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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WATNEUNGA Oct 15. 2021

어제보다 1개만 더!

[학교이야기 11] #1학년 #매일 체육 #줄넘기  #비교대상

"내일부터는 모두 체육복을 입고 오세요."


입학식 다음날부터 장샘 반은 모두 학교 앞 문구점에서 산 하얀색 학교 체육복을 입고 등교를 했다. 모든 반이 그런 줄 알았는데 전교생 중 유일하게 장샘 반만 학교 운동복인 하얀 체육복을 날마다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운동장에 나가는 반도 그 반뿐이었다. 매일 아침 장샘은 그림책 읽어주기가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가끔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있는 날, 행사가 있는 날은 빼고 매일 운동장에 나가서 체조하고 줄넘기를 한 후에는 놀이기구를 타거나 술래잡기, 축구도 하며 놀았다.


지환이는 매일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 건 좋지만 줄넘기를 할 때는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다른 애들보다 키가 작아서 자꾸 놀림을 받고 괴롭히는 애들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는 태권도도 다니기 시작했지만 애들이 다가오면 움츠려 들었다. 혹시나 놀리는 아이가 있으면 큰소리로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면서 대들고 그것도 효과가 없으면 울어버리곤 했다.

'형은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데 난 왜 이럴까?'

그렇게 생각하며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것이 신나기도 했지만 걱정도 한가득이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줄넘기를 준비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가져오긴 했는데 지환이는 영 자신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아이들은 곧잘 줄을 잘 넘는데 하나도 제대로 넘지 못해서 창피했다. 잘 못하니까 하기 싫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줄을 넘는 방법을 가르쳐줄게요."


장만옥 선생님은 줄을 잡는 법부터

1단계-뒤에서 앞으로 발 앞까지 줄 넘기기

2단계-발 앞에 온 줄을 두 발로 넘기

이렇게 한 동작씩 나눠서 가르쳐주었다.


"천천히 나눠서 넘어도 개수 인정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고 했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 내가 넘은 줄넘기 개수보다 1개씩만 더하는 것이 오늘 목표입니다. 어제와 똑같거나 더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매일 연습할 거니까. 연습 다하고 검사받고 싶은 사람은 줄을 서주세요. 선생님한테 검사받으면 놀이터에 가서 놀아도 좋습니다."


선생님은 매일 반 아이들 모두의 줄넘기 개수를 써서 체조가 끝나면 줄넘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제 개수를 알려주었고, 오늘 그보다 1개라도 더 하면 모두 앞에서 "성공"이라고 크게 외치고 박수를 쳐주었다. 처음엔 줄넘기를 잘하는 아이들만 신나 했는데 나중엔 모두 자신의 기록 경신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의 "성공"소리에 개수에 상관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줄을 넘을 때마다


.

.

십일

십이

.

.

"수학책에서 1부터 100까지 배우고 있죠? 줄넘기하면서 수학 공부도 같이 하는 거니까 큰소리로 다 같이 세어줍시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 모두 합창하듯 같이 큰 목소리로 개수를 세었다.


지환이가 줄넘기에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입학식이 끝나고 한 달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였다. 단계를 나눠서 넘다가 잘 되지 않아서 짜증내고 줄넘기를 팽개칠 때마다 선생님이 어느새 다가와 다시 가르쳐주고 격려해주었다.


처음 한 번에 줄을 넘게 된 순간에는 가슴이 벅찼다. 점점 재미가 생기고 하나씩 더 넘게 될 때마다 신이 나서 소리도 질렀다. 작다고 무시하던 철이도, 자기가 제일 잘한다며 의기양양해하면서 줄넘기 못한다고 놀렸던 진수도 점점 늘어나는 지환이의 줄넘기 개수에 놀라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우리 반은 매일 아침, 운동장에서 각자 줄넘기를 하고 선생님께 일대일로 검사를 받지만 금요일 강당 체육 시간에는 강당에 둥그렇게 모두 모여 앉아 한 사람씩 가운데 서서 일주일 동안 줄넘기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혼자서 줄넘기를 했다. 선생님이 지난주 금요일 기록을 알려주고 기록을 깨면 개수에 상관없이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간혹 가운데에서 검사받기 싫다는 친구는 선생님이 따로 검사했다. 드디어 지환이 차례가 되었다. 이번 금요일은 학부모 수업 공개의 날이어서 반 아이들과 수업을 보기 위해 온 가족들은 1교시부터 강당에서 가족 운동회처럼 릴레이 달리기 게임을 하고 둥글게 둘러앉았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등 입학식처럼 다 온 건 아니지만 꽤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이 앉은 원 바깥에 서있었다. 한 명 한  명 줄넘기를 마칠 때마다 큰 박수소리가 났다.


"김지환"

드디어 지환이 차례가 왔다!

지환이 아빠는 일하는 날이지만 지환이의 간곡한 부탁에 강당에 와있었다. 아빠가 보고 있어서 평소보다 엄청 떨렸지만 용기를 내서 가운데에 섰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줄을 넘을 때마다 개수를 큰소리로 세었다.


1

2

3

.

.

531

532

534


초등학교 입학식 한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500개를 훌쩍 넘기다니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에 힘차게 박수를 쳐주었다. 특히, 체격도 왜소하고 울기도 잘했던 막내아들의 대견한 모습을 본 지환이 아빠는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 없이 자라서 기죽지는 않을까 학교에 적응은 잘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던 지환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반 아이들 중 가장 많은 기록으로 줄넘기를 해내는 모습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환이 아빠는 줄넘기 후 숨이 차고 힘들지만 환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는 지환이를 향해 두 손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어느 때보다 더욱 꼭 안아주었다.


특이한 것이 또 있었다. 반에서 가장 많이 넘는 아이만 아이들이 칭찬과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개수가 적던 많던 그 전 기록보다 1개라도 더 하면 10개든지 500개든지 똑같이 기뻐해 주고 박수를 쳐주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줄넘기를 잘해서 늘 반에서 제일 줄넘기 개수가 많았던 진수도 환한 얼굴로 지환이를 향해 박수를 쳐줬다는 것이었다. 장샘반 아이들이 지난 몇 달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강당에서 학부모 수업 공개 수업이 끝나고 다른 가족들과 선생님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수 아빠와 엄마였다.

"진수가 자기가 반에서 줄넘기 제일 많이 한다면서 오늘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날마다 줄넘기 연습을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아까 줄넘기 끝나고 오늘 연습했을 때보다 더 못했다고 많이 속상해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엄청 놀란 게 있어요. 원래 진수는 다른 사람한테 지거나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면 분을 참지 못하고 화내고 난리거든요. 근데 오늘 진수는 반 1등도 아니었는데 자기보다 잘한 친구에게 박수도 쳐주고, 화내고 난리 칠까 봐 불안해하는 저희한테 "전 괜찮아요. 매일매일 연습할 거니까요"라고 하는데 진수가 몸도 맘도 많이 자랐구나 느꼈어요."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될 무렵, 지환이는 709개를 최고 기록으로 1학기 줄넘기 신기록 행진을 마무리했고 더 이상 욕을 하지도 잘 울지도 않는 아이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 반 최고 인기 친구로 아이들 모두가 놀고 싶어 하는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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