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는 사람 - 타이핑 1호 [도서]

쓰는 사람. 읽는 사람. 그리고 ( ) 하는 사람.

by 손현진


쓰는 사람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언제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즐기고, 또 드라마를 볼 때면 꼭 메이킹 영상을 찾아보는 나로서는 작품보다 오히려 B-SIDE의 이야기를 더 좋아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비하인드와 에필로그로 작품의 연장선을 즐기는 내게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이 매거진 <타이핑> 1호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타이핑>은 아트인사이트와 엘엠디엘프레스의 협업으로 창간된 매거진이다.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매거진'인 만큼, 창간호는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서른일곱 명의 에디터가 참여한 <타이핑> 1호는, 각각 글쓰기에 관한 기억과 추억, 충동과 실행, 실패 혹은 성장의 기록을 꾸밈없이 써 내려간다.


3월부터 매주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신입 에디터'로서, 먼저 그 길을 걸어가며 본인만의 색채가 담긴 글을 기고하고 있는 선배 에디터 분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글'이라는 대주제로 묶인 <타이핑> 1호는 크게 Draft 드래프트, Ctrl+Z 컨트롤 제트, Margin Note 마진 노트로 구성돼 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타이핑의 '글쓰기'를 찬찬히 살펴보려고 한다.



Draft 드래프트


초안을 뜻하는 드래프트 섹션에서는 글쓰기의 시작을 기록한다. 사실 거의 모든 초고는 수정되거나 버려진다. 타이핑을 하며 가장 애증을 느끼는 시간도 바로 이때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종이 위로 무심히 깜빡이는 커서를 볼 때면 대체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초고가 완성되지만, 이 초고는 언제나 부족해 보인다.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쓰기를 알았다는 이진 에디터의 <치기로 쓰는 법>, 내향인으로서 마음껏 얘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이 글쓰기였다는 정혜린 에디터의 <내향인의 글쓰기>, 그리고 첫 글은 열두 살 무렵 완성한 로맨스 소설이었다던 최유정 에디터의 <나는 주로 슬플 때 글을 썼다>를 차례로 읽어가다 보면, '쓰기'를 시도하게 된 서로 다른 계기 속에서 피어나는 '글'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에디터들의 글은 내가 왜 글을 좋아하는지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장이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은 글에 기대어 삶을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유로 '글'을 만나게 되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Insert Mode', 이야기의 틈 코너가 시작된다. 여기서는 박가은 에디터의 '항해일지', 즉 사람 냄새 풍기는 것이 승리한다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에디터가 본인이 글을 쓰고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임을 이야기하는 장이 펼쳐진다.


다음으로 펼쳐지는 'Highlight' 코너는 작품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을 담은 장이다. 아트인사이트의 '오피니언' 또는 '리뷰' 코너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에디터는 각각 연극, 시, 그리고 영화를 다룬다.


진세민 에디터의 <올해에도 연극을 보았다>는 딱 두 편의 연극을 선정해 소개한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연극이어야 하는 이유를 연극으로 증명함.

2. 살아야 함을 설득함.


타당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충족한 두 편의 연극, <이태원 트랜스젠더-2F>와 <보이지 않는 도시>는 언젠가 꼭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시를 다루는 차승환 에디터의 <시인만이 시를 쓸 수 있다면>은 시를 쓰고 읽는 일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하며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를 연결한다. 나 역시 시가 가장 어렵다. 함축된 언어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유추하며 읽어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는 다시 '시 읽기'를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한정아 에디터의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 그리고 밀양>이다. '이창동 다시-보기'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은, 평범한 사건 속에 제시되는 인물들을 통해 날카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감독의 세계관을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Ctrl+Z 컨트롤 제트


나는 항상, 언제나 '컨트롤 제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 섹션은 컨트롤 제트, 즉 실수와 실패에 관한 기록이다. 9명의 에디터가 모여 글쓰기 과정에 겪은 후회를 털어놓는 방식으로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져간다. 누구나 돌이키고 싶은 순간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까.


여전히 최고의 문장과 문단을 쫓고 있지만, '컨트롤 제트' 이전의 글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윤지원 에디터의 <지우개와 백스페이스>, 모난 생각과 아픈 과거를 언젠가 내보여야 함을 인정한다는 조유리 에디터의 <타이핑되길 기다리는 나의 모든 Ctrl+Z에게>, 그리고 이제는 컨트롤 제트를 천천히 누르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변선민 에디터의 <얼룩의 말을 듣기>를 읽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컨트롤 제트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 '처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다양한 에디터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컨트롤 제트'에 대한 단상을 차분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의 컨트롤 제트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컨트롤 제트는 어떤 것을 쓰고 => 지우고 => 다시 되감기 할 때 누르는 버튼이다. 나는 종종 지우고 싶은 기억이 떠오를 때면 이불킥을 날리고, 허공에 주먹질을 날린다. 부끄러운 순간을 완전히 지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기억을 잊는다고 해서 내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나? 쉽게 '그러하다'라고 대답을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나 역시 쉽게 컨트롤 제트를 누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그럼에도' 처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


이어지는 코너는, '인터뷰'였다. 사진과 글을 다루는 서예은 에디터의 진솔한 이야기를 넘어가면, 아트인사이트 박형주 대표의 인터뷰 코너를 만날 수 있다. 이 플랫폼이 만들어진 계기와 운영 철학, 그리고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엿볼 수 있는 장이었다.


이후 'Cursor' 코너가 등장한다. 지금 현시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임유진 에디터는 <혐오 밈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기까지, 창작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다>라는 글로 함께 했다. 개구리 페페가 혐오 밈으로 전락하게 된 일부터 다시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다룬 페이지였다.



Margin Note 마진 노트


마지막 섹션은 마진 노트, 바깥의 이야기다. 글쓰기의 주변부를 담은 섹션으로, 앞선 파트들이 글쓰기의 중심에 선 에디터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그 주변부를 탐색하는 에디터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라는 것이다.


휴대폰을 대체할 연필과 무제노트를 마련한 정윤지 에디터는 <연필, 그리고 무제노트>를 통해 메모장을 벗어나 연필을 깎게 된 과정을 차분히 설명한다. 강박적일 정도로 메모를 채우기 시작했다던 박서현 에디터의 <두꺼운 메모장에서 찾은 글쓰기의 첫 단추>는 메모장을 가득 채우는 단어와 문장에서 비롯된 단상을 이야기한다. 한 줄의 진심을 전하고 싶어 긴 글을 쓴다는 서예은 에디터의 <활자로 연결된다는 감각>은 본인의 메모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감상'을 나누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당 섹션의 이야기들은 모두 글쓰기 주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국 그 끝은 '글'로 향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토록이나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니. 새삼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에디터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조금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어쩌면 나도 잊고 있었던 '글'에 대한 열정을 이번 창간호를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된 것 같았다. 여전히 백지는 무섭고, 깜빡이는 커서는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내겐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후에는 편집자의 말로 <타이핑> 창간호는 막을 내린다.


쓰는 사람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고 했던가. 이 매거진을 보며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그 어떤 사람의 이야기보다 쓰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재밌다.


쓰는 사람은 종종 외로워지곤 한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고독하게 키보드를 치는 순간에는 아득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니. 이토록이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괴로워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즐긴다니. 대체 '글쓰기' 뭐길래.


쓰는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순 없겠지만, 드래프트와 컨트롤 제트, 그리고 마진 노트를 경유하며 느낀 점은 글쓰기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쓰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를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80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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