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1
3~4일에서 길어야 두세 달이었던 내 여행의 시간은, 몇 달 몇 년을 버티게도 하고 굴욕감에서 나를 건져 주기도 했으며 많은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되돌려 놓기도 했다. 여행이라는 게 지금 와 색다를 것 없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인데 왜 다시 떠나게끔 만드는 것일까. 폭우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말과 자잘한 사건들 속에서도 질량과 시간을 가볍게 무시하고 왜 더 또렷이 기억되는 것일까.
가끔은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 안 나고 지난주 어느 요일 내가 무슨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말에 걸맞게 별 자극 없이 기쁨 없이 일상이 지나간다. 바싹 마른 낙엽을 손에 쥐듯 시간이 부서진다.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태엽 감은 팔과 다리는 매뉴얼대로 움직여준다. 익숙한 사람과 서로를 잘 아는 대화는 편안하지만 숨 막히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특별한 일상보다 하릴없고 무력하던 여행의 한순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여행의 아침에는 하기 싫은 일이나 사회생활의 고민 대신 머릿속으로 파란 바람이 스며든다. 늘 나를 채근하던 시간은 교류 없던 이웃처럼 금세 무심해져서 개미처럼 느리거나 벌처럼 빠르게 지나갈 뿐이다.
인생이란 대성당처럼 거창한 건축이 아니다. 여행 중에는 당장 오늘 오후의 계획, 내일의 기대만으로 충분하다. 삶은 불쑥 돋아난 잡초 같은 우연성을 가지고 매우 단순해진다. 그 단순하고 부드러운 찰흙을 손에 쥐고 내키는 대로 주물럭거리면 된다. 또 한편으로 내 생활의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는 그냥 구름이나 거리를 쳐다보고 하릴없이 쏘다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기도 한다. 나는 한 마리의 지렁이가 된다. 천천히 땅속을 유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비가 와 물이 차면 지면으로 나와 비를 맞으면 된다. 내 존재는 너무나 작고 미미해서 내가 뚫어 놓은 작은 구멍만이 흔적을 남길 뿐이지만 괜찮다. 나는 그만큼 살쪄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행의 본질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 이라는 글자의 한 칸 앞에 있거나 한 칸 뒤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대상, 기대했던 일도 막상 그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감동적일만큼의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가슴에서 배 사이로 롤러코스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울렁임은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이나 떠나기 직전의 순간에 온다.
일상을 견딘 후 맞는 여행의 아침에는 절로 눈이 떠진다. 그런 날은 아침도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긴다. 침대 위로 열대어 같은 햇빛이 둥둥 떠다닌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조용히 흐르는 시간과 갖가지 표정들을 훔쳐보고 있을 때면 흥분이 살며시 옆으로 와 몸을 간질인다. 현실의 온갖 자질구레함을 먼지 털 듯 툭툭 털어내고, 걱정과 잡념은 서랍 속에 가두어 두고, 자유로운 것 같은 기분. 이쯤이 여행이 주는 달콤함의 절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일 수도 있다. 똑같은 음악을 듣고도 누군가는 문득 던져진 첫 음에 붙들리고, 후렴구에 가서야 몸이 흔들거릴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잦아드는 음이 만들어 내는 여운에 떠다니기도 한다. 내 경우에 여행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설렘은 원고지의 한 칸 앞에, 본의는 한 칸 뒤에 있는 것 같다.
고승의 일생에 걸친 금욕과 수양이 사리 몇 알로 응축되어 남듯, 여행의 의미도 다시 집에 돌아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함축된다. 그것은 사진이나 입장권, 몇 개의 영수증으로 남기도 하고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게 잘 요약되어 책장에 꽂히기도 한다. 바쁜 일상의 와중에 문득 떠올라 웃게 만든다. 나는 가끔 감상에 젖어, 혹은 위로 받고자 여행의 추억을 되뇌고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위해 다시 여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