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자로 대고 죽 이어 그린 선이 아닌, 말캉한 흙바닥 위로 제각각 크기의 돌멩이를 던지듯이, 불시에 후드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셔츠에 새기는 무작위적인 자국 같은 것이 과거라면 왜 어떤 기억은 그토록 끈질기며 쉽게 증발하는지, 또 쓸데없는지, 실재가 아닌 기억이 왜 선명한지 조금은 설명이 된다.
나는 내 뇌 주름과 신경 회로가 간직한 무질서한 크레이터들과 수만 년 진화의 선택으로 인한 본능, 예측 능력과 희미한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시간을 감각하는 것이다. 혹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고 착각한다. 나는 과거의 통합이고 현미경으로 수천 번 확대해야 보일 미세한 지점일지라도 우주의 한 부분과 등을 맞대고 있으며, 끝없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함께 원자로 돌아갈 것이다.
이 우연성, 불가항력, 의미 없음으로 수렴되는 발견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우리가 인과 관계와 기승전결을 갖춘 매우 특별한 서사라고 여겨왔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과학이 말해주는 게 위안이 된다. 두 손가락을 벌리며 할 수 있는 만큼 픽셀을 확대해서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과 먼지 한 톨의 한 톨의 한 톨의 한 점임을 상기하는 일이 비슷한 무게로 세상을 견디는 힘이 되어 준다.
그 찰나, 나에게는 영원인 시간 동안 나는 몰이해로, 나만의 욕구와 반응, 동기란 없는 존재지만, 엄청나게 큰 모자이크 판화의 한 점을 담당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렇다고 허무해질 이유는 없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모든 과학적 진보는, 세상을 읽는 최고의 문법이 영속성이 아닌 변화의 문법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존재의 문법이 아니라 되어감의 문법이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05P>
이 혼란스럽고 거대한 우주의 조금 특별한 모퉁이에서 세상의 일들이 뒤섞이면서 남긴 흔적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고 엔트로피를 성장시키도록 맞춰진 그 흔적들이 만들어낸 선이다. 앞날을 예측하려는 우리의 연속적인 과정과 결합된 기억이 시간을 시간으로, 우리를 우리로 느끼게 하는 원천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195~19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