볼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화장을 하면 감출 수는 있었다. 문제는 그의 목줄기가 손상을 당하여 올바르게 발음이 안 될수 있다는데 있었다. 그 말로서 하는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김홍산은 즉시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그는 반항 없이 당당히 어깨를 펴고 걸어 나갔다. 퇴장하면서 연단에 앉아있는 이청수를 바라보며 애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으니 자유당원들은 손가락질하면서 밀정이라고 외쳤다.
두 번의 합동연설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공설운동장에는 첫 번째 연설회보다 많은 청중들이 몰려들었다. 이청수의 친구들과 지지자들은 한 무더기 냉이풀처럼 모여 있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뻔한 것이어서 다들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연설에 집중하였다.
맨 먼저 백덕술이 연단에 올랐고 그의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그런데 백덕술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겁에 질린 듯 떨고 있었다. 전번 1차 합동유세때 테러의 후유증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자주 외치던 반공과 자유가 연설의 전부이니 굳이 안 들어도 내용은 보나마나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치애하는 유궈자 여러부. 오지 바고이고 자으이미다. 바고, 바고, 자으, 자으.”
하고 욕설 같은 말들이 울려 퍼졌다.
반공이 바고로 자유가 자으로 바뀌어 소리 나는 게 아니던가. 청중들은 아연실색하였고 참모들은 난감해하였다. 틀림없이 목줄기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였다. 육성으로 할 수 있는 전매특허 구호가 원초적인 욕설 같은 소리로 변해버린 것이 아니던가. 또 누가 바보자식이라고 하면 청중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때 청중들은 웅성거렸고 어느 쪽에서 사과하라고 하는 항의의 소리도 들려왔다. 백덕술의 지지자들은 실망하였고 민주당과 독립당의 지지자들은 배꼽을 잡았다. 그렇다고 그 견고한 자유당의 아성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선거기상도는 전망했다.
선거결과는 뒤집혔고 그 지역도 발칵 뒤집혔다. 김상철이 1등이었고 백덕술은 2등, 이청수는 당연히 3등이었다. 드디어 민주당이 처음으로 당선되었고 김상철은 6수 끝에 감격스런 눈물을 흘렸다. 독립당 이청수는 처음으로 일 만표 득표를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김상철은 눈이 퉁퉁부은채로 울먹이며 고맙다고 당선사례를 하였다. 이청수는 타이탄트럭을 타고 만 표나 되는 득표수만큼이나 양손을 흔들고 다녔다. 오직 백덕술만이 몸이 아픈지 마음이 아픈지 얼굴을 보이지를 않았다.
백덕술은 몸은 언젠가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그 목소리는 영원히 가라앉을 것처럼 보였다. 제일 마음이 아픈 점은 철석같이 믿었던 김홍산의 배신이었다. 김홍산은 이중인격의 밀정이었고 대본도 없이 즉흥적으로 연기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고소가 들어왔고 그것은 테러에 의한 특정후보 당선을 위한 부정선거운동이었다는 것이었다. 백덕술이 목줄기를 다쳐 그 중요한 구호를외칠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백덕술의 지지자들이 욕설 비슷한 발음에 크게 실망하여 투표장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김홍산이 민주당의 사주를 받았거나 독립당의 밀정 노릇을 하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 모두가 그럴듯한 추측이었고 진실은 판결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 김홍산은 몇 년간 콩밥을 먹을 각오를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이청수는 감옥에 가있는 김홍산을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다. 예기치 못한 의거로 김상철이 당선되었고 또 이청수가 독립당의 득표기록을 깨지 않았던가. 이청수는 만년 3위에 그치겠지만 대체 불가능한 후보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 청수는 홍산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직 하나 독립이라는 단어를 공유하는 마음은 같았다고 믿었다. 어느 순간 궤도를 이탈한 척 한 홍산의 연기력에 고개를 숙였다.
이청수는 자신이 평생 써온 글들이 홍산의 단 한방의 주먹보다 가벼웠음을 인정했다. 논리와 이성으로는 뒤집을 수 없었던 세상의 견고한 아성을 붉은 산의 폭발이 허물어 버렸다. 홍산은 거친 대립 속에서도 일말의 타협도 없는 순수한 진심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지난 시절 홍산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면서 그의 원초적 용기를 질투했던 자신을 사무치게 후회했다. 지금 김홍산은 그의 스승이자 동지가 되었지만 그를 대신해 징역을 살고 있는 벗 앞에서 감히 그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청수는 며칠을 망설이다가 날을 잡아 면회를 갔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서 거절당했다. 다음번에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나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면회를 가니 빙긋이 웃으면서 만나주었다.
어두컴컴한 면회실 복도를 푸른 수의를 걸친 김홍산이 절뚝거리면서 오고 있었다. 예전보다 걸음걸이는 더 흔들렸고 보폭도 많이 줄었다. 그 붉은 눈길은 흔들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패배하여 절고 있는 왼쪽 다리를 용감한 오른쪽 다리로 끌고 가는 모습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이청수는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홍산을 보니 고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일제의 감옥에서 면회를 나오는 어느 독립투사로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자신을 대신하여 벌을 받고 있다는 죄책감이 송곳이 되어 심장을 찔렀다.
“왜 날 도운 게지?”
“너를 도운 게 아니라 독립이라는 약속을 도운게지.”
“네가 독립당에 입당하여 출마해라. 내가 지원연설을 해줄 테니까.”
“하하, 내가 독립당 당원인걸 아직 모르시나 보지.”
“생각보다 심지가 깊구만. 다른 이름으로 가입했겠네.”
“본이름을 대면 너그들이 가만있겠나. 밀정이라고 쫓아냈겠지.”
“나는 벌써부터 너가 양쪽을 오가며 연극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
“귀신이네. 청수 너나 나나 딱 하나 맞는 것은 대한독립만세가 아니겠는가.”
그둘은 언제나처럼 빈정거림과 선문답으로 슬쩍 감정을 건드려가며 우정을 과시하였다.
감방으로 되돌아가는 홍산의 뒷모습이 큰 산과 같았고 절뚝거리는 발걸음은 청수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항상 건조하던 그의 눈가에는 몇 방울의 이슬이 조용히 맺혀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그둘은 긴 세월 동안 평행선을 달렸지만 단 한 지점에서 교차했다.
김홍산은 중대선거사범으로 기소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는 하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진정한 대한독립이 올 때까지 감옥을 나올 생각이 없다고 말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침내 불타는 산과 고요한 강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긴 세월의 방랑을 멈추고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