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를 보고난후
영화를 보기전부터 맴도는 작은 문장이 있었다.
'선택 되지 못한 선택'
느리게 흐르는 주말 오후, 영화의 짧은 예고편 영상을 보고는 몸을 부리나케 일으켜 혼자 영화를 보러 나갔다.
어떤 감정에 이끌렸는지는 모르겠다.
보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맘속에 되뇌이던 문장을 장편의 서사로 연결지어 다시금 제대로 마주해 마음을 더욱 애리게 만들었다.
한번쯤은 '이 사람' 이면 전부 모든게 가능할거라 믿었던, 내가 있었다.
믿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주며 동시에 상대방 또한 나에게 집이 되어주던.
그 상대 옆에 있어야 숨통이 트였다.
나의 불안은 상대방에게서 채워졌다.
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나는 지워지고 내 삶과 내 마음의 방은 오로지 그 사람으로 채워지는 시간속에서
'우리'는 무너져 갔다.
어디서부터 왜 이유도 모른채 작은 틈들이 모여 크게 조각나 붙여 버릴수 없어버리고, 나부터 부서져 버렸다.
영화보를 보고 그동안 나의 '관계' 를 떠올려 보았을때,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소중한 관계를 지키는 방법은 타인을 위한 희생도, 헌신적인 사랑도, 무조건 적인 이해도 아닌
'나'를 잃지 않는것이다.
'만약에 우리'의 정원이가 건축사 편입을 포기 하지 않았다면,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았다면, 조금은 우리가 아닌 각자, '나' 자신에게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 헌신 그속에서 보답하지 못하는 초라한 스스로의 모습
사랑과 헌신이 서로에게 족쇄가 되어가며 죄책감을 자극한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나, 상대방을 너무나 사랑해서 하는 모든 헌신들이 사랑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결핍을 부풀게 만드는 것.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것- 참으로 이상적이고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더욱 비극적인 모습이 되어버리는 관계.
누군가 한번쯤은 겪어봤을법한 정원과 은호의 관계
단순 연애나 사랑뿐 아니라 결국 사람은 아름다운 응원보단 속절없는 상실의 고통에서 스스로 빠져나온만큼 성장 하나보다.
결국 내가 선택해보지 못한 선택의 결과를 그리워한다. 영원히 해보지 못할 그 선택을 마음 한켠에 품어두고 모두가 살아간다.