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ULTRA(초-) 백화점은 "WHO MADE THIS", 즉 "누가 만들었는가?"를 핵심 질문으로 가져가는 전시다. 소비의 새로운 장르를 선언하는 캠페인으로, 결과가 아닌 방식을 제시하는 전시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백화점이라는 전시 공간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음악과 출판, 영화,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통틀어 약 70여 개의 브랜드를 구경하며 그간 우리가 거쳐온 서브-컬처적 경험을 돌아보게 된다.
가장 먼저, 전시의 테마인 '포스트 서브컬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포스트 서브컬처는 서브컬처 이후 '그들'에 대해 다루는 장르가 아닐까. 하위문화가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는 것이 아닌, 중심부로 이식되는 단계에 주목하는 이 전시는, 마찬가지로 전시라는 행위에 있어 종종 주변부에 위치하곤 하는 관람객을 중심부로 데려온다. 소비라는 행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관람객은 '브랜드의 다음 서사'를 함께 고민하는 잠재적 협업자가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만화방의 단골손님으로서, 다양한 장르의 만화와 1세대 소설, 애니메이션과 음악 등을 즐겨온 나로서는 서브컬처를 전면에 내세운 해당 전시를 보며 심장이 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브컬처의 대표 격인 장르를 온몸으로 경유해 온 지금의 나는 '그다음'을 이야기하는 이 전시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전시는 'FINDER', 'COLLECTOR', 'CUSTOMER'의 세 가지 파트로 구성이 돼 있다. 이제 이 울트라 백화점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자.
본격적으로 공간을 체험하기 전, 한 손에 잡히는 빨간 종이백 하나를 받게 된다. 공간을 체험하는 도중, 마음에 드는 인사이트 페이퍼나 북마크, 영화 티켓 등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들을 이 종이백 안에 차곡차곡 꽂아 넣으며 나만의 서브컬처 '백'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 안으로 발을 들이면, 각 파트마다 참여하는 아티스트와 브랜드가 나열된 공간 뒤로 첫 번째 섹션인 <서브컬처 스트릿>이 등장한다.
서브컬처 스트릿은 길을 따라 음악과 출판, 영화, 패션의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여정을 표현한다. 본격적으로 서브컬처를 탐구하기 전, 각 분야가 제시하는 통찰들을 살펴보며 이 전시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 집중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특히 톡톡 튀는 상상력과 다양한 분야가 가진 고민점을 발견했다. 주류 문화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비주류' 문화, 이 서브컬처가 2026년에 이르러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주변부의 문화로 일컬어지는 서브컬처가 이제는 주류의 궤도에까지 오른 지금, 서브컬처가 지닌 문화적 잠재성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섹션이었다.
그렇게 서브컬처 스트릿을 지나 마주한 두 번째 섹션은 <비사이드 레코즈>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장 재밌게 즐긴 공간이기도 했다. 비사이드 레코즈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그 음악을 차근차근히 구축해 온 아티스트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 들어가면, 이번에는 '비사이드 레코즈 체크리스트'라는 종이 한 장을 받게 된다. 음악 너머에 존재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다가 내 마음을 울린 앨범의 스티커를 뽑아 해당 종이에 붙이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커스텀하는 체험이었다.
비사이드 레코즈에 나열된 LP 판에는 각 아티스트들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특히 요즘 즐겨 듣는 밴드 '심아일랜드'의 이야기가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그들의 'B-SIDE'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청춘'에 대한 단상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청춘은 미래의 걱정으로
자신을 옭아매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S.O.C'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이라는 뜻을 담은 곡으로, 정해진 정답에서 벗어나
마음이 가는 대로 나를 맡겨보는 태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바이닐에 담긴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향유하면서, 몰랐던 아티스트를 새로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충만해졌다.
이어지는 세 번째 섹션은 <텍스트 에비뉴>이다.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이번에는 독립출판이 던지는 질문과 대답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나비클럽이나 닷텍스트, 전기가오리 등 그들만의 세계관과 색채가 뚜렷한 독립출판이 현세대에서 나아가는 방식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만의 질문과 문장으로 고유한 궤도를 만들어온 크리에이터들의 거리'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는 공간이었다. 특히 포스트 서브컬처라는 주제 안에 모인 출판사들. 주류의 속도에서 벗어나 고유한 시간대를 만들어가는 출판사들의 세계관을 즐길 수 있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출판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에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평소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보지는 못했던 출판사가 어떻게 부스를 구성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또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서로 다른 색깔을 띄우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각 부스의 특징을 드러내는 책갈피를 구비해 둔 점도 좋았다. 이 책갈피를 수집하여 나만의 쇼핑백 안에 담는 구조. 다시 집에 돌아가서도 책갈피를 꺼내보며 내가 이런 출판사의 세계관에 잠시 발을 담그고 왔었지, 하고 떠올리는 순간까지를 영리하게 설계한 것처럼 보였다.
종이와 문장의 힘을 믿는 이들의
고집스러운 세계관 사이를 거닐며,
당신의 마음에 오래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을 발견해 보세요.
단단한 마음으로 텍스트를 밀고 나가는 출판사들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즐기다 보면, 이제 네 번째 섹션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리뷰어스 씨어터>이다.
리뷰어스 씨어터는 독립 영화를 큐레이팅 한 장소다. 독립 영화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시선에 주목하는 장르이다. 해당 공간은 작품을 넘어, 그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에 주목한다.
여러 편의 독립 영화가 자리를 잡고 있는 한편, 이 공간에는 10인의 리뷰어의 목소리도 함께 담고 있다. 음악과 출판을 넘어 이제 영상에까지 이어지는 여러 가지 질문들을 체험하며 각 장르, 그리고 각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이 전시의 체험은 결국 '나'에게로 수렴한다. 내 취향을 가득 담은 쇼핑백을 열어 보면, 그간 경유해 온 서브컬처, 다양한 문화로 구성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공간에서 '유월'이라는 작품을 만나 반가웠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우연하게 뜬 해당 작품을 재미있게 관람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경험이 다시 이 공간에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느낌이 즐거웠다.
이 공간에는 실제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작은 관도 마련돼 있다. 내가 갔을 때는 '러브!스탠다드?'라는 작품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비사이드 레코즈>에서 음악을 감상하고, 또 누군가는 <텍스트 에비뉴>에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 공간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감각. 그 모든 경험의 총체가 하나의 공간에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서브컬처의 혼종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섹션은 <더 리얼 부티크>. 패션 코너였다. 옷을 대하는 브랜드의 태도, 그 한 벌에 담긴 서사를 감상하는 갤러리형 공간으로, 그저 입는 행위만으로 그치지 않을 옷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공간이었다.
더 리얼 부티크에서는 옷을 그저 찍어내고, 팔아버리는 존재가 아닌 단단한 아카이브, 즉 하나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평소 패션에는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 섹션이 유독 색다르게 느껴졌다. 각 브랜드의 신념과 함께 옷을 구경하며 마치 패션에 제대로 눈을 뜨는 경험을 했다고나 할까. 옷은 그저 밖에 나가기 위해 걸치는 것이라는 감상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이제 패션을 하나의 '문화적 기록'으로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전시의 목적은 적중했다.
전시 중 '배드포드 브루클린'이라는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태도를 지닌 해당 브랜드의 신념을 살펴보자.
빈티지는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소유자들의 시간을 사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
옷을 입었던 사람들의 직업과 성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주름과 페이딩이
아닐까 싶다.
낡음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당 브랜드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빈티지 패션. 즉, 이전에 그 옷을 거쳐간 사람들의 궤적을 한 번씩 떠올려 보는 것도 빈티지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빈티지 가게를 구경하는 건 좋아하지만 평소 볼 수 없는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에서 그쳤던 내 과거 경험을 돌아보며, 이제는 빈티지 숍에서 '사람'을 떠올려 보자는 다짐도 하게 된다. 이렇게 또 나의 서브-컬처적인 경험으로 생각의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백화점을 테마로 한 전시답게, 그 마지막은 결국 '소비' 단계로 끝이 난다.
다섯 섹션을 모두 감상하고 나오면, 전시에서 보고 즐긴 물건들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울트라 스토어>가 등장한다. 전시의 목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영리한 기획이었다.
울트라 스토어를 구경하면서는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 중 소유하고 싶었던 물건 몇 가지를 손에 집었다. 이렇게 내가 직접 선택한 물건을 돌아보면서는 나의 취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소비자로서의 나의 태도, 내가 서브컬처에 두는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인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다. 울트라 스토어가 내세우는, '취향이 소유로 전환되는 순간'을 가장 크게 감각하는 순간이었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다양한 서브컬처를 경유해 온 나로서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음악과 도서, 영화, 그리고 패션까지 경유해 결국 나의 서브-컬처적 취향을 확인하는 울트라 스토어까지. 기승전결이 확실한 전시를 찾고 있다면, 두 손을 가볍게 하고 울트라백화점을 찾아가시길. 그곳에서 받아 든 쇼핑백으로 당신의 취향을 마음껏 커스텀하시길. 그리하여 당신의 세계관을 두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경험을 즐겨보시기를 바란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를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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