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갖 '우리'에서 탈퇴하고 싶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다.
우리가 이룬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눈에만 휘황찬란하다고, 우리가 죽고 스러지는 문제는 더 큰 세상의 입장에선 전혀 대단하지 않다고 말이다.
어째서? 거시적으로 한낱 먼지 한 톨도 아닌 내가 미시적으로도 한 줌 먼짓덩어리인 것 같으니까. 나이에 따른 적당한 생활 방식과 태도, 옷차림, 통장 잔고, 취향과 생의 과업에 이른 촘촘한 목록을 가진 이 사회에서 언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는 일은 꽤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늦었고, 우리는 어렵고, 우리는 어떻다는 오만가지 '우리'에서 그만 탈퇴하고 싶은데 탈퇴 창을 찾는 것도 짜증 나게 어렵기 때문에. 서로를 깎아내리고 한계 짓는 손가락들에 나도 모르게 내 손도 포함되어 흠칫하기 때문에.
그럴 때 저기 먼 거시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모두가 개별적으로 소중하다고 입으로만 말하는 미시의 세계를 떠나고 싶어진다. 엄지와 검지를 좁히고 좁히고 좁혀서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것도 나름 평등의 실현인가. 우리는 그래봤자 다 같이 아무것도 아니고, 남김없이 죽을 존재라는 것.
그래서 이게 기분이 좀 나아지느냐 묻는다면, 허무하지만 위로는 된다. 결국 다 사라지고 잊힌다는 불변의 진리가, 다채롭게 짜증 나고 다양하게 망가지는 미시의 나를 잠시간은 구해준다.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을 때에나 나는 잠깐 희망적이다. 인간의 무능만이 좋다. 인간의 불가능성만이 세계의 가능성." -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