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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옥 Nov 24. 2021

파란 눈 시아버지, 우리 집 아이 (2)

다시는 운전하지 않아!

2000년 12월 20일    


내가 출근하기 전 아침 여덟 시 반에  시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지친 사람처럼 내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시아버지: "나 몸이 영 안 좋아"
 나: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시아버지: "나 움직이기도 힘들어"
 나: "나는 일을 해야 하고 오늘 앤디가 쉬는 날이니까 아버지 집으로 가라고 할 테니 음식을 시켜서 들도록 하세요. 내가 퇴근한 후 찾아뵙도록 할게요"


앤디가 자기 아버지 집에 가서 이태리 피자집에 피망과 참치 그리고 소시지를 얹은 피자를 시켜 먹고 같이 텔레비전도 보고 집으로 왔다.




  2000년 12월 21일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시아버지가 또 전화를 했다  


시아버지: "나 몸이 오늘도  영 안 좋아"
나: "그럼 의사한테 가보도록 하세요."
시아버지: "의사가 나를 병원으로 보낼 까 봐 겁 나"
나: "병원에 가야 되면 가셔야죠, 앤디가 곧 갈 거예요. 그러니 같이 주치의한테 가보도록 하세요."


웬만하면 몸이 좋지 않다면서 전화할 양반이 아닌데 이틀째 우리 집으로 전화하는 것을 보니 뭔가 심각한 것 같아 얼른 남편더러  아버지 집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주치의한테 가라고 했다. 주치의는 시아버지의 건강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시아버지의 혈압을 재고 나서  약간 혈압이 높을 뿐이라며 약을 처방해 줬고 남편과 약국에 가서 혈압을 낮추는 약을 샀고 아버지는 약봉지를 들고 집에 갔다. 안드레아스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도착해서 내게 전화를  해 아버지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왔다고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15 분쯤 지나서 안드레아스가 내게 다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안드레아스: "나 지금 병원으로 가야 해, 아버지가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가셨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방금 아무 일 없이 의사한테 잘 갔다 온 사람이 왜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을까?

나는 영 맘이 안 놓여 일찍 가게문을 닫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시내에서 조화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꽃과 화분에 담긴 작은 꽃나무를 비롯해서 이미터가 넘는 나무까지 취급했다. 꽃꽂이를 해서 팔고 손님들이 화분이나 꽃병을 갖고 와서 꽃을 꽂아 달라고 하면 꽃꽂이를 해주곤 했다. 배운 훌로 리스트는 아니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꽃꽂이하는 것이 적성에 맞고 즐겨해서 손님들이 대부분 만족해했다. 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얼른 구분이 안되면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와서 꽃들이 진짜냐고 묻곤 하는데 그러면 나는, 나 빼고는 전부 가짜예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내가 병원에 도착해 이층에 있는 병실에 있는 시아버지를 방문하자 시아버지는 몹시 흥분해 어떻게 해서 구급차를 타고 오게 됐는지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시아버지는 남편과 함께 주치의한테 갔다가 집에 와서 소파에 앉아 잠시 쉬다가 일어나려고 했는데  펄썩 주저앉고  못 일어나게  되었다. 그 상황을  빨리  우리한테   알려야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기어서 응접실에서  나와 전화가 있는 복도 조금 높은 구석에 있는 전화를 줄을 밑으로 끌어당기고  우리한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기억력이 없어져, 자주 누르던 우리 집 전화번호 928494나 내 가게 전화번호 72483도 생각나지 않아 누르지 못하고 간단한 구급차 전화번호 112를 눌렀다는 것이다.  

오분만에 구급차가 도착해  구급차 직원이 시아버지 집에 벨을 눌렀지만 시아버지가 일어날 수 없어서 의사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웃집 65세 정도 먹은 키가 자그마하고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덱카씨가 그걸 지켜보고 있다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어줬다.  

최근 들어 기억력이 없어져 툭하면 열쇠를 잊어버려  만약을 생각해서 열쇠를  이층 발코니 쪽으로 나있는 창문 위에  두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던 덱카씨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찾았단다.  시아버지는 만약  응급전화번호를 못 눌렀다 해도 지팡이로 유리를 깨서라도 사람들이 알게 했을 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꼭 아이들이 뭔가 놀랍고 새로운 것을 경험했을 때 끊임없이 부모에게 이야기하듯 그런다. 이렇게 시아버지의 긴 병상의 길이 시작된다.

너무나 갑자기 예고도 없이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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