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일. 혐오, 조롱, 단순화, 무사유

# 우리의 더 나은 대화를 위해

by 무재

말이 넘치는 세상이다. 제각각의 말은 의견인지 시각인지 배설인지 불분명한 채로 서로 뒤엉켜 온갖 카톡방과 커뮤니티와 채팅창을 뒹군다. 수많은 소집단을 가진 우리는 봄의 곤충들처럼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며 말을 옮긴다. 물론 그게 꿀벌처럼 늘 유익한 것은 아니다.

연예인 가십에서 직장동료의 험담, 서로를 향한 비하의 언어는 일상적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내 평온한 일터 밖에서 벌어지는 파업과 시위가 왜 벌어지는지 관심은 없지만 흐트러지는 집중력과 지각에는 매우 불쾌하다. 특정 종교사원, 대림동, 난민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사실 여부의 따짐 없이 어떤 불편을, 범죄를 연상시킨다. 이웃 나라와 함께 세계 최고의 저출산 고령화 국가에서 다문화는 선택일 수 없지만 전 국민에 흥선대원군의 망령이 씌운 듯 거기에 내 세금 한 푼도 보탤 수 없다는 생각은 늘 확고하다.

우리는 아침마다 창밖의 푸른 풍경 대신 인터넷 창의 혼란한 머리기사를 먼저 보게 되고, 피드에 뜨는 가십, 뉴스 한 토막을 서로에게 실어 나르고 영혼 없는 손가락으로 공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말의 향연. 본질과 무관한 것에 시선을 주고, 비판은 무디고, 사회적 약자에게 시혜의 말로 내 인간성을 챙기고, 구조에 몰이해하고 요란한 소수자엔 불편함을 표현한다.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스치듯 그런 대화를 나누고 올릴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무거운 주제도 일상에선 날씨 얘기 같은 잡담일 뿐이다. 호응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 된다. 더 산뜻하거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인 온갖 주제들로.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될까? 자신도 모르게 뱉어진 혐오의 자취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까, 혹은 그저 지켜보고 답하지 않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침묵을 택해왔지만, 침묵도 동조임을, 음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또 막막하다. 빠르게 넘겨지는 대화 화면에서 이미 저만큼 지나간 주제로 정색하기 뭐 하고, 그런 경박함과 무지가 나에겐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뜨악해하는 주변인의 모습을 때로 거울을 보듯 내게서도 보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주제는 일소해 버리고 입에서 입으로 공놀이하듯 단순화하여 주고받는 일은 얼마나 손쉬운지 모른다. 비난은 된소리의 단어를 내뱉을수록 쾌감이 커진다. 찬찬히 생각하기에 우리는 너무 바쁜 세상에 있는 듯 착각하고, 깊이 고민하기에 어떻게 깊이 고민하는지조차 잊어버린 듯 헤맨다.


벽에 몰린 듯 막막하다고 입을 꾹 다물 것인가, 사유하는 법을 잊었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절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가장 쉬운 말을 뱉기를 멈칫하고 경계하고 가다듬은 후 겨우 말을 얹는 사람이고 싶다. 쉽지 않게 얘기하고 싶다. 나 혼자 괜찮은 사람인 척 억지 부리지 않고 나의 친구, 동료들과 우리의 한없이 가벼운 대화 속에 타인에 대한 존중을, 구조에 대한 비판을, 세상에 대한 긍정을 조금이라도 불어넣고 싶다. 그런 시도가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닌 햇빛이었다는 우화처럼, 뾰족한 돌을 둥글리는 것은 부드러운 물살인 것처럼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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