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이다!

#책 #고전문학 #벽돌책 #영화 ‘라이프 리스트’

by JANE WATNEUNGA

p.647

"물줄기다! 고래가 물을 뿜고 있다! 눈 덮인 산처럼 하얀 혹이다! 모비 딕이다!"


마침내 오늘 이 애증의 벽돌책을 다 읽었습니다! 내용 페이지수 684쪽 중에 저 문장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647쪽의 저 문장을 보자마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 너무 기뻤습니다. 모비 딕을 만나기 위해 백과사전이나 작업안내서 같은 이 책을 읽어나가느라 무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모비 딕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너무 오래전에 읽기 시작해서 읽다가 말다가 읽고 있다는 걸 거의 잊고 있다가 문득 '아! 모비 딕을 읽고 있었지!' 생각나서 몇 장 읽다가 다시 책꽂이에 방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브런치 글쓰기처럼^^;


모처럼 주말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넷플릭스 영화를 검색하다가 '라이프 리스트(2025, 미국)'라는 영화가 눈에 띄어 보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인 엄마가 딸에게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주기 위해 딸이 13살 때 작성한 '라이프 리스트' 일명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미션을 주고 딸은 그 미션을 실행하면서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 나온 라이프 리스트 중 하나가 '모비딕 완독 하기'였습니다. 그 리스트를 보면서 '모비 딕이 나만 읽기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안이 되었다가 '나도 주인공이 해낸 것처럼 모비 딕을 다시 읽어 기필코 완독을 해야겠구나'라는 동기가 생겼습니다.


다시 이어서 읽은 부분부터 저에게 인상 깊었던 장면을 텍스트 스캔하여 기록하고 저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이 책을 다 읽고도 하나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아 그중 몇 문장만 여기에 옮겨 봅니다.


p.452

생각해 보라. 고래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슨 말이든 더듬거려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생각이 깊은 존재치고 이 세상에 할 말이 있는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거의 없다. 오, 세상은 무슨 말이든 잘 들어준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저는 평소에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말도 많이 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쓸데없는 말을 합니다. 생각이 깊은 존재는 아닌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쓸데없는 이야기까지도 재밌다고 무슨 말이든 잘 들어주는 분들께 새삼스레 감사함을 느낍니다.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 같네요. 대신 저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 같습니다.)


p.460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고래의 꼬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고래는 얼굴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고래의 얼굴을 알겠는가? 고래는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대는 내 뒷부분인 꼬리는 보겠지만,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할 거라고. 그런데 나는 고래의 뒷부분인 꼬리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그가 제 얼굴에 대해 어떤 암시를 주더라도 나는 다시 말할 수밖에 없다. 고래에겐 얼굴이 없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척했던 저를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P.504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 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다.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행복한지 신경을 쓰면서 뭘 해야 행복할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까 고민하다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머릿속에 있는 행복을 내 주위의 것들로 다시 채워야겠네요. 남편, 아이들, 안마의자, 욕조, 책, 수영장, 자동차 그리고 유튜브, 배달앱 등)


위험한 걸 알면서도 도전이나 모험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말라야 정상에 도전하거나 남극이나 북극 탐험을 하거나 불가항력의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건 그것이 이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삶의 일부나 목표가 되어 버려서 일까요? 모비 딕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스타벅과 나머지 모든 선원들은 알고 있었지만 에이헤브 선장은 모비 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미 선장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의 모비 딕은 무엇인가?’


박경리의 ‘토지’ 20권을 시작으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그리고 허먼 멜빌의 ‘모비 딕’까지 끈기와 의지로 두꺼운 책을 하나씩 완독 할 때마다 느끼는 성공의 희열은 저를 다시 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됩니다.


예전엔 신간 베스트 소설이나 사회정서심리 관련 책들을 주로 읽었는데 요즘은 다시 고전문학에 푹 빠져 있습니다. 어려서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이제 공감이 되고 깊이 사색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벽돌책만 읽다 보면 시간도 노력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읽다가 중도 포기하거나 다른 책까지도 읽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벽돌책은 ‘잠자기 전 30분 읽기’처럼 일일 연속극 보듯 읽는 시간을 정해서 조금씩 매일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시간에는 새로 나온 책이나 짧은 고전문학을 읽습니다. 읽은 책이 많은데 브런치 매거진에 많이 못 올렸네요. 읽기만 하면 금방 잊어버리지만 읽고 나서 이렇게 내 생각을 기록하면 그 책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읽고 감상 쓰기를 다시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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