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작은 마이크를 들고 있는 것

# 사랑받았지만 신뢰받지 못했다는 느낌에 대하여

by 무재

삼촌들이 있다면 그들 중 조카를, 특히 자신의 첫 조카를 가장 귀여워할 이는 양쪽의 막내들일 것이다. 이건 단순히 나이 차가 가장 적게 나서 친구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조카들의 시점일 뿐일지도 모르지만-또 어쩌면 형, 누나와 달리 그들이 아직 미혼이고 갑자기 세상에 불쑥 나타난 연약한 첫 혈연체에 마음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만- 가장 예쁨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역시 이모를 제외하면 막냇삼촌들이다.


기억 없는 꼬맹이 시절 사진 한 모퉁이에 제법 어른 같이 나를 바라보는 청소년의 삼촌이 있다. 그의 작은 등에 업혀 머리를 흩트리거나 눈을 가리는 고사리손이 있다. 늘 시내에 나가 돼지갈비를 사주고, 엄마에게 조르기 망설여지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사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삼촌이 있다. 분명 유치하고 조잡했을 수다를 진지하게 받아주는 눈이 있다.

그 눈과 웃는 입과 다정했을 반응을 신뢰했지만, 한편으로 어쩌면 삼촌들은 동생보다 나를 덜 신뢰했을 거란 의심도 있었다. 나는 고집 세고 변덕 심한 여자애이고 내 동생은 똘똘하고 유순한 남자애라서,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그렇지만 그건 그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느낀 분명한 감정의 하나였다. 내 말이 덜 신뢰받는다는 느낌. 동생의 것보다 덜 무게감 있고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는 기분.

어린이의 미숙함으로도 내 의견은 자주 왜곡되고 구깃구깃해졌지만, 종종 그런 비교로도 문장이 잘게 부스러기가 되어 우리가 앉은 방이나 식당 테이블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였던 걸까. 피해망상이라도 있었나, 작은 것을 확대하길 즐기는 피곤한 성미인가, 그런 검열이 아무도 모르게 뒤따라왔지만, 거기에 자기 검열이란 말을 붙일 생각도 못 했고 어쩌면 내가 일련의 그런 생각들을 차례로 거쳐 가고 있다는 자각조차 못 한 채로 등 뒤에 눌어붙은 그림자만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나는 가지고 있는 단어도 생각도 경험도 한없이 부족했던 어린이였다.


이미 어른이 된 지 한참인 지금, 완전히 떨치지 못한 그림자 하나를 느낀다. 어떤 계기로 불쑥 내가 신뢰받지 못하고 잃어버린 말들을 생각한다. 특히 여성으로서, 특별히 잘나지 못한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말들이 떠오른다. 나는 이 사회가 부여한 가치로 그리 출력이 크지 않은 마이크를 쥐고 있고, 이것이 그리 공평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알지만 과거에는 그 거대한 체계만을 안개 자욱한 숲에서 나무들의 윤곽선을 더듬어 보듯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나 한 명의 말이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녔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실은 '나'는 중요치 않고, 콘서트 앞자리에서 몸이 둥둥 울리는 출력으로 듣는 중요한 자리의 목소리 또한 쓰레기 같을 때가 많다. 모두가 제 가치에 걸맞은 마이크를 드는 일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한 시절 가장 믿고 좋아했던 사람들에게조차 여자애라서 덜 신뢰받았다고 느꼈던 작은 슬픔에 관한 이야기다. 나보다 더 무거운 슬픔의 추를 매달고도 어리둥절했을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의 슬픔을 상상하는 이야기다. 내 막냇삼촌들은 기억도 없고 의식도 못 했을 오래전, 분명 사랑받았지만 어딘지 침울해지던 시기들을 지나고 지나 그들과의 유대가 이제는 진즉 사라져 버린 어른이 되었어도 때때로 그 기분을 다시 느껴야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노골적이거나 부드럽게 작은 마이크를 든 여자는 무시당한다. 그 과정이 가끔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뒤늦게 찜찜해질 때가 있을 지경이다. 언짢음을 표현하면 신경질적이고 되려 편견에 찬 사람이 되기 쉽다. 나는 성장의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한 양육을 받으며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난과 상실-물론 살아가며 목격하는 사회적 상실과 재난을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없이 커 온 사람.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자 버둥대는 인간이니 그런 감정은 겪지 않는 게 맞지만 현실은 가끔 기대를 배반한다.

기름칠한 듯 매끄러운 것들만 보이는 이 사회에서, 모두가 온화하고 따스한 말을 건네는 듯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한 어린이가 느끼던 은밀한 배신감을 여학생이, 직장인이 된 여성이, 아주머니가, 어쩌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겪게 된다. 그게 내 삼촌들이 괘씸해할 다정의 기억을 뒤집고 그 불순물만을 끈덕지게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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