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빼기의 미학

긍정이라는 이름의 강박

by 문해월

사람들은 각자의 서사를 갖고 살아간다.

가정사 연애사 금전적인 여러 문제들.

우리 모두 각자에 서사에서 살아남은 건강하고 강한 사람들이다.


나조차 유년시절 부터 현재 까지 무너지고 싶은 순간 크고 작은 문제와 배신속에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아왔다.


문제를 극복할수록 강해진다 믿었고, 어떤 식으로든 옳고 그름을 나름의 기준을 삼아

더 밝게, 긍정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려 나를 밀어부쳤다.


나의 아픔은 나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과거에 어떠한 힘듬도 이겨냈던 나인데, 이런것도 못해?

내가 무너지는 감각이 들수록 더욱 강하게 '긍정적' 이라는 단어와 태도들로 나를 옭아맸다.

약함에 무너지지 않으려 강함 이라는 단어속 갑옷에 나를 꽁꽁 숨겼다.


운동과 명상 긍정적 사고등 할수있는 '좋은것' 이라고 치부되는 모든것들을 나에게 퍼부었으나,

비상등이 켜진 자동차 마냥 쉴새 없이 뇌에서 경보를 울려댔다.


터져버렸다. 노력해도 안되는 스스로를 보며 내가 나를 더 지옥속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초조한 마음. 불안. 숨이 가쁘고 아무렇지 않은척 표현하지 않아도 속에선 내가 녹아내렸다.


조심히 그리고 샅샅이 나를 조용히 돌아보며 알게된것.

'좋은 것' 이라 믿었기에 더 찾이 어려웠던것.


'좋아야 한다'는 강박.

'긍정적' 인 사고가 나를 바꿀수 있다는 강박.

'감사함' 이라는 강박.


모두 너무나 좋은 말들이다.

그러나 내가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온갖 산해 진미와 좋은것 들을 입에 넣어봤자 체할 뿐이다.


체해버렸다.


아플땐 아파해야된다. 괴로울땐 충분히 흠뻑 괴로워 해야된다. 고통받는 나를 내가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당장의 '좋은 것'들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 '긍정적' 이라는 진통제를 넣어봤자 순간 무뎌진 고통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원인. 모른다면 모른채로 괜찮아지려는 강박을 내려놓고 이해받지 못하더라고 나의 유약함은 내가 잘 보살펴 줘야한다.


사람은 나조차 나를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구원처럼 자신을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연인과 가족 친구 그 누구한테든.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관계에서 단절을 느낀다면 굉장한 고통일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타인은 나를 깊에 이해할수 없다. 나의 고통은 내가 느끼는것이다.

타인에게서 구원을 얻지 말자는 약속은 냉소적이게 들릴수도 있지만,

결국 나 자신을 내가 구하지 못하면 그 어떤것도 구할수 없다.


적어도 현재 나에게 사랑하든 그 어떤것이 있다면, 그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나는 나를 구원해야한다.

그 구원은 거창한 어떤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나의 부족함 결핍 상처 불안한 그 모든것들을 억지로 벗어내려 하기전에, 좀 더 살펴주고 이해해주려는것.

너무 빠르게 이 고통의 터널을 빠르게 지나치고 싶어 몸부림 치기보다는

조금은 안일한 태도. 조용한 물살위에서 흐름대로 그저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 도착해줄꺼라는 믿음.


이렇게 힘을빼곤 흐르는 물살속에서 내던져 보는것도 고통의 터널에서 의외로 가장 빠르게 지나칠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힘을 빼자 조금은 나를 믿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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