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연장시켜 준 뮤지컬에 대해
우리는 왜 뮤지컬을 보는 걸까.
흥미로운 이야기 또는 캐릭터에 끌려서? 뮤지컬 넘버가 좋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려고... 이렇듯 공연장에 모인 수백 명의 관객들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고, 그 수백 개의 이유는 공연의 동력이 된다.
아직 무대가 시작되기 전. 고요한 공연장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에 나는 관객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당신들은 어떤 이유와 기대감으로 여기 이곳에 모인 것인가요? 묻고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종종 공연장으로 도망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완벽히 통제된 그곳만이 주는 안도감. 동떨어진 섬 같은 그 공간에서 나는 가끔 '숨을 쉰다'. 마치 실수로 육지에 잘못 떨어진 물고기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던 내가 공연이라는 숨을 만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 느낌. 이게 바로 내가 공연을 보는 이유다.
그러다가 만나는 보물 같은 뮤지컬 넘버 하나. 그걸로 내 삶이 연장될 때가 있다.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막연한 감정으로 닥친 시간을 견디고만 있을 때, '이래서 힘든 거야'라는 통찰력을 주는 넘버가 있다. 그렇게 내 삶의 연장 버튼을 온 힘 다해 눌러주는 뮤지컬 넘버들을 소개한다.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삶을 산 주인공 네불라와 수아가 마침내 서로를 바라볼 때 펼쳐지는 장면. 그 뒤로 흐르는 잔잔한 트럼펫 소리가 넘버의 시작을 알린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아직도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좋은 가사,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배우가 만나면 이렇게 훌륭한 장면이 탄생하는구나.
인생은 딱 내 키만큼의 깊은 바다라는 이 넘버는, 감당할 수 없는 파도가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 바다 한복판에서 '견디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엄칠 줄도 모르는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저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르는 게 다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것. 가끔은 파도가 너무 거세 뛰어오를 힘조차 없을 때에는 길게 숨을 들이마신 채 바다에 잠겨 기다려야 한다. 다시, 파도가 잠잠할 때까지. 올라갈 힘이 생길 때까지.
여기에 포기라는 선택지는 없다. 한 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시간만이 절실하게 필요한 거다.
저 멀리 누군가
육지를 향해 나아갈 때도
머리 위 새들이 날 더러
더러 비웃을 때도
무대 위 배우들은 정말 파도에 휩싸이기라도 한 것처럼, 양팔을 벌린 채 헤엄을 친다. 관객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압도감이 든다. 겨우겨우 허우적대는 배우들은 그러나 여전히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배우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이 넘버를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장면이 재생된다. 하나는 무대 위에서 간절히 헤엄치던 배우의 표정. 몇 년 전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또 하나는 내 앞 좌석에 앉았던 관객의 모습이다. 넘버를 듣다가 흐른 눈물에 황급히 얼굴을 닦던 그 순간, 내 앞에 앉은 관객분도 고요하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연극 [마우스피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연극을 본다는 건, 관객의 심장박동이 맞춰지는 일'이라고. 나는 그때 분명히 느꼈다. 우리의 심장박동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음을.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를 꼽으라면, 나는 '가족'이라고 답할 것 같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 다 알겠다가도 모르겠는 존재. '가족이니까'라는 감투 아래 숨겨놓은 감정들.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말들이 가끔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그렇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숨겨두었던 아픔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확신을 보태는 마지막 넘버, '빛'은 그 메시지를 더욱 '빛나게'해 준다.
불을 켜요
먼저 불을 밝혀요
어둠 속에 혼자서
있진 마요
가족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나탈리가 가장 먼저 노래하는 이 넘버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삐걱대는 가족들 사이, 그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좌절하던 그들을 향해 먼저 불을 켜 보자고 말하는 나탈리의 목소리가 지나고 나면...
사랑은 고통임을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랑한다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 속에 뛰어들겠다는 모두의 목소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다.
'가족은 원래 복잡하고, 그래서 힘든 거야'라는 깨달음을 응축한 이 노래, '빛'은 이해할 수 없는 서로를 사랑으로 덮어버린다.
다들 힘겹게 버텨
싸워야 올
한 줄기 빛
한 줄기 빛
어서 오라
한 줄기 빛
고된 싸움 끝에 올 반가운 빛 한 줄기를 향해 내딛는 걸음. 그 터널 같은 공간 속에서 나오고 나서야 우리가 저 칠흑 같은 곳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벗어나기 전까지는 몰랐던 고통들. [넥스트 투 노멀]은 빛이라는 넘버로 그 고통을 치유한다.
나는 왜 항상 이런 건지.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 주는데, 나는 왜 상처만 주는 건지. 그리고 부모님이 주는 사랑은 왜 가끔 상처로 다가오는 건지.
그런 지옥 같은 터널 속에서 죄책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 뮤지컬 넘버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한 분야에서 탑을 찍으면, 이제 걱정 같은 거 다 털어내고 행복하겠지?라는 생각을 완벽히 배반하는 이 넘버는 첫 구절부터 아주 솔직한 현실이 튀어나온다.
난 오늘도 바빠서
너무나 피곤해
쉴 시간이 없어
또 점심과 미팅과 시 낭송에
끝없는 인터뷰
그렇게 고단한 일과를 끝내고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텅 빈 백지 앞에서 머리를 마구 쥐어뜯는다. 모두가 내 작품을 칭송하지만, 이제 더 쥐어짜 낼 것도 없다! 저 백지는 숨통이 막힐 정도로 달려들고, 이젠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순간!
정말 정말 힘들어
(...)
힘들어
짜증이 치밀도록
도망칠 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인생
국민작가 셰익스피어도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상황을 보면, 이상한 감정이 치솟는다. 그러니까 저렇게 잘난 사람도 사는 게 힘들어 죽겠다는데 내가 뭐! 같은 심보. 나의 고난에 대한 불평불만을 합리화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조금 우스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게 능사가 아닐 때도 있다. 야 나도 그래! 동조하며 어깨동무를 거는. 같이 '힘듦'에 대해 1절, 2절, 그리고 3절까지 외치다 보면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유쾌한 넘버지만 나름의 고뇌와 고통이 담긴, 어찌 보면 정말 처절한 넘버다. 원고를 써서 넘겨야 하지만, 당장 아무 생각도 안 나는 상황은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다. 그리고 이건 비단 원고만의 일이 아니다. 당장 10분 뒤 가야 하는 아르바이트. 마감 기한이 정해진 업무 등등 우리는 하루하루 공포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이 노래를 한 번 읊조려 보는 건 어떨까. 정말 힘(힘) 힘들어! 정말 정말 힘들어! 그 흥얼거림으로 당장의 짜증을 털어내고, 닥친 일을 해내는 당신은 곧 셰익스피어 같은 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딱 내 키만큼의 고난만 주는 삶에 대한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 그리고 우리 함께 빛을 향해 나아가자는 '빛'. 정말 힘든 하루하루에 대한 유쾌한 투정을 노래하는 'Hard to Be the Bard'까지. 나는 이 넘버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리고 이 소중한 보물창고 안에 담아둔 노래들을 보며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누군가 뮤지컬을 왜 보냐고 물으면, 이런 보물을 쌓는 재미로 본다고. 나는 나만의 보물창고를 채우기 위해 공연장으로 도망치는 거라고. 그렇게 웃으면서 대답할 것이라고 말이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